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달리기보다 잘 멈추는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칠 것.

by 언디 UnD

요즘 나이에 맞지 않게 롱보드를 타는 취미가 생겼다.

롱보드는 스케이트 보드와 비슷하지만, 앞뒤로 길이가 조금 더 긴 보드를 가리키며, 길이가 길다 보니 앞뒤로 스텝을 밟는다거나, 몸의 회전을 이용해서 보드 위에서 여러 춤사위와 기술을 선보일 수 있는데, 이를 "롱보드 댄싱", 혹은 "롱보드 트릭"이라고 한다.

기존에 나에게 스케이트보드는 뭔가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타는, 위험천만하고, 쌩하고 달리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류의 어떤 것이었는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롱보드 여신의 라이딩 영상을 본 뒤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나 우아하고, 부드럽고, 사뿐사뿐 여유 있게 보드 위에서 하늘거리는 그녀의 몸은 나에게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반드시 저걸 해봐야겠다!"


취미 어플을 통해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해보고 난 뒤 나는 더욱더 롱보드에 매혹되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비싼 가격과, 허리도 안 좋은 애가 다치면 어쩌냐는 주변인들의 만류 등 높은 진입 장벽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롱보드에 다이렉트로 입문했다.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로 롱보드를 타기 시작해서, 실력이 급속 성장하여 업을 그만두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갖가지 브랜드 콜라보와 홍보 라이딩 영상을 찍으며 살아간다는 롱보드 여신의 인터뷰는 나에게 왠지 모를 희망까지 안겨주었다.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라는 직장인이라면 남녀노소 만국 공통으로 공감할 포인트에 제대로 저격당했던 것 같다.)


일단 롱보드는 진입하는 게 쉽지 않고, 난이도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두 발을 딛고 올라서고 달리고 멈추는 게 원데이 클래스의 전부일 정도이니까..! (그 전 단계가 다 가능하다면, 간단한 트릭을 하나 정도 더 배우는 것까지 할 수도 있다.) 원래 몸의 균형감각이 부족한 사람들은 익히기 쉽지 않고 다치기도 쉽다. 다행히 나는 어려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몸으로 하는 운동을 하고 싶었던 데다가, 머릿속에는 롱보드 여신의 초자아가 들어앉아 있었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 한 달 여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빠지면서, 다리에 알이 배겨가면서, 때론 몸이 뒤틀리는 피곤함으로 늦게 출근까지 하면서 나는 이제 달리고, 방향을 잡고, 원하는 시점에 잘 멈추고, 4가지 정도의 댄싱 트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또 이 오묘한 취미 생활은 며칠만 쉬어도 감각을 잃어버리는 듯한 관성이 심했고, 또 비 오는 날씨를 피해서 타야만 하기 때문에 좋은 바람과 해가 나올 때마다 나를 안달 나게 했다.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조건도 매일 주어지지 않는데, 쉬지 않고 꾸준히 연습해야만 실력이 향상될 뿐 아니라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롱보드를 편하게 잘 탈 수 있는 장소는 한정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보드를 자유롭게 연습하고 타려면, 일단 직선거리가 상당 수준 확보되어야만 한다. 롱보드가 앞으로 진행하는 동안 위에서 스텝을 밟거나 몸을 회전시키기 때문에, 한 동작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동거리)이 필요하다. 롱보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장애물이 있는 바닥이다. 매끄러워 보이는 바닥일지라도, 약간이라도 움푹 파여서 높이차가 생기거나, 뭔가에 걸려서 속도를 확 늦추게 되면 몸은 진행 중이던 관성을 따라 그대로 날아가서 바닥에 꽂힌다. 보드를 맘껏 탈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아스팔트 위, 건물 옆 타일 길, 산책로 옆 빈 공간 등 여러 곳을 탐색해보고 실험해보았지만 역시 완전히 매끈한 바닥만큼 안정성이 있지 않았다. 가뜩 실력도 아직 좋지 않은데,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나 턱 때문에 넘어지거나 다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다리 밑 롤러장! 조금 멀긴 해도 집 개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초록색 매트로 조성된 매끈한 바닥의 롤러장이 나왔다. 물론 이런 장소가 흔치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그곳에 왔다. 거긴 이미 많은 아이들의 자전거 연습 장소, 롤러브레이드 연습장소, 때로는 가족 멤버들의 배드민턴 장, 꼬맹이들의 킥보드 플레이스였다. 하지만 내 열정도 그들 못지않았기 때문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편이 신신당부하며 사준 헬멧을 졸라매고, 나는 1시간 반 정도씩을 연습에 임했다. 가끔 사람들 앞에서 자빠지기도 했지만 뭐, 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 하며, 7번 넘어져도 8번 씩씩하게 일어났다. 저녁시간이나 주말에는 아이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많긴 했어도, 대부분은 제어가 상대적으로 좀 어려운 보드를 타고 있는 나를 피해 가거나, 내가 전방을 잘 주시해서 미리 피하라는 신호를 주거나 해서 큰 위험은 없었다.


