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퇴사를 꿈꾸는 나

.이루어지기 전까진 이룰 수 없는 꿈

by 언디 UnD

새로운 매거진을 발간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쓰고 싶었던 글들이 많았던 주제지만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그저 묻고 지나갔던 이야기들을 하나라도 붙잡아보려는 노력이다.


언제 퇴사 욕구를 느낍니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다.

이해 못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입니다.


물론 이것 말고도 퇴사를 생각하게 할 이유는 참 많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적은 월급이라든가, 언제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회사 복지, 악의적이고 불편한 관계들, 그 외 회사에서 일어나는 어떤 안좋은 요소와 사건을 가져오든 퇴사에 대한 욕구는 타당하다. ENFJ 유형에, 공평함과 정의를 외쳐온 나 같은 사람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개인이든 집단이든, 조직 전체이건 한 사람을 우습게 보는 꼴은 정말 눈꼴 시려서 볼 수도 없고, 존중하고 존중받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도 없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 감정이 '퇴사 욕구'였던 것 같다. 풀어 말하면, 부당함에 나를 더이상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매거진을 채워갈 글들은 철저히 개인적 경험과 감정의 테두리 안에서 경험한 부당한 에피소드들의 연속일 것도 같아 새삼 걱정이 되기도 한다. 브런치를 하면서, 생각보다 내 안에 있는 어두운 생각들(정확히는 밝지만은 않은 생각들)이 글에 많이 투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대부분 공유되었을 때 공유된 사람을 약간 오염시키는 폐해가 있는 동시에, (나는 이 현상을 '감정을 묻힌다'라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본래의 목적대로 감정의 본래 주인에게서 어느정도 해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억울한 감정은 공유했을 때 그 감정이 반감되거나, 뭔가 더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거나, 건강하게 해소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았다. 공감하고 이해받고 위로받는 것은 일시적으로 좋으나, 그렇게 감정이 치유된 결과와 실제 상황과의 괴리로 더 고통스러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본질적으로 억울함은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 주기 어려운 감정이려나. 어찌되었건, 대기업 두 곳을 다녀보면서 느낀 건 조직은 정말 비슷할 것 같지만, 또 다르고, 완전히 다를 것 같지만 결국 동일한 원리로 운영되고 지속된다는 점이다. 또 초점을 바꾸어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내 안에도 다양한 상황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는 여러 가지의 내가 있고, 또 무조건적으로 변하지 않는 내가 굳건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회사가 제공하는 혜택을 받아 누리면서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나는 비겁한 반골일지도 모른다. 무력한 소시민의 부류에 점점 더 조인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속으로만 갈등 많은 루저일지도 모른다. 그걸 지긋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아주 솔직하게 글을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내가 앞으로 언급하게 될 어느 누구도 개인적으로 고발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가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그 순간의 최선을 다 할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겪는 이 모든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지침이 되기 바라고, 누군가에게는 교훈이 되길 바라고,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공감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내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결국 회사 없이도 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에 속한 나를 더욱더 철저히 지켜본다. 내가 꿈꾸고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해서, 더 용기 있게 진짜를 살아가기 위해서 부끄러운 나의 행적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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