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낫 배드

by 글맘 라욤

오래간만에 친한 언니에게 전하가 왔다.

부모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간혹 신문 기사도 작성하는 능력 있는 엄마이다.


발달장애 세계에 인문한 지 10년이 훌쩍 넘긴 우리는 나름 센터부터 대체의학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발달장애 관련 치료 8할 정도는 해 봤을 거라고 말하는 동지이다.


반갑게 동지의 전화를 받았는데, 언니는 기운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부모회에서 작게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고향을 떠나와, 새롭게 자리 잡은 곳에서 마음을 주고받을 사람이 정말 없다며

그 사실이 참 공허하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이렇게 똑같을
내 모습이 너무 힘들어.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우리의 아이들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걸 안다.

언니의 아이는 혼자서 학교를 다녀오고, 센터도 스스로 가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아이는 부모나 활동보조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 스케줄에 맞춰 엄마의 일정도 짜야한다. 10년이 지나도... 15년이 지나도 우리의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언니는 그런 아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선물해 주기 위해 부모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정작 마음 터 놓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왜 하나도 없는지 그녀 스스로가 잘못 살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언니 우리 나이에는 친구 힘들어.
그냥 나랑 잘 놀아야 돼.


언니와 다르게 난 어떤 활동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회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언니와는 다르게,

난 전혀 그런 부모회 활동을 하지 않는다.


신랑도 나에게 나중을 위해 이런 활동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난 좀 어렵다.


우선, 내 아이가 정말 그렇게 부모회 활동을 하며 어느 프로그램에 넣어달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

원예 활동, 운동 활동 축구, 배구, 뛰기, 걷기, 공 굴리기 등, 예술 활동 그림 그리기, 만들기 등

모든 활동이 1:1 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느 순간 난 그런 활동과 멀어졌다.


아이가 발달학교 다닐 때 한 엄마가 내 아이와 그녀의 자녀를 한 반에 넣는 걸 반대했다.

내 아이가 너무 낮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화가 많이 났다.

신랑에게 그녀가 타는 차보다 좋은 차를 뽑아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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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는 엄마들이야 당연히 있었다. 지금도 연락하고 즐겁게 지내는 엄마들도 있지만, 아이의 장애정도로 비교하는 엄마들도 분명 있었다. 그런 줄 세우기에 난 조금씩 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비껴가기 시작했다.


좋은 정보라며 새로운 치료를 시작하는 것도 이제는 웃으며 넘기게 되고

아이에게 좋은 선생님이라도 70km를 운전하며 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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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난 조용히 지금 다니는 방과 후 센터와 학교 이렇게 작은 세계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이를 위해 모임을 찾아가거나, 학교 엄마들을 찾지 않는다.

그들로 인해 서운한 일도 없고, 그들이 나를 신경 쓸 일도 없다. 조용한 아웃사이더가 된 것이다.


아이가 20살이 되었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할 거냐고.

신랑도, 언니도, 그리고 내 주변에 엄마들이 묻는다.


지금 다니는 방과후센터 계속 다니고,
학교 졸업하면 주간보호센터 다닐 거예요.


방과후센터를 지금 열심히 다니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곳 방과후센터가 운영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지낼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20살이 돼서 사회와 정말 단절되지 않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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