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평범해져 가는 내가 싫다.

통계학이 싫은 이유

by 언디 UnD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동기였던 폭풍같은 이직을 겪어내고 난 뒤, 3개월의 시간은 훌렁훌렁 지나갔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한 주에 한 편의 글이라도 쓰자고 다짐했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꿀렁거리며 하루 동안 스쳐 지나가는 동안 그저 흘려보내고 말았다. 저녁이 되면 퇴근해서 밥 챙겨먹고는 뻗어버리거나 멍하니 TV로 보내버린 시간이 70-80%, 시간을 쪼개 반드시 집에서 해야하는 일들을 챙겨서 했던 것이 10%, 공기 좋을 때 산책하고 가끔 운동도 해야지 하며 몸을 움직였던 시간이 10% 정도였던 것 같다.

(이것만 해도 참 오늘 많이 했지, 나 고생했지, 피곤하지 하며 위안삼았지.)


남들처럼, 출근하면 퇴근 생각하고, 퇴근하면 뭐했는지 모르게 다시 다음날 출근이 다가오는 직장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니 새 직장에서 적응을 꽤 잘한 것 같기도 하다.

직장을 다닌다는 건, 기본적으로 몸을 그 공간에 옮겨다 놓고, 해야하는 일을 하고, 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면 되고, 그것 이외에 생각을 딱히 안해도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낯설고 당황스러웠던 일들이 익숙해지고, 어쩔 줄 모르고 진땀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되는 지를 어깨 너머로 배우고, 부족한 점은 양껏 질책당해가며 눈치밥 먹으며 겉피부가 단단해지는 시간. 그리고 동시에 회사가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다시 한번 파악하게 되는 시간. 입사 후 3개월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대기업 두 군데서 공백 없이 연속으로 일하고 있다 보니, 두 조직의 차이점이 굉장히 크게 다가오고, 또 그 차이를 분석하게 되는 특권(?)이 있는 편이다. 비슷한 듯, 판이하게 다른 두 조직에서 두 번째 분석을 수행하면서, 반쯤은 관찰자로, 반은 소속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 종종 느낀 점들 중 떠오르는 것을 정리해본다.


1. 회사의 문화에서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은 없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 가운데 사람들이 드러내는 인식과 태도에는 반드시 어떤 히스토리가 있다. 혹은 그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물려받은 히스토리라도... 내가 대기업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전례"라는 단어를 굉장히 싫어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큰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본인이 뭔가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나가지 못할 때, 그러나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를 때, 보통 그 전까지 해왔던 방식을 답습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편안해한다. 반대로 히스토리를 벗어나는 첫 사례가 되는 것을 몹시 꺼린다. 특히 회사를 오래, 잘, 평탄하게 다닌 사람들일수록. 그 평탄함을 오래 유지하는 사람이 자리도 오래 유지하고 있으므로, 새롭게 유입되는 멤버들은 '오래 유지되어온 어떤 것'을 모델과 기준으로 삼고 본인의 행동과 태도를 조정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 갑자기, 왜 이렇게 되어야하지?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 이에 대한 합리적 대답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냥 그렇게 해왔으니까, 이렇게 하면 된다.

2. 첫 회사는 이후 모든 조직들과의 비교에서 기준점이 된다.

이 이야기가 포괄할 수 없는 예시이긴 하나, 나의 경우에는 노조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노조가 없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퇴사를 했다.)이 사실 엄청나게 당연하지 않고, 부자연스럽고, 그런 것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으며, 모두가 원하지만, 회사(로 대표되는 누군가의 의사에 의해)가 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임을 피부로 소름돋게 느꼈다. 사실 이직 자체도 달콤한 이득들을 모두 포기하고 이동을 할 만큼 새 회사에 유인이 컸어야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 회사에서의 권태로움과 발전 가능성의 부재가 오히려 피하고 싶은 강력한 부정적 요인이었기에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현 회사에서의 유익들에 이끌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현실적인 고려 없이, 내가 하게 될 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이직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직은 긍정적 전망에 대한 상상력이 좋아야 가능한 것이다 ㅎㅎㅎㅎ. 연봉도, 복지 혜택도, 사람들의 성향도, 조직이 개인을 대하는 방식도, 첫 회사와 늘 비교하게 되어있고,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견딜만한 조건인지를 저울질해보는 것은 입사 초기만 해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늘상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어떤 조직에 속하게 되든 첫 회사, 두번째 회사.. n번째 회사들은 모두 동일한 선에 있지만 역시 첫 회사는 첫 사랑처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조직이 될 것 같다. 물론 신입공채로 채용된 입장과 이후의 경력직 입사 자체가 워낙 다른 케이스이기 때문에 직접 비교가 어렵기도 하고, 신입공채의 왠지 모를 이득(?)도 놓치기가 아쉬웠을지 모르겠다.


3. 사람을 고뇌하게 만드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일보다도 사람이 더 힘들다. 사람 관계 때문에 회사 생활의 웰빙 수준이 결정된다. 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정말 뻔하면서도 틀린 말이 한 구석도 없다. 조직 내의 제도는 사실 변경되기가 정말 어렵다. 어떠한 부당한 사내 룰이 존재한다고 해도 100번 건의 글을 올리고, 클레임을 해봤자, 상위의 법(사회법)이 변경되어서 강력한 개입이 있는 것보다 빠르게 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에게 회사에서 만든 제도 자체가 불만스러운 기분은 그다지 오래 가지는 않는다. (물론 삼삼오오 모이면 지속적으로 욕은 하겠지만, 점차 무뎌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정말 매일매일의 삶에서 내가 마주하는 누군가, 나와 업무를 함께하는 이해관계자, 오더를 내리고 업무의 향방을 움직이는 상위 의사결정자, 또 내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는 나를 고뇌하게 하고, 호흡을 어렵게 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지친 하루 중에도 잠깐 기분좋은 미소를 짓게 할 수도 있다. 너무너무 힘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심리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들 중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까지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작은 한가지에 열과 성과 마음과 감정을 사용하라는 대답을 본 적이 있다. 너무 쿨하지 않은가. 대부분은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이 힘든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옆자리 사람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든 이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저 사람은 저 사람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 사정을 내가 책임져줄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고뇌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자, 적어도.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면, 내 옆자리 사람도 조금 더 괜찮아지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금의 긍정적인 마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상담심리학자의 조언은 어떤 면에선 참 옳은 답이다. 그래서 더 얄밉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난다. 반듯하고, 일도 잘하는데, 사려 깊기까지하고,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아는 멋진 성품의 사람,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의 사람에게 더 막 행동하고 배려를 호구짓으로 여기며 예의를 지키지 않는 안하무인인 사람, 쿨하고 편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사사건건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자기만의 답이 확실한 사람,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진짜 자신을 숨기고 불편한 상황을 피하며 잘 처세하는 사람, ...

그 가운데 서서 나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이들 가운데에서 튀지 않는 평범한, 그러나 적당히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 된다는게 무엇인지, 그것이 내가 정말로 되고 싶은 모습인지, 정말의 나는 누구인지를 떠올리려 때때로 애쓴다. 이직하면서 한가지 정말 다짐했던 것은, 누구의 말에든 생각 없이 동조하거나, 내 생각과 전혀 다른것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말자였는데, 어느 순간 나는 너무도 쉽게 이들이 이끄는대로 그들의 언행을 묻히고, 또 one of 이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된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어떤 가치를 지니더라도, 통계 속 대한민국의 수십만의 30대 직장인중 한 명이 되어가는 것이 너무나 싫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떤 방식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라도 탈출할 것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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