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by 이윤지

인터넷의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아이의 언어 발달이 느린 기준은 또래보다 6개월 이상 뒤처진 경우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정도의 지연이 확인되면, 전문 상담 센터나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다는 말도 함께 따라붙는다.


그 시기가 바로 ‘두 돌’ 무렵. 많은 아이가 이 시기에 갑자기 말이 터지며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두 돌 전에 명료하게 발음하는 단어가 10개 이하이면 늦은 것이고, 두 돌을 넘기면 단어 수가 50개는 되어야 정상 범위라는 이야기. 30개월 이전에는 두 단어를 조합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기준에 못 미치면 언어 발달 지연이라는 진단이 붙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항목은 하나도 빠짐없이 내 아이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도 모르게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고 정보의 수렁에 빠져들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애써 창을 닫았다. 마치 끓어오르던 불안을 억지로 덮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 아이마다 다르다고 하잖아. 서두르지 말자.’


이름을 부르면 뒤돌아보기도 하고, “이거 갖다줘.” 하면 정확히 알아듣고 가져오기도 했다. 말귀는 확실히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왜 아이는 두 돌이 지나서도 여전히 “아아아, 까까까까.”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걸까. 말이 안 되는 불안한 조합의 소리. 혹시 단순히 말이 늦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내 마음속에선 이미 다양한 의심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불안에 기름을 부은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아이가 21개월에 어린이집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진행된 1학기 학부모 상담에서는 “잘 적응하고 있다.”라는 말에 안도했다. 하지만 28개월이 되어 다시 열린 2학기 상담은 달랐다. 아이는 여전히 기저귀를 떼지 못했고, 말문도 트이지 않았다. 상담은 자연스럽게 그 문제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원장님의 한 마디가 내 마음을 깊이 내려앉게 했다.


“어머니, 주원이가 친구들과 비교하면 말이 좀 느린 것 같아요.”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또래 아이들은 지금 어느 정도 말을 해요?”


“음, 예를 들면 당근 죽이 급식으로 나오면요, 빠른 친구들은 ‘선생님, 죽 안에 당근이 들어있어요’라고 정확하게 표현해요. 보통 친구들도 ‘선생님, 당근!’ 정도는 이야기하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도, 당근도, 아직은 우리 아이에게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그 말이 전부 현실인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났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일까요?”

조심스럽게 물었고,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올해까진 어린이집에서도 언어 자극을 최대한 줄게요. 단어 카드를 다 같이 외치는 한글 수업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원이는 그 시간에 앞에 나가기도 어려워하고, 뒤에 서서 겨우 작은 목소리를 내요.”


그 수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오히려 친구들의 씩씩한 외침이 아이를 더 주눅 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마음 한편에서는 “가정에서 더 해줘야 하나?” 싶은 자책이 들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 병원에 가야 하나?” 하는 현실적인 판단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원만은 가고 싶지 않았다. 무슨 고집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병원에서 그 ‘사실’을 또렷하게 듣게 되는 순간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그 시간을 애써 미루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에서 단어 카드놀이를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말하기를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가 나를 향해 던지는 눈빛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혹시 내가 너무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날, 인터넷에서 ‘ㅍ’ 출판사의 말하기 프로그램이 언어 자극에 효과적이라는 글을 봤다. 나도 모르게 구매창까지 눌러봤지만, 높은 가격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중고 제품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조차 못 해주는 내가, 너무 초라한 엄마는 아닐까? 자책 속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책을 많이 읽어주기로 했다.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그림책, 반복되는 구조로 아이가 익숙해질 수 있는 동화책을 골라 매일 반복해서 읽어줬다. 단어를 강요하기보다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아이가 마음에 드는 단어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고 싶었다. 아이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는 시간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언어라는 기준이나 숫자에서 벗어나, 그냥 엄마와 아이로서 따뜻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30개월까지만 기다려보자.’


그게 나 스스로와 한 약속이었다. 그때까지 단 한 단어도 나오지 않으면, 병원에 가보자고. 하지만 30개월이 지나도 아이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러자 나는 36개월로 다시 기한을 밀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미룰 수 있을까. 나조차 그 끝을 알지 못한 채로. 하지만 그 미루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아이와 함께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성장이 빠르게 눈에 띄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기다림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아이와 마주하며 지냈다. 말이라는 것이 반드시 빠르게 터져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언젠가는 아이도 스스로 준비된 순간에 조심스럽게 첫 단어를 꺼내게 될 거라고 자신을 끊임없이 다독이면서 아이의 곁을 지켰다.


나는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걷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빠르게 달리기보다는 함께 걸으며 주변을 더 오래 바라보는 법을, 말보다는 눈빛으로 더 깊은 대화를 나누는 법을, 세상의 기준보다 우리만의 호흡을 더 소중히 여기는 법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 기다림은 때때로 외롭고 불안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자라고 있었다. 말이 없을 뿐 아이는 표정으로, 눈빛으로, 손짓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속에는 분명히 아이만의 언어가 있었다. 언젠가 아이의 입에서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첫 단어가 툭 하고 튀어나올 거라는 믿음을 나는 절대로 놓지 않았다. 그 단어는 어쩌면 ‘엄마’일지도 모르고 ‘까까’ 같은 소박한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말보다 깊고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을 준비하며 오늘도 아이 곁에 서 있다. 조용히, 그러나 절대 멈추지 않고 함께 걷는다. 아이의 속도로, 아이의 리듬에 맞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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