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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31. 2024

합격하면 안 되는 사람이 합격해버렸다

예상치 못한 합격은 선물이었을까?

(Cover image generated by Adobe Firefly)


[이전 글]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그렇게나 빡세고 어려운 통번역대학원 입학시험을 거의 아무런 준비 없이 치러 가게 되었다.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겠다. 입학시험은 1, 2차로 나누어서 두 번을 치르게 되는데 내가 지원한 학교는 1차에서 영한/한영 번역 시험으로 최종 인원의 3배수 정도를 합격시키고, 합격한 학생들이 2차에서 영한/한영 통역 시험을 치르게 된다.


일단 1차에서 합격할 거란 생각이나 기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나는 아침 시험을 위해 하루 연차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짚어 들고 보니 업무 분야와 관련된 내용이 영한 번역의 키워드였고, 불과 몇 달 전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그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번역해야 하는 내용이 낯설지 않았다. 한영 번역 문제는 언어와 개념 추론에 대한 일반적인 지문이었기 때문에 몇 가지 영어 단어만 까먹지 않으면 그런대로 문장을 만들어 쓸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타조'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한참 고민을 했는데, 내 뇌가 쉬고 있지 않았던지 'Ostrich'가 바로 생각나서 다행스럽게 답을 적어내렸던 기억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나는 진짜 대책 없는 수험생이었다. 시험 문제에서는 정말 그저 운이 좋았고, 그나마 번역 유사 업무를 수년간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학생들도 다 비슷하게 할 만했겠지, 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바쁘게 지내다 보니 금세 1차 합격 발표날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시험과 2차 시험 간 간격은 불과 2주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름과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결과 페이지를 보는데 [1차 합격]이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어떤 시험이든 탈락보다는 합격이 기분 좋은 법이지만, 사실 합격이 되어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다음은 어떻게 준비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매일 8시간씩을 회사에 쏟아야 하는 직장인이었고, 2차 시험날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다가왔다.


2차 시험을 치러 가보니 대기실부터 1차 때와는 다른 전운이 감돌았다. 4-5명씩 짝을 지어 시험장을 나눠서 들어가게 되는데, 면접관과 통역 부스 수가 제한되어 있어 한 번에 2팀 이상은 시험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뒤쪽으로 배정이 된 수험자들은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또 한 번의 연차를 쓰고 이 자리에 온 나. 준비해 간 것도,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대기 시간 동안 사람들은 무얼 하는지 멀뚱히 주변을 둘러본다. 낭창낭창하게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온 나와는 다르게, 몇몇 사람들은 깔끔한 검은 정장차림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뭔지 모를 자료에 엄청나게 몰입해 있다. 종이를 뒤적이며 소리 나지 않게 뭔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다급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눈을 감고 차라리 살짝 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고사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고,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지도 모르는 절대 무지의 상태이기에, 물리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과제다.

그렇게 한참을 대기하다가 차례가 되면 이름이 불리고, 참고자료를 포함한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2차 대기실로 이동하게 된다. 거기에서 한 장의 종이, 그리고 펜을 건네받는다. 뭔가 미리 생각을 정리할 게 있으면 적어도 좋단다. 그 뒤로 연이어 40분 동안 시험을 치르는데, 한국어로 된 본문 두 개를 각각 1) 청취 후 질문에 영어로 대답, 2) 노트테이킹하며 청취 후 영어로 요약 이렇게 두 문제가 주어지고, 영어 본문 두 개도 동일하게 청취 후 한국어로 대답하고 요약 내용을 한국어로 통역해야 한다. 40분 동안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버텨낸 후, 한국인 교수님 한 분과 외국인 교수님 한 분이 10-15명 정도를 한 데 모아 놓고 진행하는 면접까지 마무리하면 시험은 끝이다.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통역 시험 내내 당황스럽고 땀이 났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느낌뿐이다. 들었으나 들리지 않았고, 말하려 했으나 내뱉지 못했다. 기억을 부분적으로 상실할 정도로 충격적인 날이었던 게 분명하다. 시험을 치면서 내 머리에 들어왔던 생각은 '아, 망했다.'였고, 터덜터덜 교문을 걸어 나오면서는 끝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건 그냥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자.'
'난 내일부터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아무 일 없단 듯이 지내면 되는 거야.'

