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지나 쨍쨍

by 이윤지

두 돌이 넘었지만, 아이의 입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다. 또래 아이들이 재잘재잘 말을 시작하며 부모와 눈을 마주치고 생각을 표현하는 모습이 주변에선 점점 익숙해질 무렵, 우리 아이는 여전히 침묵에 가까웠다. 기린은 ‘기’, 파란색은 ‘파’, 딸기는 ‘딸’. 단어의 조각들만 간신히 꺼내 놓을 뿐, 말이라는 완성된 세계에는 아직 발을 들이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조각들조차도, 우리에겐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주원아, 기~ 해볼까?”

“기~”

“이번엔 린~ 해봐.”

“리~”

“두 개를 합치면? 기린!”

“기!”


아이가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나는 모든 순간을 ‘언어의 씨앗’으로 만들고자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식탁 위에 놓인 과일, 거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햇살, 아이 손에 쥐어진 장난감의 움직임 하나까지 말이 자랄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특히 아이가 반응하기 쉬운 의성어와 의태어는 나의 주 무기였다.

“철썩! 파도가 왔네~”

“솔솔~ 바람이 불어요!”

“방울방울~ 비눗방울이 춤춰요~”


이런 식으로,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세상에 이름을 붙였다. 언어란 결국 감각에서 시작된다는 걸, 나는 아이 덕분에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아이의 말이 완성되지 않아도, 그 짧은소리 하나하나가 나에겐 희망의 씨앗이었다.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려고 애쓰는 흔적, 그리고 내가 그 세상에 다리를 놓아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나는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병원 검진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날이었다. 두 달에 한 번, 아이의 당원병 정기 검진을 위해 우리는 늘 같은 길을 달렸다. 그 도로에는 유난히 터널이 많다. 어두워졌다가 다시 환해지는 그 짧은 순간이 아이에게는 작지만 큰 변화의 체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깜깜해졌네~ 깜깜한 밤이에요~”

터널에 들어설 때면 익숙한 말을 꺼내며 아이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리고 곧이어 밝아지는 순간, 잊지 않고 외쳤다.

“까꿍! 햇님이 쨍쨍 빛나요~ 쨍쨍!”


나는 이 단순한 반복이 언젠가는 아이의 입술에서 새로운 소리를 끌어낼 거라 믿었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던 말문 트임의 시간, 그 속에서도 나는 꿋꿋하게 말을 걸고, 함께 웃고, 기다렸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의 재롱에 웃음은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후, 다시 같은 길을 지날 때였다. 나는 습관처럼 “깜깜~”, “쨍쨍~”을 외쳤고, 이번에도 아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반응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까깜!”

“째쨍!”


순간, 차 안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나는 눈이 동그래진 채 아이를 바라봤다.


“주원아! 뭐라고 했어? 다시 한번 말해볼까?”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다시,

“까깜~ 째쨍~”


그때 나는 알았다. 우리 아이가, 드디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 두 단어는 단순한 의성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가 표현한 첫 문장, 첫 감정, 첫 세계였다. 그동안 아이가 느끼고 있었던 것을, 마침내 말이라는 통로를 통해 나눌 수 있게 된 순간. 그 짧은 말속에는 기쁨과 설렘, 그리고 표현하고자 했던 수많은 감정이 농축되어 있었다. 그 한마디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기다렸던가. 수없이 비교하고, 걱정하고, 남몰래 속상해했던 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이는 느릴 뿐, 멈춘 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조금 더 오래, 더 깊이, 서로를 바라봐야 했던 거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조급하지 않다. 아이가 느리게 걸어도, 더디게 말해도 괜찮다.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단단하게 자라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나에게 건넨 말 한마디는 어떤 수식어보다도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깜깜한 터널을 지나, 쨍쨍한 햇살 아래에서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나는, 아무 일 없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매일 새삼 느낀다. 그 평범함이 우리에게는 기적이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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