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캐나다로의 이사 준비로 정신 없이 바빴다. 집을 구하고, 리모델링 공사를하고, 가구를 채워넣고, 마카오에서 10박스가 넘는 짐을 싸서 컨테이너에 실어 보냈다. 정들었던 차를 팔았고, 집을 내놓았다.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 혹은 도전을 위해 한국에 잠시 들어가 공부하며 캐나다 대학 입학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자꾸 미뤄지는 계획, 남편의 일 때문에 2019년 2월 예정이던 이사는 몇 달이 넘도록 계속 지연되었다. 이미 짐은 다 보내버린 상태. 옷도, 신발도, 주방기구들도 모두 보내버린 그 상태에서 원치않는 미니멀리즘한 삶을 몇 달이고 지속했다. 시어머니가 오셨을 때, 꺼내놓을 젓가락이 없어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드렸고, 접시 2개에 그릇 3개로 온갖 음식을 어찌저찌 해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의 디데이가 왔다. 자꾸 미루어지는 이사에 구입할 수 없었던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던 그날, '이제 다 됐다' 싶었다.
떠나기 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이민국에 마카오 영주권에 대해 문의를 했다. 마카오 영주권은 2015년에 신청 했었고 7년을 갱신하면 완전한 영주권 취득이 가능했다. 물론 이사 때문에 완전한 영주권 취득은 불가능해 졌지만, 임시 영주권으로써 계속 유지가 됐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 3일 전, 이민국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줬다. 이민법 개정으로 영주권 갱신 도중 마카오 거주를 하지 않고, 갱신을 하지 않으면 바로 영주권이 취소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럴수가.
영주권 갱신은 이미 5년을 했었고, 앞으로 2년 거주기간 중 1년만 채우면 영주권 취득이 가능한데 그걸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아예 취득 포기를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마카오에 근거지를 두고있는 남편 일의 특성상 외국인 신분으로 출입국을 반복하며 살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캐나다 이사는 물건너 가버렸다. 이미 끊어 놓은 비행기 티켓은 어쩔 수 없으니 캐나다에서 2달간 긴 휴가를 가지기로 했다. 캐나다의 여름은 환상적이었다. 당장은 살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일단은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다시 신혼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여름을 보냈다. 신선하고 값싼 캐나다 연어로 스테이크를 매일 먹다 시피 했고, 밤마다 서늘하게 여름공기가 불어오는 발코니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긴 여름휴가를 보내고 다시 마카오로 돌아왔다. 퇴사 후 1년만 즐기고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해 보려던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어느새 퇴사 2년이 넘어버린 경력 단절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불안했다. 마카오에서는 내가 했었던 승무원 일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으로 2년을 이렇게 놀고 먹으며 지내는 것도 싫었다. 다시 돌아온 마카오는 너무 더웠고, 날씨는 끈적 거렸다. 우울감과 모든 계획이 다 틀어져 버린 상실감에 스트레스를 받아 남편과 크게 싸웠다.
이력서를 돌렸다. 중국어 가능자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찾아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 운 좋게도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해왔던 항공 관련 사업부 일이 었는데, 면접자도 내 경력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바로 면접날짜를 잡고, 오랜만에 면접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급하게 구두와 정장을 사고 면접을 준비했다.
면접 당일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를 했다. 정말 혹시나, 혹시나 임신을 해서 새로 들어가는 직장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두줄.
이럴수가. 그토록 두 줄 보기가 힘들어서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를 여러번, 이렇게 아기가 찾아오게 되다니. 결국 면접은 취소했고, 임산부로써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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