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전, 꼭 읽어야 할 책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김정호 작가

by 이윤지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는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인 김정호 수의사가 현장에서 직접 겪은 동물 구조와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수의사로서 느낀 고민과 더 나아가 생명과 공존에 대한 성찰까지 담아낸 에세이다.



나의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분명히 나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인권, 복지, 돌봄과 같은 가치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그 기준은 늘 사람을 향해 있었다. 동물에게도 같은 시선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6세, 4세인 두 자녀가 한창 동물에 관심을 가지며 동물 피규어를 가지고 놀고, 동물이 주인공인 그림책을 읽고, 동물원이나 먹이 주기 체험을 원할 때에도 나는 그저 아이들의 즐거움만을 바라보았을 뿐, 바로 옆에 있는 동물들의 고충까지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이었다. 아이들과 책을 읽다 보면 “엄마, 책에서는 얼룩말이 초원에 산다고 나오는데 왜 동물원에 살아요?”, “엄마, 아쿠아리움은 바다가 아닌데 왜 고래가 갇혀 있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당황한 나는 상황을 얼버무리며 넘겼고, 아이들의 질문이 가리키는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런 나의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제 내게 동물원은 더 이상 단순히 동물을 전시하고 구경하며 먹이 주기 체험을 하는 장소가 아니다. ‘수의사와 동물복지사와 함께 생활하며 치료하고 돌보는 공간’이자, ‘야생으로 돌아가기 전 준비를 돕는 보호소’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또한 내가 소수 집단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갖듯, 소외된 동물에 대한 보호와 그 이전의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확장된다면, 결국 사회적 약자인 인간을 향한 배려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되었다.



청주동물원에 대한 나의 기존 인식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단골 소풍 장소였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내 자녀들이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가는 장소이다. 여전히 비슷한 경사로와 케이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풍경, 가끔씩 바뀌는 동물 종류들, 다른 동물원에 비해 동물들이 유독 왜 이렇게 비실비실해 보일까? 하는 막연한 의문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지역 뉴스를 통해 청주동물원이 더 이상 일반적인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 치료소이자 보호소 개념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헤드라인을 접하긴 했지만, 동물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청주동물원의 본격적인 변화가 2018년 사육곰 구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까지 사육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거의 없었다. 막연히 곰이 웅담을 얻기 위해 길러진다는 정도? 그것도 오래전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뿐이었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여전히 곰들이 철창 속에 갇혀 평생을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 곰들은 야생동물과 가축 사이의 ‘사육동물’이라는 애매한 존재였고, 오랫동안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청주동물원은 이 사육곰들을 받아들이며 치료와 관리, 공간과 책임이라는 현실적인 부담을 함께 떠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이 생명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이곳은 더 이상 단순한 동물원이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문제를 인간이 책임지려는 공간, 그리고 동물복지의 기준을 다시 묻는 장소로 다가왔다.



“귀엽지 않고, 늙고, 아프고, 장애가 있는 동물도 편안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 문장은 단순히 동물에게 연민을 갖자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쓸모 있음’이나 ‘보기 좋음’만으로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건강하고, 젊고, 수가 많은 존재만이 관심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세상이 조금씩 바뀌기를 바란다.


저자의 시선은 동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동물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허락하는 사회는 결국 그 기준을 사람에게도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노인, 장애인, 환자, 사회적 소수 존재들 역시 ‘불편함’이나 ‘비효율’이라는 이유로 밀려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이 가진 힘은 동물을 불쌍히 여기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아이들과 다시 동물원에 가게 된다면 예전처럼 “재밌다”, “귀엽다”라는 말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대신 “저 동물은 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대화를 함께 나누고 싶다.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불완전하더라도 진심을 담은 대답을 해주고 싶다.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는 나에게 동물에 대한 책이기 이전에, '돌봄과 책임, 그리고 공존'에 대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동물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고, 그 변화는 분명 나의 일상에 남을 것이다. 이제 나는 동물이 아프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그 아픔을 먼저 알아보려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시선이 조금씩 쌓일 때, 우리가 사는 세상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