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복도로, 마을
대연동, 칠산동에서 현(실에)존(재)했던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란 장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습을 바꾸었는데, 우리들은 다시 개별 존재로 만나고 모여보자는 당찬! 선택을 했다. 각자 조금씩 다른 방향을 보고서 움직이고 있는데 미련하게 예전처럼 지속되기만을 바라다보면 개개인은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 뻔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 아쉽고 섭섭하더라도 우리들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각자 전진하는 것, 그것이 가장 건강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다함께 재밌게 하던 일들이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하지? 왜 이전처럼 안 되지?’ 직면하는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고 그래서 산복도로로 이사를 하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시간에는 그런 상태를 설명해내기도 힘들어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모든 비난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았고, 나는 제외되는 것 같아 힘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살고 있으니 걸어서 갈 수 있는 민주공원에서 친구를 만나 꽃놀이를 하기도 했고, 밤에는 달빛 아래서 춤을 추기도 했다. 이때 꾸준히 바디워크, 가족세우기 워크샵, 트라우마힐링 워크샵 등에 참여 하며 잔뜩 굳어진 몸과 마음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전처럼 여럿이 함께는 아니지만 한 명 한 명 가깝게 만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좋았던 딱 그만큼의 거리. 적당한 거리를 만드는 것은 도무지 어려워서 지금은 산복도로에서 이사를 했고, 꿈꾸던 마을에 모여살기는 개인적으로 실패했다. 한사람의 리듬과 속도를 잘 살펴서 전보다 더 천천히 만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산복도로에서 맨 꼭대기 집에 살았는데 대문을 열면 바로 뒷산과 이어지던 숲이 생각난다. 여름에도 서늘할 만큼 그늘을 만들어 내던 반은 죽은 나무들. 마을버스로 구불구불 도로를 타고 내린 곳에서 다시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야 도착했던 집. 햇살이 꽤 잘 드는 편이었고, 이 집으로 한 명의 친구를 초대해서 그 만을 위한 채식 요리를 대접하고 인터뷰 했던 글을 《함께 가는 예술인》 잡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호영씨, 바바씨와 가끔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곤 했는데 바바씨가 만들어준 토마토와 밤 디저트는 다시 꼭 먹고 싶다. 가장 가까이 살았던 소라에게 얻어먹은 맛있는 삼겹살! 마을에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은 것을 먹고 산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