패배자의 마음은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어차피 내가 가지지 못할 것이었으니까,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으니까 하며 다른 대안들로 뚫려진 마음 구멍을 메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되돌아보면 나는 그날 마음깊이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회사를 벗어나려 시도하는 것들이 어쩌면 내 능력 밖의 일들은 아닐까. 나는 그저 능력도 안되면서 잦은 헛된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회사가 나에겐 최선이어서 이곳에 남게 된 것 아닐까? 지금의 내 모습이 모든 상황의 이유이자 결과이자 사실 증명은 아닐까,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 작고 약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를 데리러 온 남편에게 더 활기찬 태도로 말했다.

"어차피 나는 제대로 준비도 안 했으니, 합격하는 게 넌센스지. 사람들 진짜 열심히 준비했더라. 나는 양심적으로 합격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야. 그렇지만 오늘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


그렇게 함께 웃으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생했으니 맛있는 저녁을 먹자 했다. 이제 시험 결과 같은 건 잊자 했다. 그 다음 날도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근했고, 일을 했고, 퇴근했다. 비슷한 시기에 N사와의 채용 과정이 입시와 함께 거의 동시에 병렬로 진행되고 있었고, 최종 합격이 된 채로 2차 시험을 보러 갔었기 때문에 그나마 상처가 덜 아팠다. 선택지를 여러 개 만들어 두었으니 열리는 문으로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불확실했고, 어떠한 한 가지도 나 스스로 결정하고 완전히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나 발표날이 되었고, 궁금하지 않지만 결과가 궁금했다. 불합격 세 글자라도 봐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패배감을 진짜 패배로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바뀌지 않는 내 이름을 입력하고, 외우기 힘든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화면을 확인한 뒤, 무표정이었던 내 얼굴은 당혹스러움과 즉각적인 기쁨으로 덮였다. 그렇게 나는 믿을 수 없는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를 컴퓨터 화면으로 받아 들게 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몇 번을 다시 입력하고, 다음 날 또 확인해 봐도 합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뭔가 잘못된 합격'이었다. 그리고 합격장을 받아 들어도 당장 내 삶을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며칠이 지나 회사에서 이전에 요청했던 직무 변경이 수락되어 새로운 리더와 면담을 진행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긋지긋했던 이전 부서를 떠나 새롭게 해보고 싶은 업무가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던져본 수였는데, 어려울 것 같았던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 생활을 유지하며 직무를 변경하는 일,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는 일, 학업을 시작하는 일을 두고 트릴레마에 빠졌다.


낙천적인 편은 아니지만 만약에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고민을 해본 적은 있었다. 직무를 변경해서 일을 하는 것은 일단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게 되면 새로운 직무를 경험하는 일과 학업을 시작하는 일 모두를 포기해야 한다. 학업은 휴학 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학업을 하더라도 회사의 소속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것이 일단은 유리하다. 이 세 가지 생각의 결론은 일단 학업의 카드를 저장해 놓고, 새로운 직무로 일을 일정 기간 동안 해보자였다. 바뀐 직무가 찰떡같이 잘 맞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평이 열린다면 그때 가서 직업의 의미를 다시 고민해 봐도 될 것이고, 그래도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학업을 제대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이 브런치 북의 첫 번째 글에서 회사에 대한 원망을 많은 비중으로 싣기도 했고 그로 인해 몇몇 분들의 댓글 잔소리도 들었지만, 이 지점에서 겸허히 인정하겠다. 구성원에게 이러한 탐색과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삼성은 꽤 괜찮은 회사이기도 하다. 업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또 일부분은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삼성에서의 혜택을 사용하기로 했다. 해보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부딪쳐서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진정 행복한 사람인지, 어디까지 성장하고 성취해 낼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좇는 가치가 회사 안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1년의 학업 유예기간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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