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작가
김승섭 교수님의 첫 책(<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난 후, 다른 글도 궁금해져서 이번엔 가장 최신작을 읽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는 인종, 에이즈, 성 소수자, 천안함, 세월호 관련 주제가 주를 이룬다.
나는 희귀질환 환아의 부모가 되고 나서야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고, 외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관련된 책을 찾다가 이 책도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희귀질환 뿐 아니라 다른 사각지대의 삶까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어 시야가 넓어졌다. 이렇게 모르던 것을 새롭게 알게 해 주는 책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그는 소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전공과목들을 놔두고, 왜 이쪽 일을 선택했을까? 어떤 대단한 소명 의식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학생이 있었나 보다.
“교수님은 왜 공부를 하시는 건가요?”
“나는 할 줄 아는 게 이거 하나였다고, 그리고 공부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답했다. 공부가 당장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속 시원한 말로 사람들의 갈등을 해소해 주지는 못하지만, 인류가 유사한 문제를 두고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이 있다고. 그 통찰의 힘이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18p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살아 있기를 포기하는가. 수많은 연구에서 언급되는 요인은 ‘희망의 부재’이다.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없어서가 아니다. 숨 막히게 자신을 옥죄는 좌절의 순간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라는 체념이 생의 에너지를 빼앗는다. 27p
-> 매우 공감한다. 희귀질환 가족들이 지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치료제가 없고, 완치라는 개념이 없는, 그야말로 끝이 없는 싸움이기에 그렇다. 다른 가정과 뇌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왜 내가 이래야 하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는 무한 굴레에 빠진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아침마다 긍정언어를 외고 감사일기를 써도 쳇바퀴 같은 삶을 살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넘어지게 된다. 끝은 없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버틸 수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중 하나로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즉 복지와도 연결된다. 직장에서 유급 가족 돌봄 휴가를 보장해준다거나, 나라에서 가족 간병인에게 노동 수당을 지원해준다거나, 치료제가 없는 환자에게 의료소모품이나 다른 쪽으로의 지원을 해주는 등이다.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내가 속한 조직이 내 편에 서서 나를 보호해준다는, 현실을 함께 개선하고자 노력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일주일을, 그렇게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직접 느꼈던 것이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니, 반가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급한 대책 발표 이전에, 하나의 정책으로 인해 생겨날 영향력을 자세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공감한다. 이어서 ‘듣기·기록하기·알리기’의 과정이 꾸준히 반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인상적인 점은, 저자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대화체 그대로 실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슷한 신념을 갖고 각자의 일을 대하고 있었다.
모두가 공감하지 않더라도, 소수라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변화는 균열과 혼란에서 시작되는 거잖아요. 203p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자원이 랜덤으로 주어진 걸 텐데.’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요. 같은 이유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262p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응답을 잘 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고요. 309p
이 책의 필요성은 “고통을 없애지 못하더라도, 그 고통에 응답하려는 공부와 기록, 연대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하루를 살아낼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여러 사람의 인터뷰와 전문가의 연구 결과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 역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