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견딜 것 같은 못된 감정을 대하는 방법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한번 터져 나오거나 흘러나온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어떤 대상과 만나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을 듣거나,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을 전해 들을 때 보통 우리의 마음은 함께 밝아진다. 함께 축하해주고, 감사한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감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잘 전달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인 경우가 많다. 나쁜 감정은 예고 없이 치고 들어와, 순식간에 마음을 빼곡하게 장악해 버린다.
감정은 인정해줄수록 더 잘 자란다. 창조주를 닮아 있는 인간은,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만들어 내는 본능, 어떤 대상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본능을 타고 태어나며, 이런 창조자적인 인식은 굉장한 실제적 힘을 가진다. 행복한 감정을 느낄 때, 아, 행복하다, 행복하다. 되새기고 받아들이면 그 감정은 극대화될 수 있다. 동일하게, 아주 나쁜 감정을 느꼈을 때에도, 아, 난 불행해, 슬퍼, 답답하고 억울해,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하면 그 감정은 나도 모르는 새에 순간적으로 확 자라난다. 그리고 고삐를 풀어 던지고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이 두 가지 감정의 놀라울 정도로 다른 점은 좋은 감정은 무한으로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반면, 나쁜 감정은 제한 없이 극한으로 나쁘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돈을 벌고 저축하기는 쉽지 않은데, 써버리는 건 한 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테스 형으로 대세몰이를 한 나훈아 형님은 시간을 휘어잡으라고 말했다는데, 사실은 외부의 대상에 대한 통제 이전에 내 마음을 휘어잡는 방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테스 형만큼 자기 통제력이 훈련되지 않았거나, 통제와 별개로 나 스스로의 마음을 도와주어야 할 때에는 ‘멈추는’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전쟁의 시작점에서 잠시 시간을 버는 것이다. 마음속에 수상하고 불길한 움직임이 일어나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이유를 찾아 신속히 제거하는 것이 제1의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 일이 어디 명확한 인과 관계로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던가? 그 이유가 분명하더라도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고, 이유가 분명하더라도 그 이유는 소거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보면 이런 일련의 사건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기분이 몹시 나쁘다.
왜? 남편이 내 말뜻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례한 말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석된 이유에는 벌써 3가지나 이유가 들어 있다.
-남편이 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함
-남편이 내 말에 담긴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
-남편이 무례한 말을 던짐
현실적으로 이미 벌어진 3가지 일에 대한 통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감정에게 권한을 양도한 뒤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면, 과연 3가지의 이유가 각각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또한 이유가 되는 사건을 삭제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멱살 캐리에 따라 더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후속 행동들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가능한 옵션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들일 것이다.
-더 심한 강도의 무례한 말로 기분을 상하게 한다.
“당신은 정말 #$!@하고, #!#$%인 데다가, @#%@하기까지 한 $!@#$#야!!”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남편을 비난한다.
“당신은 한국어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구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남편은 더 이상 남편이 아니라고 결론을 짓는다.
“난 당신과의 결혼을 후회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어.”
=> 이 세 가지를 다 실행한다면 맹목적이고 반복적으로 부정 감정을 생산하는 동시에, 남편을 잘못 만난 아내로 전락, 운명을 탓하며 한껏 더 불행한 감정으로 인도된다.
관계에 따라서, 또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는, 이 모든 것이 실수나 오해일 수 있고, 후속 대화를 통하여 엉킨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잘 해소될 수 있는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지간한 강도의 불쾌한 감정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한도에 가까운 감정에 대한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거나, 도무지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기만 할 때다.
감정을 유발한 관계, 상황, 대화 속에서 감정은 너무나 힘이 세다.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면, 상황과 조건에서 일단 벗어나야만 한다. 설사 그 순간은 회피처럼 보일지라도, 상황에 거리를 둘 수 있게 물리적으로, 인식 차원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도 좋다. 눈을 감고 그냥 쉴 수도 있다. 공간을 이동해 산책을 하거나, 신선한 공기를 마셔볼 수도 있다. 아무튼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이 모든 상황이 일상적인 것이 아님을 빠르게 인식해야 한다. “비상 상황”이며,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장면이라는 것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 같은 대부분의 장기적인 부정 감정의 공격성은 바로 내가 무얼 하든 ‘이 나쁜 상황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감’에서 오기 때문이다. 감정은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며, 희한하게도 머릿속 생각을 사실로 확정 짓게 하는 대책 없는 권위를 발휘한다.
사람들이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생활에 적용은 잘 못하는 명제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나 자신도, 내 감정도, 다른 사람도,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들까지도 말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갑작스럽고 빠르게..
내가 붙잡고 있는 동시에 붙잡혀 있는 그 감정은 내가 어찌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밀도와 농도가 낮아지게 되어있다. 설익고 강렬한 감정은 분출만을 목적으로 할 뿐, 아름다운 결론으로 이끌 힘이 없다.
감정에게도 시간을 주자. 아주 잠깐이라도. 감정을 기다려 주자. 내 감정을 날 힘들게 한 그 상황, 그 사람보다 내가 먼저 감정의 주인인 나를 달래주자. 잘잘못을 따지고, 악인을 혼내주고, 보상을 요구하는 건 그다음에라도 늦지 않으니까. 그리고 모두에게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안 좋은 감정이 즉각적으로 움직이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난다.
시간을 조금 보낸 감정은 흉악한 저주가 풀리고, 성숙, 이해, 자비라는 이름으로 가끔 마법 같은 일을 이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