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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무 Feb 11. 2021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들

고귀한 인간에서 잠재적 바이러스로 강등된 지 1년


고귀한 인간에서 잠재적 바이러스 숙주로
 강등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입에 수갑을 채우고, 너의 숨이 나에게 닿을까 전전긍긍하며 지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감도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고, 합리적인 의심도 ‘음모론’으로 비웃음 거리가 될까 봐 매일 자라나는 문제의식은 축축해진 마스크 안에서만 맴돌 뿐입니다.


'무증상 감염자라는 이 이상한 용어는 뭐야? 왜 모든 사람을 바이러스 숙주 취급하지? 지금이 5공 시대도 아닌데 5인 이상 모임 금지? 돈벌이 하는 행위는 상관없고, 경제활동 안하는 사람들은 삶에서 중요한게 없나? 식당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스크 벗고 밥도 먹는데 정작 가족도 못 만나는 건 뭐지? 확진자 80%이상이 경미한 증상이라며! 그냥 몸살 감기와 뭐가 다른거야?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통째로 통제 받을만큼 위험한거 맞아?"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지만, 저는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자가격리, 5인 이상 모임 금지, 이동통제, 국경 봉쇄,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 감시시스템 강화, 백신...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제 몸 처럼 써온 아이들에게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엔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다녔어. 내가 XX바이러스가 없다는 증명서 없이도 말이야”


나날이 심해져가는 사회통제에 길들여지고, 매일 학습당하고, 스스로 검열하고, 무력감에 절어있는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우울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나는 이 우울한 마음의 힘으로 어쩌다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는지 매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백신접종강제법안이 통과되면


얼마전 홍준표 의원이 ‘백신접종강제’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백신접종강제법이라니. 이런 끔찍한 말이 서슴없이 나와도 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진 걸까요. 정말 치가 떨립니다. 당장 국회 사이트에 들어가 법안 발의 반대에 서명을 했습니다. 서명을 하고 나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이것 말고 뭐가 있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만나서 이 답답함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어도 우린 5인 이상 모임 금지 세상에 살고 있네요.


신약 하나에 10년, 15년 이상씩 걸리던 약을 1년도 안돼서 만들어 놓고 ‘백신 말곤 방법이 없으니 무조건 맞으라’는 것도 모자라 법안 내용에는 이런 끔찍한 말들도 쓰여있습니다. ‘코로나 백신 접종내역이 주민등록증과 여권에 전자적으로 기록된다.' 이것이 실행되면 접종되지 않는 사람은 공공장소 출입, 대중교통이용금지, 취업, 해외여행 제한의 수순으로 가겠지요. 그런데 이미 변이 바이러스가 나왔고, 이름만 달라진 여러 바이러스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텐데 백신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그럴때마다 효과와 부작용도 입증되지 않은 백신을 맞는게 맞을까요? 내 몸과 면역체계에 그런 혼란을 줘도 되는걸까요? 항체는 내 몸에서 얼마나 유지될까요? 증상이 경미하면 백신을 맞는것보다 그냥 코로나에 걸리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첨단과학과 의료영역에서는 금기시되었던 많은 것들이
속수무책으로 해제되고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어쩌면 사회분위기가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을 이등시민으로 차별하게 되진 않을까도 걱정입니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예전과 다른 마음으로 두려워하게 된 것처럼요.

공무원들과 대기업에서 백신을 맞기 시작하면 당장 밥줄이 달린 사람들이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맞을 수밖에 없겠지요. 개인 신체의 자유가 기본권 중의 기본이지만 이 말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말들은 넘쳐납니다. ‘빨리 바이러스를 박멸하자, 질병을 퇴치하자,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자.’


'코로나를 종식시키자.' 이 말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수많은 바이러스 세상에 살고 있었어요. 다만 바이러스에 이름이 붙여진지 얼마 안됐을 뿐인거죠.

인간의 몸엔 39조 개의 세균과 380조 개의 바이러스가 서식하고 있다고 해요.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고 모든 질병이 증상으로 나타나진 않아요.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때 나타나죠. 그런데 증상이 없거나 미미한 사람조차도 '무증상 감염자'라며 '확진자' 판명을 받으니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만으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줍니다. 또한 사망자 대부분은 이미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이고, 원래 여러 병을 가지고 있는 노인분들에겐 더위, 추위, 작은 질병 등등 많은 것들이 위험한거 아닌가요? 여러 병을 앓던 분들의 사망 원인이 오로지 '코로나'때문이라고 확정지어 '사망자'숫자를 늘려가는 것도 이상합니다. (질병관리청은 현재 사망자의 기저질환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몸에 대한 자유 조차 
 자리를 잃어갑니다.

아프지 않은 개인을 격리시키고, 감기에 걸렸다고 병원에 의무적으로 격리시키고, 확진자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의 동선을 추적하고, 5인이상 모임을 금지하고,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코로나 바이러스가 치명적 입니까?

그저 '별수 있나’라는 식의 대답 말고 이것에 대해서 어떤 논의와 사회적 합의들이 오갔나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신체의 자유에 대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만한 글, 우려되는 점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말과 그것을 전하는 언론이 있었나요. (있으면 추천 바랍니다!) 아니 그런 것들을 말해도 되는 사회분위기인가요? 과연 코로나가 끝나면 금기되었던 것들이 다시 금기의 자리로 되돌아갈까요?


코로나 19는 총성 없는 전쟁 같아요. 전쟁이 비즈니스화 되고 언제든지 통치수단으로 이용된 과거처럼요. 질병을 대처하는 사회 시스템이 더 완벽히 갖춰지고 나면 이제 언제든지 이와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 우리들은 쉽게 통제의 대상이 되겠지요. 건강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는 동안 지배계급과 재벌들은 어떤 손해를 볼까요.



질병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공장식 축산시스템 때문에 생긴 구제역과 조류독감을 기억할 거예요. 죽여서 처리하는 방식’인 살처분으로 동물을 학살했던 거 말이에요. 우리는 매번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핀셋을 들고 보기 싫은 드러난 것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처리해요. 그렇게 매번 질병을 ‘제거’해온 결과 더 오래 살아남고 싶은 질병은 번식력을 높이고 치사율은 낮췄을지도 모르겠네요. 질병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코로나 20, 21,22을 맞이하겠지요.



지치고 아픈 사람들을 안아주는 고결한 인간성이 있기에 인간임을 자부해왔어요.

지구에서 가장 살만하다고 생각한 소중한 영역이 점점 사라져 갑니다.
아마존 밀림이나 북극의 빙하처럼요.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길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고, 아픈 사람을 안아주고, 뒤처진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살만한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에게 공포가 되고 조금의 손해나 위험도 격리하고 차단해야 한다는 의식이 상식과 매너가 돼버린 사회에서 과연 코로나가 끝나도 끝나는 걸까요?

우리를 감시해온 시스템도 코로나와 함께 없어질까요?

우리의 마음과 인간성과 가치관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코로나 19를 종식한 그 다음 날을 맞이하기가 더 무섭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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