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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07. 2023

6. 변덕스럽다-

그냥 지금 내 마음.


변덕스럽다 [變 변할 변 / 德 클 덕]
: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하기 쉬운 태도나 성질이 있다.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을 뛴다.

(얘, 평온해도 이상하지 않겠니?)


오늘은 조직검사 한 샘플 슬라이드를 제출하는 날이라 또 병원에 들렀다. 병원을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한테 편안한 마음으로 얘기했다.


“어제 새벽에 잠이 깨길래 유방암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좀 읽었거든. 용어가 많은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거기 카페가 2012년쯤 만들어졌나 봐. 용어나 치료방법 같은 걸 정의해 놓은 폴더가 따로 있더라고. 다 읽진 못 하고 보다 잠들긴 했는데, 이제 이 암덩이가 어디에 있느냐, 깊숙이 들어간 게 아닌 경우가 있고 들어간 경우가 있고. 나는 이제 들어가 있는 암인데, 이게 가장 흔한 대표적인 암이고. 호르몬을 먹이로 크는 종양이냐, 아니냐를 보는데 이건 또 수치를 이야기하는 거 같아. 막 플러스마이너스 표시 있는데 아직 모르겠어. 그리고 이제 이런 영역에 다 해당되는 게 가장 심각한 안 좋은 케이스고.”


읽었다고 해놓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엄마가 알고 있어야 할 암에 관한 지식들을 늘어놓았다.


“미국에 암으로 유명한 김 누구 박사님이 계시대. 미국 환자들은 저 얼마나 살 수 있어요, 이런 질문을 안 한다는 거야. 그건 신의 영역이니까. 근데 한국 환자들은 꼭 물어본대, 것도 의사 간호사 약사 이런 직업군의 환자들이 더. 자신들도 알려줄 수 없는 걸 알면서 왜 그러냐고 의사 믿고 치료만 잘 받으면 될 일이라는 거지. 그리고 한국에서는 암 걸리면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데 미국인들은 다 먹고 힘을 낸다는 거야. 항암치료 약 성분이 엄청 독한 독약이래, 독약. 그걸 견뎌내려면 잘 먹고 체중도 유지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니까 다음 치료 때 보면 막 살이 쪽 빠져서 온대. 엄마, 나 고기 먹어야 해.”


결론은 고기였다. 고기 먹고 힘내서 치료 잘 받겠다는 약속 같은 거.


“방사선은 사람을 굽는 거래. 구워버린다고. 그니까 이게 처음엔 괜찮아도 누적되면 피로가 생기는데 엄청 센 열로 굽는 거니까 나중에 피부가 상하고 갈라지고 진물 나고 그러나 봐. 아프면 화상연고를 처방해 준대. 항암보다 쉬워 보여도 사람에 따라 달라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또 엄청 고생하나 봐. 쉬운 치료는 없는 거지.“


내가 읽은 의사 선생님들의 인터뷰 내용과 실제 치료경험을 한 분들의 후기를 엄마에게 다시 이렇게 저렇게 편집해서 들려주었다. 병원에 가는 내내 엄마는 맞장구를 쳐주었고, 쉼 없이 떠들어대는 나에게 엄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젠 그렇게 눈물이 나오더니, 오늘은 좀 괜찮네!”

“어! 나도! 엄마, 암선고받은 환자들이 다섯 단계의 과정을 거친대. 왜 그 분노의 5단계랑 똑같이. 첫 번째, 부정.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고. 분노,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타협, 우리 애 대학까지만! 우울, 말수도 줄어들고 사람들도 안 만나고. 마지막 수용을 하고 나서야 치료를 받는대. 근데 엄마, 나는 암소리 듣고 24시간이 안 돼서 수용까지 간 거 같아. 물론 타협하고 있는 부분은 있어, 우래기 너무 어린데 싶어서. 엄마도 받아들이지 않았어? 우리 엄청 빨라! 우린 빠르게 받아들이고 잘할 거야.”


환자는 나 하나뿐인데 자꾸 엄마한테 잘하자고 한다. 같이 가야 할 길인 게 자명하니까. 엄마도 나 때문에 할 일이 많아졌으니까. 엄마와 으쌰 으쌰를 한 번 하고 어제보다 나은 기분으로 도착했다. 받아들였기에 그런 줄 알았다.


어제에 이어 나름 두 번째라고 위치도 파악해 뒀겠다, 방향을 틀어 유방암센터를 찾아가는 데 거침이 없었다. 상담선생님이 분명 샘플만 내고 앞으로 할 여러 검사 일정 확인만 하고 가랬는데, 오신 길에 할 수 있는 검사와 예방접종을 하고 가란다.

‘암요, 해야죠!’

(아니, 수정. 난 지금 암이 싫으니까.)      

‘그럼요, 해야죠!’


피검사, 소변검사, 심전도검사, 폐기능검사. 그리고 치료 시작 후 떨어질 면역력을 대비한, 실비도 되지 않는 ‘비싼’ 예방접종 두 가지.


모두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나는 매우 기본적인 검사들이었다. 검사를 진행해 주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친절하셨다. 그저 외운 걸 넘어 기계처럼 자동으로 줄줄 나오는 설명들. 그들도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느라 꽤나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를 응대하는 동안 스윽 치고 들어오는 할머니 환자들의 물음을 당황하지 않고 잘라낸다. 거절에도 강단이 있다. 하루종일 온통 예민한 환자, 보호자를 마주하는 분들이다. 진정 프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지. ‘엄마, 왜 우리도 수업하다 보면 딴생각하면서 설명하잖아~ 딱 그런 느낌일 거야. 그냥 입에서 줄줄 나오는 거.’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나를 따라다니며 완벽한 보조 역할을 해내셨다. 가방과 영수증도 들어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내 마음의 무게도 들어주고.


대기 시간 중 엄마가 카톡방을 켜서 내민다.

“이모랑 삼촌들이 엄마보고 너한테 집중하라고 이렇게 보내줬어.”

“엄마! 나 안 봐~ 나 울기 싫어. 엄마만 울어!”

시선은 엄마 핸드폰에 있으면서 웃으며 거절하니 농담인 줄 아셨는지 엄마가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큰삼촌이 ‘누님은 걱정 말고 호락이 간호하세요.’, 이건 큰 이모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아. 호락이한테 어째 이런 일이. 쾌유를 빕니다.’, 이건 작은 삼ㅊ…”

“어후, 엄마! 나 안 읽는다니까 왜 소리 내서 읽고 그래!”

형제들의 걱정이 나에게 닿아 힘내기를 바라는 엄마의 그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오히려 엄마를 무안하게 했다.


예방접종 이상여부 확인 시간이 지나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복도를 서성였다. 그 틈에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야! 받아들였다며! 눈물 안 난다매?!)

마음속에 사는 ‘또 다른 나’인 괄호쟁이가 불쑥 튀어나와 핀잔을 준다.


’그래, 나 변덕쟁이다. 근데 나 확진받은 지 이틀 됐거든? 좀 울면 안 되냐? 훌쩍‘

(엄마 나오신다, 콧물이나 닦아라.)


”가자, 엄마!“



23.07.21. 금요일.

그래, 이틀 밖에 안 됐어. 천천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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