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아빠가 몇 달 동안 해외 출장을 가셨다. 가족 중 처음으로 외국에 가는 사람이었기에 간단한 회화책부터 샀다.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아빠의 영어 공부를 도왔다. 처음 보는 달러 지폐와 이메일 주고받기.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몇 개월 뒤 집에 돌아온 아빠의 캐리어에는 신기한 초콜릿과 쿠키가 가득했고, 파란 눈,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와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 아이는 동료 딸이야.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놀아줬지.”
지금 아빠는 내 아이에게 알파벳 송을 불러주신다. 그 노래를 듣는 아이의 눈망울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닫는다. 처음 외국 땅을 밟았던 아빠의 낯섦과 설렘이, 내 어린 시절과 내 아이의 웃음 속에 이어져 세대를 넘어 우리 가족의 사랑이 흐른다는 것을. 이 작은 노래 한 곡에 담긴 시간이 아빠와 나, 그리고 내 아이를 묶는 따뜻한 끈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