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비 오는 날 떠올린 그 시절의 내 판타지

by 언디 UnD
김나영 - 어른이 된다는 게

비가 오니까 좋다. 비가 오는 걸 바라보는 게 좋은 건가.

창밖의 풍경이 톤 다운된, 세피아 필터를 입혀 놓은 것 같은 색감이다.


사실 비는 이미 그쳤다.

천둥이 치고 비가 세차게 내려도, 회사 건물 안에 있으면 외부의 변화를 느끼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언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언제 그쳤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날은 비가 왔는지도 모른 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밝을 때 집어넣어져서 어두워지고서야 탈출하는 삶. 어떠면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자연의 빛이 비치지 않는 삶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빛을 반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자연스러운 빛이 나지 않게 되는 일상들. 적당히 살고 싶지만은 않았는데, 적당한 삶을 바라보게 되는 환경. 자조적이지만 꿋꿋하게 버텨내는 동료들과 함께 여전히 직장생활의 시한폭탄을 들고 묵묵히 걸어간다.


어렸을 때 내가 상상한 어른은,

멋진 차를 한 손으로 능숙하게 몰고,

원하는 물건은 대범하게 살 수 있는, (물론 신용카드 빚이겠지만..)

사소한 일부터 크고 중요한 일까지, 쿨하고 힘들지 않게 슥슥 처리해내는, 성숙함과 노련함이 배어있는, 그야말로 당황하지 않는 존재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차도 한 손으로 몰 수 있고,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적당 선에서) 살 수 있고,

작은 일부터 중대한 일까지 매일매일 처리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서 아주 조금 더 성숙하고 노련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예상치 못한 매 순간이 당황스럽다.

여전히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모든 존재를 마주하는 게 겁이 난다.

내 마음을 답답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때도 있다.

나의 일상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얼마든지 피하고 싶다.


우린 어른이 될 수나 있는 걸까?

언제까지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 걸까?


내가 빗속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비가 그친 후의 장면을 바라보는 게 좋아진 건 아마도, 그 차갑고 세찬 빗줄기, 몸을 흠뻑 젖어버리게 만드는 물방울들을 내 온몸으로 부닥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더 겁쟁이가 되었고,

어른이 되어서 더 용기를 잃었고,

어른이 되어서 당연했던 모든 게 당연하지 않게 됐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째 점점 더 어른이 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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