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작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소개에 밑줄을 긋긴 처음이다. 공감한다. 저자는 의사 출신 사회역학자이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건강’하기 위해서 1차적으로 ‘의료기술’을 활용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기에 다른 관점에서의 원인과 해결책을 연구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소송에서 법정 증언하거나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여러 주제의 연구와 여기저기에 기고했던 글들을 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소주제로는 세월호 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삼성반도체 백혈병·직업병 사건,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문제, 구조조정·정리해고 이후 노동자 사망 사건들, 소방공무원 순직 및 외상 후 스트레스 관련 사례, 산업재해 은폐·축소 사건들, 비정규직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 사건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하청노동자 사고 사례, 대형 사회적 재난 이후 생존자·유가족 건강 악화 사례, 국가 책임이 쟁점이 된 재난 피해 사건들 등을 다룬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김승섭 교수의 첫 책으로 2017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2024년에 이 책을 처음 접했고 지금까지 네다섯 번 정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인지 독후감도 남기지 못했다. 각종 사고의 실제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고, 데이터화하여 제도 개선에 활용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그 과정 중에서 당사자도 위로받고 연구자도 보람과 생명력을 느끼는 모습 또한 인상 깊었다. 비록 실제 발생했던 사고를 거꾸로 따라 올라가 조사·연구한다는 사실은 안타까우나, 이런 노력이 쌓이면 언젠가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나도 이러한 과정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1독한 후에도 나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재독하며 지금 내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예민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 그 고통스러운 당사자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 38p 라고 말한다. 내 경험 역시 이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제의 사회적·정치적 원인이 드러난다. 그 후에는 듣고·기록하고·알리는 탄탄한 구조가 반복되어야 한다. 데이터가 있어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알리는 사람이 골고루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듣기)와 칼럼(기록하고 알리기)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더욱 많은 사건과 대상자, 더 깊은 연구에 종사하는 저자가 부럽고 멋지게 느껴진다!
이 책은 내게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개인의 삶에 대한 사회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부조리한 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그중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공부하고 준비한다면 가능한 일인지 등도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지금 당장 나에게 닥친 문제가 아니더라도 타인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한 사람이라도 더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295p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30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