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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무 Mar 26. 2021

감내하고 감내한 마음이 의미가 있을까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KTX에서

꼭 출근을 해야만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서울로 출근한 지 나흘이 흘렀다.


사람 많은 서울에 가고, 일 많은 회사에 가면 작은 화가 쌓인다. 딱히 특별한 사건이 있는것도 아니다. 그냥 눈뜨고 부터 눈감을 때까지 몇 가지 감정으로 축약된 채로 멍청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눈뜨자마자 일하고, KTX를 타자마자 일하고, 회사 도착하자마자 일을 하다 보면 어랏. 오늘도 야근이네? 그래도 밤 10시밖에 안되었다. KTX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그리고 자기 전까지 오늘 끝내야 하는 일들을 쳐낸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인것 같다. 어쩌면 회사 밖에서 만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는 일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맞게 일 이야기나 시답잖은 농담만 한다. 그 외에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자려고 누웠는데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다시 책상에 앉았다. 얼마 전 만든 노트를 만져본다. 노트를 만들었을 때 편안했던 마음이 전해진다.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일들이 결국 무언가를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인데, 그걸 만드는이 마음의 모양은 왜 보기 안좋아질까.


다듬고 색을 입히고, 그렇게 무언가를 만든 나의 노동력을 재화로 맞바꾼다. 분명 내가 가진 몇안되는 소소한 재능으로 돈을 버는 고마운 일인데 왜 할수록 쌓여가는 기분이 아니라 비어가는 느낌일까.


사실 회사에 출근하나 집에서 일하나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비슷하다. 집에서는 일하다가 화분에 물을 주고, 간단히 요리도 하고, 틈틈이 좋아하는 문구도 만드는데, 출근해서 회사에 있는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라 남의 시간 같다. 그 기분이 영 별로다.  


새벽 1시, 집 안의 화분들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채 고층에 사는 가여운 우리 집 화분들. 어떤 식물은 초원에서 햇빛도 바람도 다 누리고 사는데, 우리 집 화분은 겨우 흙 몇 줌이 자기가 살아갈 토양의 전부다. 그래도 자신의 할 일은 푸르게 살아있는 거라고 아주 조금씩 자라는 대견한 녀석들.


코시국이 가져온 여파로 내가 살아갈 토양도 좁아졌다. 그래도 살아가야겠지.


창문을 꼭꼭 닫고 다녀서 바람 한줄기 못 쐐서 그런가 이파리가 말라있다. 엊그제까지 초록 기운이 강했던 몬스테라 잎이 누렇게 떠버렸다. 시들어가는 이파리가 왠지 착잡한 내 마음 같아서 시원한 물 한 사발 끼얹어준다.


이번엔 장미 화분을 가까이서 보았다. 노지에서나 키웠어야 하는 미니장미는 흰 가루병에 걸려 허옇게 뜬 채로 건드리기만 해도 이파리가 툭 떨어진다. 순간 내 심장도 작게 쿵 떨어진다.


다행히 한 그루의 장미가 살아남아 쌩쌩하게 줄기를 뻗어나간다. 꽃을 피우려는지 몽우리도 생겼다. 꽃을 피우려면 더 많은 양분이 필요한데, 환경이 열악해서 그런가 얼마 전에 몽우리 단계에서 툭 모가지를 떨궜다.


겨우 하나 살아남았는데, 그것마저 꽃 피기 직전에 져버리다니. 처해진 환경때문에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나저나 작은 화분 하나 키우기도 어려운 아파트가 뭐가 좋다고. 뉴스에는 온통 부동산 이야기일까.


바다와 햇볕 옆에 살았을 땐 하루에도 몇 번을 감동하고 감탄하고 감사했던 시간들이었는데. 도시에서는 영혼의 생기가 감퇴된 느낌이다. 감내하고 또 감내해 보지만 감내한 마음이 의미가 있을까.


그저 감감한 감정들만이 흰 가루병처럼 퍼져서 건들기만 해도 툭 떨어져 버리는 이파리가 되어버릴까 봐 조마조마하다.


야근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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