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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랑 Nov 11. 2019

[퇴사일기#04] 회사의 목표는 내삶의 목표가 아니었다

퇴사의 이유를 묻는다면

"자아 실현"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 직업을 선택한 것은 자아 실현이 목표였다.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니거나, 돈 잘 주는 회사가 최고라고 일컬으며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이직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순진하고 세상 태평한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아 실현'이 직업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이었다.

자아 실현은 자아의 본질의 완성이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한 잠재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실현하는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본질을 합리성으로 보았으며,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을 생산성이라고 표현했다. 인간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바로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계속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 욕구를 가진 개체이며, 이를 말과 행동 글 그림 음악 춤 등 다양한 수단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아를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어린시절부터 눈물이 많았다. 쉽게 어떤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곤 했다.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상대가 기쁜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기뻐하곤 했다.

예전에 KBS에서 '사랑의 리퀘스트' 라는 방송을 하곤했다. 희귀병이나 난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치료법이 없거나 치료 비용이 너무 막대하게 들어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방송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나도 모르게 ARS 전화로 1000원을 기부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난 나와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해 했으며,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영감이 더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에 갈 때마다 이번엔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설렜으며, 혼자 여행을 떠날 때마다 곳곳에서 만나는 인연에 기대감이 부풀어올랐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며,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식과 정보를 공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렵고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부정한 자들을 부정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리 말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의 이상향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해가는 법을 찾아는 과정이라고.

이런 나의 꿈에 대해 나는 점점 타협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공정하고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여건이 녹록치 않았다. 해야할 일은 많았지만, 사람이 부족해 언제나 마감에 쫓기고 여유있는 기사 작성, 심도있는 취재를 할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재미있는 일, 흥미로운 일들을 취재하고 전달하고 싶었지만, 번번히 내 아이디어는 기각됐다. 좋은 뉴스보다는 돈이 되는 일을 하기를 요구했으며, 공정한 전달자보다는 눈치빠른 협상가가 되기를 원했다.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었지만, 오히려 누군가를 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를 돕더라도 그 사람이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도와주면 나한테 이득이 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해만 끼치는 인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일을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는 내가 생각했던 목표나 방향성과는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그 정도가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그 선을 넘어갔으며, 더는 돌아오기 힘든 곳까지 가버렸다. 입사 초만 해도 내 삶의 지향점이 회사의 목표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곳에 입사했는데, 더 이상 회사의 목표는 내 삶의 목표와 일치하지 않게 됐다. 이곳에서는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되고 싶은 인물이나 역할이 없었다.


이렇게 삶의 방향과 다르다면, 돈이라도 많이 벌었으면 좋았을텐데, 그 또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최소 시급보다는 많이 받았지만, 업무강도나 업무량에 비례하지 않는 월급 또한 불만족 포인트였다. 나의 삶의 목표를 포기할정도로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주변에 나를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위안을 삼으며 지속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나를 걱정해주는 주변인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만 남게 됐다. 힘들었다. 그 사람과 말도 섞기 싫었으며,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옆에서 아닌척 하면서 넉살 좋은 척 웃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아마 그 때였을 것이다. 진지하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때가.

일에서 얻지 못한 만족을 그나마 사람이 채워주고 있었는데, 그 사람마저 사라지니 정말 더는 이곳에 남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적으로 느껴졌다. 겉으론 웃지만 뒤에선 나에 대해 손가락질하거나 평가를 내릴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뜨기 시작했다.





누가 퇴사의 이유를 묻는다면 아제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거다.


"이곳에서는 저의 미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있게 될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처우를 더 개선시켜 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더는 회사의 목표가 제 삶의 목표를 이끌어줄 수 없을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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