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이 왔다. 소아신경과 전문의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 된 것이다.
전날 저녁부터 뭔가 마음이 답답했다. 그냥 대학병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이가 아직 어떤 진단명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만약 의사 선생님이 보고 뇌파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어떻게 검사를 해야할지 막막했다. 의사를 보기 전부터 뭔가 마음이 심난했다.
자폐아이들은 경기가 늘 동반된다고 한다. 지금 정신과 선생님도 그렇기 때문에 경기약을 넣었다고 했다. 그정도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만약에 아이가 경기가 있다고 하면 약은 신경과 약을 먹어야 하는 게 맞다.
경기약과 정신과약
만약에 아이가 경기가 있다고 나오게 되면 이 두가지 약으로 먹어야한다. 내 마음은 깊은 곳 왜 이렇게 병원에 가는게 힘든걸까 생각해보니 그거였다.
솔직히 정신과 한 곳 다니는 것도 한달에 한번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일과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거기에 신경과 약을 대학병원에서 먹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나에게는 큰 부담잉 될 거라는 걸 시작도 하기 전에 난 알고 있었다.
작은 아이를 태권도장 근처에 내려주고, 신랑이 있는 사무실로 갔다.
대학병원 가는 길 생각보다 막히는게 덜했다. 시간이 12시를 넘어서 오전 정체가 풀려서 그런지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많이 걸리지 않았다.
진료시간은 1시 40분이었는데, 대학병원 주차장에 들어서자 시간은 1시 10분 정도였다.
수납창구에 가서 수납을 하고,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재야한다고 했다.
여기 간호사들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안하겠다고 하는 성윤이에게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건지 성윤이도 순순히 협조를 했다.
키는 내 생각보다 작게 나왔지만, 몸무게는 얼추 비슷하게 나왔다.
소아신경과로 가는 길을 두 번이나 물어보고 나서야 찾아갈 수 있었다. 들었던 말인데, 순간 또 까먹고 다시 물은 것이다.
신경과에서 대기를 하는 중 이상하게 아침부터 멍했던 아이가 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은 대기실에서 그렇게 얌전히 있어주는 게 고마웠다. 아이의 차례는 정말 딱 제시간에 불리웠다.
선생님은 침착했고, 그리고 아이에 대해 예민하게 체크하지 않았다.
어떤 의사 선생님은 들어가는 순간부터 뾰족한 느낌이 있을 때가 있었는데, 이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가 얌전히 있어준 것도 한 몫을 했다.
"뇌파 검사는 해 보셨나요?"
뇌파검사는 해 본 적이 없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3살 무렵 MRI와 유전자 검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하자, 해당 병원에서 진료기록을 떼어달라는 말을 하고, 아이가 고개를 떨구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은 아무래도 뇌파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왕이면 MRI도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하고 진료는 끝이 났다. 아이의 성향때문에 당일 검사는 어렵다고 선생님도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입원 후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검사 일정이 한참 뒤에나 나올 줄 알았는데, 2주 후로 바로 잡혔다. 만약 경기파로 인해 아이가 자꾸 고개를 떨구고 힘이 빠져 넘어지는 거라면 최대한 빨리 약물치료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검사는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다고 했다.
다인실이 아닌 1인실로 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입원일정을 원무과와 이야기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렇게 진료를 제시간에 보았지만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4시가 넘어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 집까지 꽤 오래 걸렸다.) 검사는 잘 할 수 있을거라 믿고 진료는 그렇게 끝이 났다.
신랑이 지친 내 마음을 안 건지, 저녁은 삼겹살을 먹자고 했다.
다다음주 이제 아이 검사만 하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