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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Nov 10. 2021

왜 하와이였을까?

갑작스럽게 떠오른 그 미지의 세계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외국 여행을 생각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쳇바퀴와 같은 지긋지긋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행 아닌가?

연애 시절의 나를 보고 여행에 병이 난 사람인 줄 알았다는 남편의 증언을 재 증명하듯, 여행을 잃어버린 나는 하루하루 인내심을 잃고 병들어 가고 있었다.


회사 일이 무척 하기 싫던 어느 날, 잔꾀를 냈다.

유학 생활을 하다가, 이제 졸업을  준비 중인 남편을 따라 마지막으로 독일을 다녀와야지 하고 가족 마일리지로 무작정 프랑크푸르트행 보너스 항공권을 끊었다.

남편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함이라고 하니 마일리지 부자인 아버지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빌려주신단다.

오래간만에 남편과 데이트하는 기분도 낼 겸, 함께 명분 있는 휴가를 쓸 생각에 기분이 둥둥 떠올랐다. 혼자 남겨질 강아지가 약간 걱정되긴 했지만, 시부모님 댁에도 강아지를 키우니 잘 봐주실 거라 걱정을 붙들어맸다.


그렇게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질 줄 알았건만,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집주인이 계약 기간 만료 전에 집을 비워줬으면 한다는 연락이었다.

1년 반 정도 사이에 전셋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 은근히 속 끓이며 계약 갱신을 요청하면 받아주려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혹시가 역시가 되어 날아온 폭탄. 전셋값을 상향해준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을뿐더러, 한술 더 떠 주인은 자기가 집으로 들어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빼박 쫓겨나게 생긴 것이다.


그날부터 열심히 동네 주변의 아파트를 알아보았지만, 이미 주변 분위기는 달아올라 대안을 찾기 어려운 가격대의 집들뿐이었다.

서울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이 나왔다. 부동산 사이트를 펼쳐 놓고 이곳저곳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봐도 답이 없었다. 이미 전세대출의 최대한도만큼 대출을 받고 있었고, 큰돈을 구할 길은 없었다.


내가 왜 서울에 살고 있을까?

서울에서 산다는 것의 기회비용은 무엇일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이곳에서의 삶일까?


갑자기 서글퍼져서 생각만 깊어져 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한숨만 나왔다.

결국 서울시로부터 신혼부부 자격으로 받고 있는 저금리의 전세대출을 내려놓고, 인근 경기 지역으로까지 확장해서 집을 알아보게 되었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합리적인 가격에 더 넓은 평수의 집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을 발견해서 바로 계약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계약과 이사시기를 결정하면서 남편의 졸업 시즌과 이사를 위한 대출 실행이 필요한 기간이 완벽히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잡한 일은 전부 내가 하게 되는 것 같은, 자기 일만 실컷 하는 것 같은 남편이 내심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은근히 남편과 함께 졸업을 직접 축하하고 싶어 하시는 듯한 시어머님께 독일행을 양보했다. 남편에게는 무조건 아내가 우선인데라는 생각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머님도 이제 나이가 꽤 드셨기에,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드니 쉽게 마음이 내려놓아졌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했던 보너스 항공권을 취소하려고 했는데, 이게 직접 취소가 안 되는 거다. 고객 센터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는데, 한참 여행을 못했던 기간 동안 규정이 바뀌었단다. 몇 번이고 취소가 가능했던 보너스 항공권이 취소가 안되며 변경만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 순간, 아…. 큰일 났다. 독일이 아니면 어디로 해야 하지? 하는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저.. 그러면 혹시 하와이행 직항도 있나요?”

안내원은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상냥하게 물어왔다.

“네, 그럼요. 하와이행 언제로 변경해드릴까요?”


그렇게 설 연휴를 끼워 16일간의 휴가를 몰아 쓰게 된 나의 첫, 그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하와이 여행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갑작스럽게 여행의 행선지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 입에서 ‘하와이’라는 단어가 왜 나왔는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의 회로를 거쳐 하와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혼여행 박람회에서 스쳐 지나갔던 하와이에 대한 환상과 선망 어린 마음이 마음속 깊이 침전되어 있었을까.

회사 동료가 1년 휴가를 내고 무작정 하와이로 요가 자격증을 따러 갔다가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는 꿈같이 로맨틱한 이야기를 들어서였을까.

넷플렉스에서 봤던 청춘남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 테라스하우스 하와이 편의 잔상이 남아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향하게 되었던 걸까.

그냥, 왠지, 그곳이라면,

일상의 딱딱한 시간과 폐쇄적 공간을 넘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감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던 걸까.


그 어느 것도 이유가 아니라면, 언제나 그렇듯 이 세계를 탈출하고픈 나의 천성이 실현될 다음 공간이 제비뽑기처럼 내게 주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택되었든, 선택받았든,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그곳 하와이를 떠올릴 때마다 밋밋한 일상에  두근거림 한 스푼이 추가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곳을 상상하면 이런 것들이 눈앞에, 마음 속에 떠오른다.

서핑보드, 파도, 소매가 없는 가벼운 옷, 잘 익은 바나나, 과일 스무디, 하늘 같은 바다의 물색과, 모두가 칭찬하는 하와이의 바람..

눈으로 가까이 보고, 피부로 직접 느낄 때까지 나는 아련한 짜릿함에 젖은 여행 준비자로 지낼 것 같다.

환상을 그려가며 환상이 깨지기도 하는 하와이로 향하는 여정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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