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첫 시작
*여행기간: 8월 11일 - 8월 15일
*여행국가/도시: 일본 벳푸
*탐방 대상: 지옥 온천 순례, 흑모래찜질, 짚 사우나
*제대로 맛본 것: 열기와 습기, 비, 끝내 태풍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주변 국가 중 가장 가까웠고, 온천 하면 일본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일본 하면 온천을 빼놓을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마침, 나라를 진짜 사랑한다면 여간해선 일본으로 안 떠날 것 같은 광복절 주간에는 비행기 티켓도 매우 저렴했다. 참여관찰적인 프로젝트를 하고자 했기 때문에 데스크 리서치로는 한계가 있었고, 일단 만만한 나라(?!)로 먼저 1차 시도를 해보아야 다음 국가들을 방문하기 전에 어떤 부분을 준비하고 보완해야 할지 감이 잡힐 것 같았다. 근데, 아.. 나 일본어 한지가 꽤 됐지...... 제2외국어를 일본어로 했다는 것 말고는 언어적으로는 준비가 된 게 전혀 없었고, 그마저도 이미 10년이 넘은 일이었다. 자유여행으로 일본을 갔을 때는 '스미마셍가, @가 도꼬니 아리마스까?' (실례합니다만, @가 어디에 있나요?), 이 짧은 일본어로 서바이벌했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도 너무 늦은 생각이었고, 후회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한국인이랑 일본인은 얼굴이라도 대충 비슷하니까 덜 민망하겠지 하며 미래의 나 자신을 믿어본다.
벳푸는 저기 지도 위의 빨간 테두리로 표시된, 그리고 내가 직접 넣은 빨간 화살표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지도에도 적혀 있듯 '벳푸 지옥 순례'로 유명하다. (순례 이름을 '지옥'이라고 지은 것도 생각해보면 되게 웃긴다. 진실로 지옥을 이 세상에서 미리 순례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근데 그게 이 도시의 명물.) 이 도시는 일본의 남쪽 큰 섬 규슈에 속해있는데, 공항이 있는 후쿠오카나 기타큐슈와는 상당히(내 기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말인즉슨, 교통이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보니까 정말 꽤 시골이다.) 근데 다들 가보고 싶었는지, 공항에서 내려서부터 벳푸로 이동하는 경로가 매우 친절하게 블로그에 설명되어 있었다. 좋은 세상, 집단 지성의 극치. 노프로 블롬!
1. 벳푸에서 신기했던 것.
1) 한 여름인데 길 위의 맨홀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른다.
아스팔트 위를 걸어도 의심 없이 뜨거운 기운이 모락모락 느껴진다.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아니다. 분명히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 굉장히 뜨거운 기운이 도시 전체에서 올라온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열풍기를 켜놓은 그 느낌과도 상당히 다르다. 땅에서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러나 덥기만 한... 혹시 여기 겨울에도 따듯한가요?
2) 재미있는 한국어 설명이 종종 있다.
2. 벳푸에서 경험한 것. (그래도 돈값은 하는 게 중요!)
1) 흑모래찜질 체험
프로젝트를 위해 조사하면서 일단 특이한데 피부나 미용에 도움되는 건 전부 알아보고, 직접 체험해보자는 게 우선순위의 목적이었다. 첫 번째로, 벳푸에서 제일 오래된 목욕탕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모래찜질을 체험하게 되었다. 아래에 사진만 봐도, 어떤 식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겠으니 바쁘신 분들은 사진만 슥슥 보셔도 무방하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사실 체험하려는 사람이 할 일은 딱히 많지 않다. 옷을 유카타로 갈아입고, 찜질방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검은 모래판이 펼쳐져있다. (이미 모래판 전체에서 후끈후끈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중.) 비주얼 적응을 하기도 전에 모래 다지 개 같은 긴 막대기를 들고 있는 청년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면, 들어가서 지정한 자리에 누우면 된다. 이들은 친절한 얼굴로 목이나 팔 등의 자세를 편하게 잡아주고 괜찮냐고 물어본 뒤, '모래 덮기'를 시작하는데... 과장일지 모르지만, 약간 무덤에 묻히는 체험을 하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도 모래가 너무 따듯해서, 죽을 때보다는 느낌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근데, 그 따듯하게 기분 좋은 모래가 점점 더 많이 쌓여 무거워지고, 이내 내 몸 전체를 아주 꼼꼼하게 압박해서 더 이상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옴싹 달싹도 못한다는 말이 이런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 기분이 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왜, 그런 기분 있잖은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할 일이 많을 때, 내 몸이 자유로우면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아.. 나 지금 이렇게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모태 모태.. 이렇게 핑계 댈 수 있을 것 같은 모래의 강력한 구속 상태이다.
모래의 온도도 아주아주 뜨겁다기보다는, 얼굴에서 땀이 지끈지끈 주르륵 나오는 적당하게 후끈하고 적당하게 온화한 그런 정도라서 딱 좋고, 그냥 그 안에서 가만히 게으름 피고 싶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땀을 꽤 많이 흘렸던 것 같고, 조금 아쉽지만 충분히 즐겼다 싶을 정도일 때 다시 청년들이 모래를 거두고 나를 일으켜 준다. 몸이 노곤노곤, 따끈해진 채로 옆방의 작은 목욕탕과 샤워 시설에서 몸을 헹구고 나오면 끝!
#흙모래찜질체험 인사이트: 마사지에서 '지압'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몸을 따듯하게 데우고, 적절한 압력을 가해 눌러주는 행위가 피부와 몸 순환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서 몸을 눌러줄 수 있지 않을까? 순환이 좋아진다는 것은 건강의 개념인데, 결국 좋은 피부는 건강함의 지표 중 하나가 아닐까?
2) 지푸라기 불가마(간나와 무시유)
지푸라기 불가마는 내가 한국식으로 새롭게 붙인 이름이다. 그냥 딱 불가마 같은데, 안에 지푸라기 같은 바싹 말린 약초를 깔아놓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불가마 같았는데, 생각보다 그 화력은 무시무시했다. 내가 불가마로 입장하기 전 이미 다른 사람이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추가 시간까지 넣어서 더 진행을 하길래 꽤 오래 버틸만한 정도인가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8분 정도가 기본인데, 더 하겠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나왔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더 이상 버티다간, 코끝이 타오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워있을 때 등에서부터 코 쪽으로 올라오는 약초 향이 향긋하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뭔가.. 약방 아르바이트생이 주인 몰래 불 엄청 세게 때면서 땡땡이치는 기분이랄까? (왜 전부 이런 상상인지)
목욕탕 물 자체는 특별한 게 없었고 뜨거워진 몸을 식히는 목적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씻고 나오니 피부가 정말 광이 번쩍번쩍 났다.
#지푸라기 불가마 인사이트: 코에 스며들던 편안한 약초 향이 잊히지 않는다. 유사한 제품을 보면 향초를 태워서 힐링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불을 붙여 태우는 화학성분에 대해서는 몸에 안 좋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캔들 워머처럼 약초 성분을 뜨거운 열로 지져내는 방식으로 후각적인 편안함을 제공하는 제품은 어떨까?
3. 벳푸 탐방을 통해 깨달은 점
아.. 그저 체험하고 보는 것만으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어렵겠구나.
이런 식으로 남은 나라를 탐방해서는 안 되겠구나.
언어가 섬세하게 소통되지 않으니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건 힘들겠구나.
목욕이라는 주제 자체가 눈치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목욕은 물이 다하는구나......
나, 이 프로젝트 잘 해낼 수 있을까?
>> 내일 목욕 어디까지 해봤니, <유후인>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