근데 하마터면 정말 위험한 일, 아니 정말 큰일이 벌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체로 나이가 어린아이들이 방향 감각이나, 앞/옆/뒤를 잘 살피지 않고 특정한 움직임의 패턴 없이 아무렇게나 자기들의 이동 수단을 타기 때문에 미취학 아이들만 조심하면 되었었는데, 어떤 자전거가 보드를 타고 출발한 나에게 무작정 달려들어 멈출틈도 없이 꽝하고 박아버렸다. (보드는 멈추기 전에 발을 보드 바깥으로 내리고 마찰을 이용해서 발바닥 브레이크를 잡는 과정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물론 나는 이미 그 아이의 몸을 잡았기 때문에 몸 대 몸 충격은 없었지만, 보드 위에 있던 내발은 자전거 바퀴 쪽으로 심하게 부딪쳤고, 진짜 많이 아팠다. 발목 앞쪽이 쿠션 없이 박았으니까 안 아픈 게 이상했다. 내 생각에는 자전거 쪽에서 손 브레이크를 잡거나 방향을 돌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에 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은데, 여자아이가 자전거를 아직 배우고 있는 단계여서 미처 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놀랐을까 봐 "미안해요!"라고 하면서 아이 쪽을 보는데, 그 옆에 아버지가 계시는 것이었다. 아이와 아버지 모두 내 사과에는 반응이 없었다. 나는 민망함에 반대편 끝쪽으로 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보드를 타고 돌아오는데, 너무 놀라기도 했고 집중력도 흐트러진 나머지 계속 트릭에 실수가 났다. 무엇보다 그 아버지의 눈빛이 매섭게 느껴졌다. 사실 자전거는 트랙을 따라 한 방향으로 동그랗게 도는 것이 안전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트랙 안을 가로질러서 이동하는 것이 별로라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 강력한 룰을 세워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또 요즘 부모님들이 워낙.. 의견들이 강하실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자녀 셋과 함께 그 롤러장에 나왔는데, 방금 나와 부딪친 게 첫째이고, 둘째는 롤러브레이드를 트랙을 따라 타고 있었고, 셋째는 곧이어 첫째의 자전거를 높이 조정하고 나서 타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안전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막내 남자아이에게는 트랙 바깥으로 돌라고 언질을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그 가족이 못내 신경 쓰였다. 최대한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지', '마주치지 말아야지'하고 트랙 바깥으로 튀어나가지도 않고 트랙 안에서만 움직였다. 그럼에도 출발 전 멈춰 선 보드 앞쪽을 막내 아이가 자전거를 또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닿고 지나가서 살짝 자전거 몸체가 기울어지면서 멈추었다. 또 그 아버지는 나를 쳐다봤다.


결국 그 가족은 떠났지만, 나는 계속 아이들을 치게 될까 봐 겁이 나서 더 이상 연습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보드를 타면서, 또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그 아이의 부모였다면 어땠을까? 역지사지해보았다.

당연히 이해도 되었다. 보드 위의 내가 빠르고 위험하게 보였을 것 같다. (헬멧과 보호장비까지 제대로 꼈으니)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부모가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가르치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든, 킥보드를 타든, 잘 달리는 것은 어느 순간 알아서 잘하게 되어있다. 어쩌면 도구와 오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 도구들은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고, 작동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내가 운전을 처음 시작했던 때를 돌이켜봐도 그렇듯, 좀 더 복잡한 기계라 할지라도 그저 달리는 것은 정말 쉽다. 그것도 직선으로, 쉼 없이, 트인 도로를 달리는 것은. 하지만 운전에서 정말 어려운 순간은 차가 많은 도로를 수많은 운전자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는 때이다. 그리고, 도로에서 갓길에 차를 적절한 위치에서 의도적으로 멈춰 서는 것, 잘 멈추기 위해 주차하는 것이다. 롤러장에서의 상황은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누가 봐도 이제 막 타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지만, 그곳은 탁 트이고, 직선인,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각자의 방향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부모였다면, 말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내가 낳을 자녀의 이름을 3명까지 미리 정해두었다.)


"루아, 이안, 이레야. 둘러봐봐, 주변에 사람들이 참 많지, 어린아이들도 많고. 그러면 여기서 내가 통제가 안될 정도로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엄마, 사람들한테 부딪치고 넘어질 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거나 넘어지지 않고 재미있게 자전거를 연습할 수 있을까?"

"음... "

"먼저 브레이크 잡는 방법을 알려줄게. 사람이 너무 가까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 브레이크를 잡아서 부딪치기 전에 멈추는 거야. 할 수 있겠어?"

"좀 무서운데,.. 한번 연습해볼게요 엄마"

"그래 만약에 브레이크가 생각이 안 나면 핸들을 사람들이 적은 쪽으로 돌려도 돼"

"그게 더 어려운 것 같은데요"

"아냐, 앞을 똑바로 보고, 앞이 잘 보인다면 옆도 살짝 눈만 돌려서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런 상상처럼 멈추는 연습을 아이들과 먼저 할 것 같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재미없어하고 지루해할지 모르지만, 나는 빠르게 잘 달리기를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는 아이들을 기르고 싶다. 내 눈앞의 보이는 것, 내가 느끼는 감각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시야로 상황을 보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가 되는 꿈을 꾼다. 그리고, 움직이는 보드 위에서 360도를 한 발로 회전하는 피루엣 자세를 멋지게 해내는, 아름다운 댄싱이 가능한 롱보드 여신이 되어 있을 언젠가의 내 모습도 같이 몰래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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