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생리가 끊어지고, 갱년기가 찾아온다. 난 좀 빨리 갱년기가 왔다. 감정기복도 심했고, 더웠다 추웠다 온도 변화에 민감해서 신랑이 도대체 넌 춥고 더운 게 왜 이렇게 극단적이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여성호르몬보다 날 더 슬프게 한 건 노안(老眼)이다.
어느 순간 핸드폰의 글씨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즐겨보던 웹소설을 끊게 된 것도 노안 때문에 e-book을 보지 않게 되면서부터였다. 눈이 나이가 든다는 건 생각보다 많이 슬픈 일이다. 지금이야 안경이 좋아져서 일상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하는데, 다초점 렌즈는 그래도 어지러움이 없을 수는 없고, 돋보기가 쓰는 건 핸드폰을 볼 때마다 꺼내는 불편함이 있다.
그 불편함 때문에 요새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뭐든 다 때가 있어.
학생일 때,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공부도 한 때라며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고,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저런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모른다. 결국 다 지나야 아는 거 같다. 공부를 할 수 있는 머리와 시간 그리고, 그에 맞는 신체도 그때에만 가질 수 있었던 거였다. 지금 읽고 쓰기 위해서는 안경의 힘이 필요하고,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신체는 착실하게 노화의 길을 걷고 있고,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주관적 나이(age you feel)”가 실제 건강·수명과도 연관 있다는 보고가 있다. 예컨대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3년 이상 젊게 느낀다”는 사람들은 사망률이 낮았다는 연구이다. (타임지 / Study Finds Those Who Feel Younger Might Actually Live Longer / December 15, 2014) 젊게 생각하고 행동할수록 노화가 늦춰진다는 것이다.
난 이 반대로 했던 거 같다.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몸이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고, 식은땀도 자주 났다. 그냥 사람들한테 "벌써, 갱년기인가 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정말 난 갱년기에 접어들었다. 국제 연구(WHO, Human Reproduction Update, 2021)에 따르면, 평균 완경의 나이는 49.5 ~ 51.5세로 보고하고 있다. 난 이것보다 3년 정도 빠르다. 결국 내가 느끼는 나는 지금 신체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거고, 내 신체를 그를 착실히 실천해 가는 중이다. 연구 결과처럼 자신의 나이를 보다 어리게 느끼는 게 참 중요하다.
호르몬의 영향과 더불어 난 노안에도 적응해야 했다. 눈이 잘 안 보이면서 독서하는 습관도 바뀌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습관도 생겼다.
누워서 e-book을 보던 습관은 사라지고(그래도 누워서 유튜브는 잘만 보고 있다. 슬프게도), 종이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 호르몬 영양제와 루테인이 포함된 눈 영양제, 비타민C, 인지능력개선을 위한 영양제 등 다양한 종류의 영양제를 알아보고 복용하고 있다.
책에 집중하기 위해 자리에 앉기 건 커피를 타고, 안경을 쓰면 나만의 집중 루틴이 만들어진다. 안경을 쓰는 걸 사전의식처럼 만들어 놓고 보니, 그런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고 건강하게 사는 게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위생환경이 좋아지고, 의학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기대수명은 100년은 무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환경의 변화가 개인의 노화를 막게 해 줄 수는 없다. 해가 뜨면, 지는 것처럼 인간은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이런 죽음으로 가는 길. 노화는 당연하지만,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필요하다. 주관적 나이.. 내가 느끼는 나의 나이를 조금 더 젊게 가지기 위해서는 운동, 식이요법도 중요하지만, 내가 날 조금 더 어여쁘게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안경을 쓰고 책을 보는 나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운동을 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는 나를 응원하며,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때도 내가 하는 말보다 듣는 말이 많으면 그런 나를 칭찬하고, 예뻐하자.
나이 든 내 눈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시 한번 느끼며... 다가오는 나의 노화를 조금 기쁘게 그러나 되도록이면 천천히 받아들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