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쓰기가 힘들었다. 정돈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끄적끄적 몇 자 남기고 싶어도 쉬이 자판에 손이 가지 않았다.
얼마 전 읽었던 문형배 판사님의 <호의에 대하여> 한 구절 덕분에 다시 톡톡 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10년 후 내가 잘 살아가고 있나? 뒤돌아볼 글을 쓰는 것이니, 조금은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
글을 쓰는 이유
나는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서 내가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나 없나를 따져볼 때 내가 썼던 글이 잣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호의에 대하여, 174쪽
어제 2학기 종강을 맞이했다. 다음 주 기말고사 때문에 한 번 더 나가야 하지만 끝났다. 매주 강의 준비에 허덕이며 살았다. 앓던 이 하나가 빠져나간 듯 후련하다.
아휴, 겸임교수 돈도 별로 안 받는데, 또 학교에서는 얼마나 눈치를 보며 나와야 하는가? 왕복 3시간은 족히 걸리고 길바닥에 쏟은 시간도 아깝다. 다음 학기에는 정말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찼다. 그러나 얻은 게 참 많다. 한 학기 동안 강의 준비하며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웠다.
대학 1학년, 이 푸릇푸릇한 청춘들과 함께 한 것만으로도 벅찬 경험이었다. '내가 이런 기회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들과 함께 한단 말인가?' 큰 딸 또래의 아이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애정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3, 4학년 강의를 하다가 이번 학기 처음으로 신입생을 만났다. '젊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새삼 느꼈다. 쉬는 시간 별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깔깔대는 모습, 학교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무엇보다 새로움으로 가득 찬 대학 생활에 대한 초롱초롱한 눈빛이 좋았다. 상투적이나 '상큼한 레몬 같다.'는 말이 피부로 확 와닿는 설렘, 새로움, 가벼움, 경쾌함 이런 단어로 표현되는 그런 느낌.
오십을 바라보고 있고 26년 차 교사로 스스로 늙을 대로 늙었다 생각하며 살아가는 내 시선에서 이 아이들이 참 예쁘고 또 기특했다. 반면 걱정스러웠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했고 초등 교사의 꿈에 부풀어 있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 같았다. 그 몽글몽글한 꿈을 계속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교직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전하려 했다.
물론 교사로 살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다. 더욱이 요 샛날 초등 교단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내가 떠들지 않아도 주변에서 다 듣고 보았을 것이다. 너무 어두운 면만 부각되는 것 같아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교직이 생각보다 그렇게 비전이 없거나 암울한 선택이 아님을 매 강의 시간마다 떠들어댔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면 교직처럼 좋은 곳이 없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다. 지금 내가 보여주고 있다. 첫 교단에 섰을 때, 교사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부족하고 모나고 울퉁불퉁했던 것 같다. 그나마 교사가 되어 매일 가르쳐야 하기에, 내가 먼저 솔선해야 하기에, 적어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기에, 어쩌면 반강제적으로라도 그렇게 살아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라고 솔직히 털어냈다.
교직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내 한 주 일과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갔으니 한동안 나는 자유인으로 맘 편히 살 수 있다. 이 홀가분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강의평가, 뭐 그따위 것은 생각지도 말자. 잘리면 잘리는 거고. 또다시 불러주면 기쁘게 달려가며 된다.
이렇게 25학년도 2학기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마무리한다. 감사할 뿐이다.
#종강
#초등예비교사
#교직은 성장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