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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무 Jan 15. 2021

결혼식은 안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으로.

"참을 수 없는 것도 참아야 할 만큼 결혼이 의미가 있을까?"



"내가 가장 두려운 건, 한 집에서 서로를 친절하게 참아주는 

낯선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이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에 가다>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 

우리 부모님도, 친구의 부모님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게 된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한 선택이 불행으로가는 지름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의 결혼이라는 환상은 지워져갔다. 

나는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린 마음을 감당하고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에게 다정했던 옛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그 긴 시간을 견뎌 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내 인생에 결혼은 필수가 아닌 것처럼 살고 있었다. 



너의 얼굴에서 나의 표정이 보일 때


2020년 발리에서 새해를 맞았다. 서핑 말고 할게 없는 시골마을에서 그를 만났고 그해 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와 해외입국자 자가격리를 시작으로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다. 

결혼할 사람은 한눈에 알아본다더니.. 이야기를할수록 어쩌면 전생에 잃어버린 남동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얼굴에서 나의 표정이 보였다. 아마도 그 순간 나는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그해가 끝나가기 전에 상견례를 했다. 

애초에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결혼식 또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결혼식에 갈때마다, 결혼식은 도대체 누굴 위한 의식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것,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것- 이라면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서른 살이 훌쩍 넘도록 내가 생각한 대로 살기 어려운 걸까? 라는 답답함도 들었다.
다행히 그도 결혼식은 뭔가 오그라드는 느낌이라 하기 싫다고 했다. 

그는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주목받는 것이 어색해서 싫고, 나는 드레스를 입는게 싫었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부담을 주는 것도 우리의 마음이 영 불편하다. 

상견례 이후, 양가 부모님은 결혼식을 재촉하셨는데, 당사자들의 행동은 어찌나 미적지근 한지. 

부모님이 하자는대로 할만한 성격도 아니니 그래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혼식? 스몰 웨딩? 피로연? 지금 이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결혼식 문화가 더 많아지길 바라며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인 바다에서 둘만의 작은 의식을 행하고싶다.

라인업이 붐비지 않고 여유로운 뉴질랜드의 조용한 바닷가에서 - 

웨딩카 대신 보드를 실은 트립카를 타고,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보다 서핑 수트를 입고? (안 입어도 상관없고) 

부케 대신 보드를 들고, 행진 대신 라이딩을 하는 그런 그런 의식 말이다.


단한번도 똑같은 파도를 내어주지 않는 바다에서 단 한 번 도 겪어보지 못한 

'서로'라는 세계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한다. 

같은 파도를 보지만 라이딩은 혼자라는 것도 마음에 담아둔다. 

우리의 Wedding Ceremony는 Wave Ceremony. 

저 멀리서 울렁울렁 다가오는 물살이 정확히 어떤 파도인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그 파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마주보기만 하는 사랑이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함께 하는 혼자'로서의 의식. 

늘 함께하지만 우린 또 혼자이기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 서로가 소중하다는 걸 

마음 깊이 느끼게 해주는 의식.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으로 

우리만의 결혼식을 맞이하고 싶다.

이런 고민을 하느라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새벽 동이 트면 배를 타고 서핑을 하러가는 일상- 가장 설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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