내 삶이, 통째로 참 야단스럽다.
요란하다 [搖 흔들 요 / 亂 어지러울 란]
1. (모양이나 움직임 따위가) 지나칠 정도로 야단스럽다.
2. (어떤 장소가, 또는 어떤 장소가 무엇으로) 시끄럽고 떠들썩하다.
울리고야 말았다, 내가.
임신 중에 이혼하겠다고 울고불고 난리 칠 때 그랬고, 우래기 돌잔치 마치자마자 ‘이제 내가 안 살아요!’ 소리치며 그랬고, ‘암이라는데?’라고 고백하며 그랬다.
울리고야 말았다, 아빠를.
이상하게도 엄마의 눈물은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귀로 그 소리를 들어도, 그럴 수 있다고 엄마는 지금 슬프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두었었다. 7남매인 엄마의 형제들에게 번갈아가며 연락이 와 눈이 벌게진 채 코를 훌쩍거리고 있어도 ‘통화해?’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서버렸다.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하는지 뻔히 아니까, 애써 울지 말라고 위로하지 않았다. 우는 게 당연한 상황이니까. 울어도 되니까.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아빠의 눈물에는 내 눈이 순식간에 수도꼭지를 틀어버린다. 울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을, 울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기어코 울렸다, 내가.
사실 최근에 울린 것만 세 번이지, 그전에 왜 없었겠는가. 오래전 산부인과 수술 때 그랬고, 그즈음 만나던 사람과 ‘결혼할래요!’ 했다가 ‘그만 헤어질래요.‘ 하는 갈대 같은 딸내미 마음을 보며 가슴으로 많이 울었을 터였다. 단지, 그때는 아빠가 더 젊었으니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테고, 나는 철이 더 없었으니 몰랐을 거다.
점심을 먹던 엄마는 내게 “남자들은 힘든 일 있으면 속으로 삭여.”라고 말했다. 나는 단번에 아빠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맞아, 아빠는 속상하면 산에 가서 울고 오잖아.”
등산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라 원래도 산에 자주 가시지만, 아주 드물게 울컥한 날에는 산에서 울고 내려오시는 걸 알고 있었다. 산은 아빠에게 둥지 같은 곳이니까. 울컥한 날이라 함은, 먼 타국에 있는 언니와 식구들이 몹시 보고픈 날,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딱 그 정도.
“오늘 아침에 나가시는데 눈이 퉁퉁 부어있더라고.” 아, 밤새… 밥 한 술을 입에 넣다 말고 “아빠 눈이.. 퉁ㅌ.. 부었어?” 라는 말을 뱉었다. 두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버렸다. 엄마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버튼이 눌려버렸다. 엄마는 휴지를 한 장 뽑아주시며 울지 말고 밥 먹으라고 하신다.
아, 들켰다. 그런데 그렇다고 ’엄마, 미안해. 걱정시켜서 미안해.‘ 같은 가슴속 내 마음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통곡을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듯했다.
굳건히 그곳에 서 계시지만, 나는 또 그 성을 무너뜨리려 하는 한낱 못난 짐꾼이 된 기분이다. 지금은 이기적으로 너만 생각해도 돼, 라는 친구 T의 위로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볍게 해 보지만, 이번엔 외할머니 전화다.
“아니야, 엄마!!! 아이고, 그걸 왜 날 줘!!!”
한다면 하는 우리 외할머니는 아흔이 넘으신 말 그대로 ‘노모(老母)’이시다. 그런 어르신이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으고 모아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서 갖고 계시던 쌈짓돈 3백만 원을 굳이 보내겠다고 성화이신 거였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받으셨다.
“호락이 맛있는 거 먹여야지.” 수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걱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그래서 또 눈물이 난다. 아이고, 이 걱정덩어리. 다시 와르르, 그럴까 봐 못 들은 척을 하고 고개를 돌린다. 눈이 촉촉해진 엄마는 “할머니가 맛있는 거 먹으래, 뭐 먹을까?” 하신다. 그러게,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나-
요란하다, 참.
내 삶이 통째로 요란하다. 지나칠 정도로 야단스럽다.
23.07.20. 목요일.
삼계탕을 먹었다.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