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club sm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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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던 시점에 뉴욕 버킷 리스트를 정리했었다. 여덟개 정도 되는 항목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항목은 바로 '뉴욕 재즈바 방문'이다. 나는 평소에 여러 장르의 음악을 두루 즐겨 듣는 편이지만, 동시에 좋은 음악을 선별해서 듣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라 뉴욕의 수 많은 재즈바 중 어디를 방문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공식 사이트나 예약 페이지만으로 찾은 여러 재즈 클럽들은 다 고만고만해보였다. 이것저것 검색을 해봐도 결정을 도무지 내릴 수가 없었고, 그러다가 뉴욕으로 출발을 해버렸다. 뉴욕에 도착하고 나서야 간신히 두 곳으로 선택지가 추려졌는데, 하나는 뉴욕 야경 뷰가 멋지게 펼쳐진 빌딩 4,5층 높이에 있는 재즈바였고, 다른 하나는 공간은 다소 협소하지만 머릿 속에 그려왔던 왠지 조금은 협소하고 어둑어둑한 상상 속의 뉴욕 재즈바 같아보였다. 나는 어디를 선택했을까? 결국 고민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명확하게 후자가 내 취향이었던 것 같다.
West 10th street에 위치한 스몰즈 클럽이 바로 그 곳. 현지인 추천 목록에 있기도 했고, 대표적인 재즈 클럽인 Mezzrow 계열 브랜치이기도 한 스몰즈는 다른 재즈바들과는 다르게 조리된 음식을 팔지는 않고 알콜 및 간단한 음료수만 제공한다는 점에서 맘에 들었다. 보통 재즈바를 가면 필수적으로 요리를 주문해야 해서 돈부담이 드는 데다가 음식 냄새며 그릇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공연은 30-40 달러 내외로 예약할 수 있고, 미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앞서 기다리고 있었고, 뒤로도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정성스럽게 고른 재즈바와 연주팀인데 실제로 들으면 어떨까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입장시간이 되어 지하 공간으로 들어서본다.
지하 공간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재즈바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아늑했다. 오늘 연주할 팀이 뒤쪽 바에서 미리 한 잔씩을 하고 있다. 철제 의자로 구분된 자리는 많아봐야 50석 정도 되어 보인다. 좌석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은근한 신경전과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처음 방문한 나는 어디가 좋은 자리인지 아닌지 정보가 없기에 모든 자리가 없어지기 전에 재빨리 구석 쪽 벽에 자리잡기로 한다. 거울 기둥이 앞에 있긴 하지만 피아노 연주자가 잘 보이는 왼쪽편 자리였다. 연주 팀은 공연 시작 직전까지 뭔가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 합을 맞춰보는 것 같았다. 꽤나 진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그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오늘 준비를 좀 덜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 뻔 했다.
이러한 생각은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 사람들이 내 귀에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마음과 생각, 감각이 그 순간에 완전히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언어적 소통이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고집을 버리라는 듯 음악은 내 영혼을 압도했다. 언어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인간 내면의 무언가가,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이 날의 음악은 단순한 소리 그 이상의 것이었다. 너무 멋진 경험이었지만 이 감각, 이 느낌은 비로소 지금의 현재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구나를 실시간으로 깨달았다. 애써 녹음과 녹화를 하더라도 그건 이미 지나간 것을 포착하려는 미미한 노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놓치고 않고 내 안에 꾹꾹 눌러담고 싶은 순간!
개인적으로는 색소폰, 트럼본 등으로 구성되어 빠방한 사운드를 내는 빅 밴드 스타일보다는 이렇게 피아노, 베이스, 드럼과 같이 조금 단순하고, 어쿠스틱한 기본 구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공연 예약 전 라인업된 아티스트들 음악을 유투브에서 찾아 하나하나 들어보고 고심해서 선정을 했었는데, 결국 성공적인 재즈바 방문이 되어 뿌듯했다. 1시간 30분의 공연이 끝나는 데까지 순식간인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공연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앵콜 곡 같은건 연주하지 않아서 더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음악은 끝나고, 여운은 길었다. 나와 동행한 친구 둘 다 한동안 여운에 젖어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나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과 사진 촬영을 하는 편은 아니기에 망설이고 있던 그 때, 친구가 피아노 연주자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가서 인사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머릿 속으로 어떤 찬사를 던져줄지 (직업병처럼)한참동안 영어 표현을 생각했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amazing, incredible, splendid 등 과감한(!) 칭찬들이 많은데, 나는 그냥 너무 감동받았다며, 거의 울뻔 했다. 너무 아름답다. 정도밖에 내뱉지 못했다.
'아, 이게 아닌데...' 하면서 우물쭈물 칭찬을 내뱉는 나에게 피아노 연주자는 따스한 눈길로 고맙다고 말해주었고 좋은 밤을 보내라고 인사를 건넸다.
"See you!"
"See you!"
바보같은 나는 속으로 계속 우리가 다시 볼 사이일까?라고 되뇌이며 가득 채워진 몽글거리는 가슴을 안고 수줍게 재즈바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