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낭비하는 사람들

우리에 대한 이야기

by 언디 UnD

최근에 브런치에서 알림이 오는 글들을 보면 코로나 관련 글이 참 많은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이야기, 글로벌 브런치 작가님들이 전해주는 각 국의 코로나 상황 및 정책 변화 같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각자들에게 생존과 결부되어 있는 문제이기에 그 이야기들이 내 일처럼 공감되고 심각하게 느껴져서 한참 푹 빠져 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장 크게 깨닫게 된 사실은, 어느 누구와도 서로 접촉하지 않고 매일매일을 살아가기란 꽤, 정말 힘들다는 점이다. 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불안 요소가 되어 잔뜩 움츠릴 수 밖에 없는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듯 있는 듯한 누군가의 손길은 사람들의 생활을 근근히 이어나가게 하고 있다. (아마 대표적으로 쿠팡아저씨가 아닐까?).. 이기적이 되려면 얼마든지 이기적이 될 수 있는 시기에도 다들 자제하고 조심하면서, 서로 조금 더 배려하려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회자되는 것을 들으며 안심이 되기도 한다.


잠깐 현타를 가져보면, 우리 회사는 2월 중순 이후 지금까지 쭉 코로나 시국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체 재택근무에 관련해서는 어떠한 가능성도 두지 않은 채, 꿋꿋이 1주 2개 마스크 지급 (이마저도 3개씩에서 2개씩으로 줄어든 공급)과 식당에서 식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테이크아웃 메뉴를 급격히 확대했고, 주말마다 자가 문진을 시행하여 외국 방문을 했거나, 다중시설을 방문했거나, 현재 감기 증상이 있다면 사내 진료소에서 열을 먼저 잰 뒤 출근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물론, 자가 문진이기 때문에 어떠한 필터링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고열이 나지 않으면 여전히 자유 롭게 출퇴근과 근무를 할 수 있다는 위험은 감수하겠다는 처사이다.) 어찌됐건, 스스로 보고한 증상(일반적인 감기 증상을 포함한 고열 등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4일 자가격리를 하도록 하고있다. 이 때에도 개인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단순 격리가 아닌 자택 대기 상태이며 업무는 그대로 수행하도록 공식적인 지시가 내려져 있는 상태이다. 처음에는 정말 회사 출근하는 것이 무서웠고, 다음에는 마스크를 끼지 않는 사람들이 무서웠고, 나중에는 공포감에 무뎌지게 되었다. 예의 그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학습된 공포감 ㅋ.. 을 완전히 습득하고 출근하고 있다. 중반에 한번 나는 콧물이 흐르는 증상이 있어(사실 비염이 있어 구분이 쉽지 않기는 했지만, 원칙이 그러한지라...) 자가격리를 갑작스럽게 당하게 되었는데, 인프라와 재택 문화가 완벽히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재택 근무는 안하느니만 못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국내 상황에 빗대어 보자면, 온라인 개학에 대한 우려가 당연한 것이다. 참고로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전자 제조 및 IT 서비스까지 모두 포함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기업이다. 이쯤되면 아마 느낌이 올 것이다.)

사실 처음 격리를 시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는 4일 동안은 평소보다 몸이라도 편할 수 있겠다. 하는 얕은 기대감도 있었다. 허나, 악몽같은 월화수목을 보내면서 하루빨리 출근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내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서버 속도에 비해 사외 가상컴퓨터 시스템은 턱없이 속도가 느렸고, 엑셀 셀 하나를 내리는데에 2-3초가 걸리곤 했다.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한계가 있으니, 당연히 업무 대응 속도가 느려지고 공백이 나도 모르게 생겨서 놀고 있는게 아닌데도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되곤 했다. (누가 눈치를 준 건지는 따져보고 싶지 않다..)

그 뒤로는 살짝 두통이 오거나 몸에 열이 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도 '그냥 안아픈 걸로 ㅎㅎ 하는게 낫겠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위험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몸은 괜찮아졌고, 그 뒤로는 버티는게 이기는 거다.라는 아빠의 조언을 떠올리며 지내고 있다. 그 말 들었을 땐 아빠가 참 구시대의 유물처럼 꼰대같고 답답하다 싶었는데. 아빠 미안.) 이런 시국에는 무슨 이유로 아프기만 해도 서럽고 힘들다.


매일 이러쿵저러쿵 꽁깃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갑자기 거짓말처럼 4월 1일, 4월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봄이 이미 도착해있음을 알리는 사인이었다. 아, 나는 왜 3월이 다 지나도록 만우절 거짓말 하나 떠올릴 여력이 없었을까, 한탄스러웠다. 나는 그저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루 종일 상자갑 같은 빌딩 안에 갇혀 있다가,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하늘 빛이 점점 더 환해져있는 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감지했을 뿐이었다. "주인 없는 봄이 왔다."는 지인의 감성어린 한 마디가 확 가슴으로 와닿았다. (그도 인스타그램에서 봤다고 한다 ㅎㅎ)


4월 첫날은 왜인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도 가득한 상태였던 터라, 즉흥적으로 출근길에 꽃시장으로 핸들을 꺾어버렸다. 회색 사무 공간 속 꽃이라도 놓아 두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봄을 잊어버리고 지나가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회사에는 그냥 오전 중으로 늦게 출근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꽃시장에 도착하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낀 채이지만 활발히 꽃을 사고 팔고 있었고, 나 또한 계절에 걸맞게 진한 핑크색의 튤립과, 작약, 수국, 자잘한 분홍, 보랏빛 꽃들의 묶음단을 혼을 빼고 구매했다. 2만 5천원으로 내 품안에 꽃을 가득히 소유하고 나니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시간은 어느덧 10시에 이르고 있었다. 아차! 얼른 출근해야지 하며 속도를 내보는데,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의 바깥 풍경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봄을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었다는 것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개나리와 벚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까지.. 쏟아지는 봄볕을 듬뿍 빨아들이며 꽃기운을 뿜고 있었다. 봄을 얻기 위해 사실은 시장까지 가서 꽃을 살 필요가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몽클해졌다. 진작 기울여 바라봐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아마도, 그리고 확실하게도, 나는 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출근이든, 내 게으름이든, 퇴근 후 피곤함이든, 깨끗하지 못한 공기이든 말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득히 덮고 있다고 해도, 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돈을 주고 봄을 닮은 것을 조금 빌려다가 사무실 간식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았다. 회색 공간 속 모니터로 향해있거나, 내리깔고 있던 눈들이 꽃으로 향하고, 봄을 다시 조금씩 기억해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 생각이고 바람이다.)

서초구에서는 4월4일-5일 양일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양재천의 산책로와 자전거 통행로를 전면 통제했다. 중요한 취지이고, 방책이지만, 이렇게 얼떨결에 지나가버린 봄을, 강제로 낭비된 봄을 누가 보상해줄까? 춥고 메말랐던 시간동안 오래 기다려온 봄을 아낀만큼 더 소중히 누릴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아 있는 봄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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