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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랑 Nov 05. 2019

[퇴사일기#03] 퇴사의 기회비용은 무엇일까

퇴사 후 얻은 것과 잃은 것

인생은 언제나 갈림길이다.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느쪽이든 내가 가는 길이 곧 답이 될 것이다.

물론 그 답이 100% 행복하고 편한 길이지는 않겠지만, 내가 가지 않은 길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결국 이게 가장 최선이라고 믿을수밖에 없다.



퇴사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퇴사한 사람과 퇴사할 사람으로 나뉜다.

그 중에 나는 퇴사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퇴사를 하면서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

퇴사를 고민중인 사람들에게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공유하고 싶다.

나의 경험이 퇴사를 고민중인 사람들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퇴사 후 얻은 것


(1) 정신적 여유와 신체적 건강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정신적 여유와 신체적 건강을 얻었다.


나는 매일 아침 9시~9시반까지 기사거리를 고민해 보고를 해야했다.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어떤 기사를 쓸지 고민하는게 정말 괴로웠다. 뉴스가 있는날에도, 없는날에도 기사는 써야 하니까. 그게 엄청 괴로웠다 매일매일. 전날 밤에 푹 잠들기 힘들었다. 눈을 뜨면 또 괴로운 하루가 시작되니까.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도 이를 악물고 자는 습관이 생기면서 28살 때 퇴행성 턱관절염을 얻게 됐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보상심리로 자꾸 달거나 고칼로리인 음식을 찾게되면서 살도 찌고, 운동할 시간은 없으니 몸은 점점 망가져갔다. 게다가 업무상 회식은 왜그렇게 많은지. 나의 위장은 쉴 틈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상이 전부 사라진거다.

평온이 찾아왔다.

이 모든 것들이 온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점점 혈색도 좋아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술도 줄이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운동도 꾸준히 한 결과다. 체중은 줄지 않았지만, 체지방이 줄고 근력이 늘어났다.


또,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짜증이 줄었다. 그동안 내 짜증 때문에 힘들어하던 연인과의 관계도 훨씬 개선이 됐다.




(2) 가족과의 시간

그동안 일에 치여, 모임에 치여 가족과의 시간은 뒷전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퇴사를 하고 집에서 쉬게 되니까 그동안 놓쳐왔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염색 없이는 흰머리밖에 남지 않는 우리 아빠, 팽팽하던 얼굴에 깊게 주름이 패이기 시작한 우리 엄마.

맨날 도움도 안되는 짜증나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의젓하고 의지가 되는 우리 오빠.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나의 가족들의 시간도 함께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더 늦기 전에 엄마를 위해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봤다.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아빠 엄마를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던가, 따뜻하게 우려낸 차 한잔과 함께 부모님과 소소한 다과시간을 갖는다던가, 주말에는 운동 겸 여유롭게 동네 산책을 다녀온다던가.


이렇게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 객관적 통찰

퇴사를 하고 나니 내가 했던 일, 그리고 내가 다녔던 회사에 대한 객관적 통찰이 가능해졌다.

그동안에는 그 중심에 서서 일에 치여 내가 했던 일, 내 위치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니 확실히 타자, 제3자가 되어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현재 전 회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노력이 필요한데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던가. 이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한계, 그리고 비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퇴사 후 얻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택에는 언제나 그에 대한 기회비용이 따르는 법이다.




퇴사 후 잃은 것


(1) 정기적인 수입

너무 당연한 말이다. 일을 그만뒀으니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매달 25일이면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큰 보람 중 하나였다. 단순히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에서는 나의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 바로 임금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바뀌는 연봉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달간의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나름 뿌듯했다.


이렇게 번 돈을 어떻게 운영할지 나름 고민하는 게 즐거웠다. 투자를 하기도 하고, 여행하는데 쓰기도 하고, 저금을 하기도 했다.


그런 즐거움이 사라졌다. 각오는 했지만, 25일에 나가는 돈만 있으니 뭔가 허전하다.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 소속감

대학원 진학 전까지 속해있는 집단이 없었다. 아무리 인생은 혼자산다고 하지만, 단체생활에 익숙해진 나에게 소속감이 없다는 점은 하나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인간에게 소속감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지만,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이 찾아온다는 걸 느꼈다.


내가 느끼 이 막연한 불안감이 무엇일지 곰곰히 고민해보았다.


아마도 '무슨무슨 회사의~~' 누구 라고 불리던 게 사라졌기 때문일거다.

앞에 수식어가 없고 있는 그대로의 나는 별볼일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일거다. 나 혼자의 힘으로 세상 사람들과 마주하기에 뭔가 부족하고 부끄러웠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소속감은 약간의 방패막이 같은 존재였나보다. 사회에서 앞길을 헤쳐나가고 누군가의 (질문)공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방패막. 그런 방패막이 사라지다 보니 분명 끝없는 불안감이 든 게 아닐까.



(3) 업무상 네트워크

이 또한 당연한거지만,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일할 땐 당연하듯이 연락하던 사이도, 일을 그만두고나니 점점 멀어지고 어색해진다.


명함에 달고 있던 명패가 사라지고 나니, 과거에 알고 지내던 누군가에게 연락하기가 참 애매하다. 그 사람들과 맺었던 인연이 업무로 인해 맺었던 인연인데, 업무를 그만두고도 계속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곰곰히 연락처를 뒤지며 생각해보니, 직을 버리고도 나와 편하게 만나줄 것 같은 사람은 열손가락 안에 꼽혔다.


실제로 퇴사 후에도 잘 지내보자고 연락을 준 사람은 대략 대여섯명. 그렇게 연락을 준 사람들과는 퇴사 후에도 한 번 이상 만나 밥을 먹었다. 그래, 이정도 사람들만이 업무 관계 없이도 나와 연락을 하는 진짜 인간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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