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리고 우리 모두.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은 습관이다'라는 말에 깊이 동의한다.
이 지구별에 태어나 첫 호흡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릴 때부터 우리는 최선을 다해 왔다. 잘 먹어야 했고, 잠도 자야 해고, 또 제때 잘 싸야 했고, 스스로 가눌 수 없는 몸을 견뎌야 하는 답답함도 이겨냈다. 성인이 볼 때는 하찮기도 하고 급이 낮은 무언가였겠지만 그에게는 정말 대단한 최선이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말문이 트이고, 소통 가능한 일원이 된 이후로는 계속해서 낯설고 새로운 환경, 원하지 않았던 도전들을 마주하게 되며, 그것을 극복하느냐의 여부가 그에게 돌아오는 피드백의 색깔과 온도를 결정해 왔을 것이다. 끊임없이 나의 행동과 상황을 견주어 보며 쉬지 않고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성공적인 결과,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하며, 또 때로는 달콤하게 맛보며, 성실함 혹은 열정을 중요한 가치로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찬사와 존경을 받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 당연하게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스스로의 가치에 의문을 던져 볼 겨를이 없다.
최선을 다할수록, 대체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고, 성공적인 결과는 또 다른 최선에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일은 멋지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영감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강박적이 될 때, 스스로의 노력 이외에 어떤 것도 용납하기 어렵거나, 더 나아가서는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최선을 다하는 인생의 무한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내 한계를 적정선에서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내 최선과 무관하게 실패하는 일'이다. 앞의 두 가지는 열정적인 노력파들이 경험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들이다. 최선과 결과는 정비례하지 않음을, 어쩔 때 그 두 요소의 관계는 아무런 패턴도 없는 랜덤 한 곡선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누군가는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 기회를 갖는다. 여전히 이러한 인식이 패배적이라고, 굴욕적이라고 생각하고 회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살아온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돌아봄으로써 새롭게 터득하게 되는 최선과 겸손의 세트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력하고 단단한 무기라고 믿는다.
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최선을 다해 왔는지,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는지,
앞으로는 어떤 최선을 다하고 싶은 사람인지, 잠깐 멈춰 서서, 최선을 재 조정하는 시간을 갖기를 제안한다.
그때그때마다의 최선은 달라질 것이며, 그 노력의 열매가 더 깊고 풍부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