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들의 키가 나보다 커졌을 때.

by 글맘 라욤

집에서 맨바닥을 밟을 때 발바닥이 어느 순간 불편해졌다.

불편한 발바닥을 위해 구름 슬리퍼라고 불리는 조금 높고 푹식한 EVA 슬리퍼를 구매해서 신고 있다.


그 슬리퍼를 신은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오늘 바쁜 아침에 슬리퍼를 찾지 못하고 큰 아이와 나란히 서게 되었다. 둘 다 맨발이었다.

아이의 코 높이가 나보다 높아져 있었다.


정말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나보다 낮았던 거 같은데 아이는 이미 훌쩍 자라 있었다.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뱃살이 조금 들어간 거 같았지만 그 이외의 변화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키는 훌쩍 자라 있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상당히 마른 축에 속했다.

1년 유예를 결정하고, 다행이다 생각했던 건 1살 많아도 키가 그렇게 그 또래와 다르지 않았다는 거였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아이는 급격히 살이 찌고 덩치가 커졌다.


오늘 아이의 옷을 입히고,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며 나보다 커져 버린 아이를 쳐다보았다.

많이 컸네. 내 새끼.


키가 아니라 마음이 자라기를 조금이라고 말이 트이기를 바랐는데

아이는 키는 컸지만, 말문도 트이지 않았고 아직 가끔은 이불이나 바지에 실수하는 아이이다.


아이가 아렸을 때...

아이의 키가 이렇게 커서 중학교가 다니는 상상을 했었다.

아이가 7살이 되기 전에 자폐라는 걸 머리는 받아들이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가방을 메고 교복을 입고 나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 학교에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아이의 키는 나보다 커져있겠지.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영혼이 자라지 않는 아이가 커져가는 건 조금 많이 아픈 일이다.

아이마다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 있듯이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어려움도 다 각기 다르다.


나의 어려움은 몸은 커지지만,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아닐까.

나는 점점 작아지고, 아이는 점점 커지고.

난 점점 약해지고, 아이는 점점 강해지고.

난 점점 사회활동이 줄어들고, 아이는 점점 사회활동을 늘어나가야 하는 거.


아직 혼자 다니지 못하는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워보내며 오늘도 기도를 해 본다.

언젠가 저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집을 찾아오는 그날을.

왜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는 게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는 그날을.


_effbe154-ee24-4e54-9986-bd37f0f227c7.jpg


나보다 키가 훌쩍 커진 그날...

아이가 내 손을 자연스럽게 놓게 되는 그날을 다시 한번 상상해 본다.

이룰 수 없더라도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헛된 기대라도 엄마니까 하고 싶은 그런 상상을 오늘도 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육아에 쓰는 에너지는 몇 %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