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자존감을 지키는 말의 힘

by 이윤지

아이는 혼자서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두 손으로 나무 블록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들어 올리며, 마치 작은 건축가처럼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 블록은 표면이 매끄러워서 조심스럽게 올려야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아이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놀이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아이에게 집중력과 인내심, 그리고 성취감을 함께 키워주는 아주 귀한 훈련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수 한 번이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다소 삐뚤빼뚤한 각도로 블록을 쌓아가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손끝으로 블록을 꺼내들 때마다 팔꿈치가 이미 쌓아 놓은 탑 가까이 닿았고, 불안한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툭, 블록이 흔들리더니, 곧이어 와르르 하고 무너져 내렸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아이를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달래는 말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도 미리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울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작은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처럼 읊조렸다.


“실망하지 않아요~ 주원이는 혼자서도 잘해요~ 혼자서도 잘하지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건... 내가 아이에게 수도 없이 들려주었던 말이었다. 말문이 트이기 전부터, 아이의 귀에 자주 흘려보냈던 응원. 또래보다 말이 늦다는 이유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주눅이 들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 자존감에 상처를 입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나는 매일같이 그 말을 속삭였다.


‘괜찮아. 주원이는 혼자서도 잘해. 천천히 해도 돼. 너는 참 멋진 아이야.’


그 말을 아이는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 말의 힘을 스스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아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며 말했다.


“엄마~ 나 멋지지?”


순간 마음이 찡했다. 내가 해준 말이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깊이 뿌리내려, 아이 자신을 일으키는 문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블록이 무너질 때 아이가 무기력해질까봐, 스스로를 탓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시선에서 비롯된 걱정이었다. 정작 아이는, 그동안 들려준 말들을 마음 안에 잘 품고, 자기만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 멋지지?’ 이 한마디에 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좌절을 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실패를 실패로만 보지 않는 유연함.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하려는 사랑스러운 마음까지.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아이는 늘 작고 여려 보이지만, 때로는 어른보다 더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넘어져도,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힘. 그건 가르쳐준 적 없는데도, 아이는 어쩐지 스스로 터득해내곤 한다. 말은 우리가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지만, 그 말을 마음 깊숙이 믿고, 삶 속에서 꺼내 쓰는 법은 오히려 아이가 먼저 보여준다. 위로의 말, 응원의 말, 함께했던 말들이 아이 안에서 천천히 자라,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문장이 된다. 그 작은 몸 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이 쌓여 있는지를, 아이의 한마디가 깨닫게 해준다.


블록은 무너졌지만, 그 자리에 쌓인 건 좌절이 아니라 자존감이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내면의 목소리. 아이는 조용히, 하지만 뚜렷하게 자신의 마음 근육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아이도 자라는 중이고, 나도 자라는 중이다.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서로의 눈동자에 비치는 거울처럼, 나는 아이를 통해 나를 다시 보게 되고, 아이 역시 내 눈빛 속에서 스스로를 확인하는 듯하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조금씩 더 따뜻하고, 조금씩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와 나의 세계는 함께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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