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속도를 믿는다는 것

by 이윤지

1>

첫째 아이는 18개월이 되어서야 스스로 서서 한 걸음을 내디뎠고, 30개월에서야 ‘엄마’를, 31개월에서야 ‘엄마 주세요’라며 두 단어를 붙여서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기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초등학생이 되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제 발로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곧 조급함으로 바뀌었다. “한 달만 더, 한 달만 더 기다려보자” 속으로 되뇌며 안간힘을 썼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결국 자기만의 속도대로 해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온통 두려움으로만 가득 찼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아이를 더 자주, 더 오랜 시간 관찰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아이가 세상을 얼마나 신중하게 관찰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예민한 아이를 뒤집으면 시야가 넓고 섬세한 아이라는 것을.


2>

스스로 걷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던 무렵, 우리는 산책길에 자주 나섰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가까이에서 들리는 아이들 웃음소리, 우리 옆으로 지나가는 강아지의 발소리까지 모든 소리에 자연스럽게 귀를 맡기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짹짹!”

“짹짹이? 어디? 새가 어디에 있어?”

“으~엉. 으~엉.” (부엉부엉과 비슷한 발음)

“짹짹이 말고 다른 새도 있다고? 엄마는 안 보이는데?”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아이는 눈에 보이지 않던 여러 새의 소리를 누구보다 먼저 느끼고 내게 알려주었다.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듣는 것이었다.


3>

아이와 그림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주인공은 노란색 아기 상어와 분홍색 엄마 상어이다. 나는 책의 중앙의 화려한 주인공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는데 아이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무꼬기 때!” (물고기 떼)


아이의 시선은 배경 속, 회색으로 뭉뚱그려진 아주 작은 물고기 떼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인 나는 그것조차 있는 줄 몰랐는데, 아이는 그 작은 존재를 먼저 알아보았다.


전래동화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 할머니가 가마솥에 팥죽을 끓이는 내용이었다.

“이건 아궁이라고 해, 이건 가마솥이라고 해”라고 설명하고 있을 때 아이의 눈은 책의 왼쪽 위 모서리를 향하고 있었다.


“호양이!” (호랑이)


그곳에는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호랑이는 가마솥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는 그 호랑이가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거기에 그런 호랑이가 있는 줄도 몰랐다.


4>

다섯 살이 된 지금도 그네와 킥보드는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네 살 때에 비해 다섯 살이 된 후에는 미끄럼틀을 훨씬 자신감 있게 타게 되었다. 계단을 오를 때는 난간을 꼭 붙들고, 내려올 때는 엉덩이와 뒤꿈치가 맞닿을 만큼 조심조심 내려온다.


누군가는 겁이 많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 아이는 겁이 많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꼼꼼히 살피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신중한 아이라는 것을. 그 조심스러움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는지를.


나는 이제 존중하려 한다. 말, 걸음, 새로운 환경의 적응 등 모든 것에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믿어주려 한다. 그러면 언젠가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분명한 걸음으로 걸어 나갈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날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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