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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대하여

『사물의 뒷모습』, 안규철

by 이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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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에세이를 찾아 읽었다. 그들의 삶과 사유, 표현의 궤적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회화 중심의 담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조각을 전공한 안규철 작가의 책 『사물의 뒷모습』은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내 감각을 뒤흔들었다.


배우 박정민이 유튜브에서 이 책을 추천한 바 있다. 관찰과 감정의 조형이 중요한 배우의 직업에서도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예술은 물성만을 다루는 일이 아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 잊혀진 뒷면까지 응시하려는 태도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을.


이 책은 예술의 표면이 아닌, 그 이면, 형태가 아닌 파편, 결과가 아닌 흔적을 바라본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들며 시작한다. “조각가란 돌 속에 갇힌 형상을 해방시키는 사람”이라 말하면서, 그가 작품을 위해 망치질하며 떨어뜨린 파편과 가루는 어디로 갔을까, 묻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완성된 조각’의 뒤에는 수없이 깎이고, 버려지고, 사라진 것들이 있다.


“세계는 형태와 형태 아닌 것, 남는 것과 버려지는 것으로 나뉜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기억될 것과 잊힐 것을 구분하고, 그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일이었다.” (p.12)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문득, 누가 기억되고, 누가 잊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간호사로 일했던 시간 동안,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지역 주민들과 자주 마주했다. 제도와 자원이 닿지 않는 그곳의 삶은, 늘 뒤편에 머물러 있었다. 이 책의 시선이 그들과 겹쳤다. 예술은 주목받는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소외된 것들의 존재를 붙잡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사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것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그 존재를 가리키기 위해서다.” (p.102)

이 문장이 특히 오래 남았다. 무언가에 ‘이름을 부여한다’라는 건 그것이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존재가 지워지지 않도록 기억의 틀에 새기는 행위다. 예술가는 그 이름들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불러주는 사람이다.


안규철 작가는 ‘예술가로서 이름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들을 부르느냐이며, 그 호명이 한낱 잡담과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가 문제다.” (p.103)


예술은 ‘이름을 얻는 것’보다, 어떤 이름을 불러주느냐에 있다. 그 이름들이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예술가는 더 조용하고, 더 명확하고, 더 진실해야 한다.


나는 글을 쓴다. 안규철 작가는 조각을한다. 표현의 도구는 다르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같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무명의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 일이 바로 예술이다.


『사물의 뒷모습』은 조각가의 기록이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세상의 뒷면을 바라보는 철학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보이는 것’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보게 하는 감각을 기르는 일이다.


이 책은 말한다. 사물의 뒷모습에, 세계의 그늘진 자리에, 예술의 진심이 숨 쉬고 있다고.


『사물의 뒷모습』은 소리 없이 깊다. 소외된 것을 향한 조용한 존중, 버려진 파편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고요한 질문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가만히 박혀 있다. 예술가, 조각가, 작가, 혹은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사물의 뒷모습을 보는 눈을 갖게 될 때, 세상은 아주 다른 표정을 보여줄 것이다.


-책 제목: 『사물의 뒷모습』

-저자: 안규철 (조각가)

-추천 대상: 예술가, 창작자, 사회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

-키워드: #조각 #사물의뒷면 #예술의기억 #이름붙이기 #잊힘과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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