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언제나 나는 우산을 챙기며 집을 나선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고 먹구름만 낀 상태라도 일단 챙겨 나온다. 때때로 급하게 나오느라 차마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날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아이와 함께 외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내린 비가 조금씩 더 세차게 내려왔고, 나는 무심코 우산을 챙기며 집을 나섰다. 아이가 나를 따라 나오다가 우산꽂이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두 돌이 지난 아이가 말했다.
“쭈!!” (주원이도 우산 쓰고 싶어요.)
“우산 쓸래?”
나는 아이가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짐작만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이는 말없이 내게 조용히 다가와 작은 손을 내밀었다. 같이 쓰고 싶다는 의미였나보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우산 하나로 두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고민 끝에 오늘을 특별한 날로 지정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비 오는 날 아이와 함께 우산을 쓰는 작은 순간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가올지 기대하며 결국 우산을 함께 쓰기로 했다. 아이의 작은 손이 내 손을 잡고 우리는 서로 조금 더 가까워졌다.
처음엔 불편했다. 서로의 몸이 부딪히고 우산을 잡은 손도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걷다보니 작은 공간 안에서 서로의 몸이 가깝게 느껴졌다. ‘불편함’ 보다는 ‘가깝다’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는 계속 내렸고 우산은 아이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발걸음이 더뎌졌고 우산 아래에서 점점 더 많은 감정이 쌓여갔다.
아이의 손은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말없이 걸어가던 아이는 비가 얼굴에 떨어지면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커다란 눈을 반짝였다. “비! 비!” 아이는 손바닥을 펴서 하늘을 향하게 뒤집었다. 아이는 그 손짓으로 모든 걸 표현하려 했다. 그 작은 손짓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직 말이 서툴지만 그 순간의 정서는 완벽하게 전해졌다. 그 작은 몸짓 속에 담긴 감정은 내가 아무리 말로 설명하려 해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순수했다. 비가 내리는 속에서 아이는 세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산 하나로 함께 비를 피하는 그 순간이 어떤 여행보다도 값진 이유는,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그 과정 자체가 온전히 나와 아이를 이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일 일상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소홀히 대할 때도 있지만, 그때 비 오는 날 우산 아래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동안만큼은 오직 서로만을 위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 아이와 함께 걷던 길은 단순히 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우산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더 깊이 느끼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었음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저 함께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했다.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그저 둘이서만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바로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 둘만의 소중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작은 보폭에 맞추다 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른인 내 입장에서의 일이고 아이는 본래 제 속도대로 비 내리는 것을 즐기며 너무나도 신나게 걷는 중이다. 그런 아이의 속도를 존중해야겠단 다짐을 했다. 아이는 아직 많은 말을 할 수 없지만, 그 작은 손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느끼며 나는 아이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비가 내리는 속도에 맞춰 우리도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며 서로의 손을 잡고 세상과는 잠시 멀어져 그 작은 순간을 온전히 즐겼다. 그렇게 비 오는 날의 우산이 우리에게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나와 아이 사이의 깊은 연결을 상징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소소한 순간들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언어 없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을 이루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결국,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