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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등교사 윤수정 Jun 18. 2024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나우학교 한평책방 독서리뷰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저자심윤경

출판사계절

발매2022.08.19.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책을 이제야 리뷰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 나우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변미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입니다. 심윤경이라는 작가님을 처음으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이 주는 여운은 말할 것도 없고 글을 잘 쓰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저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언제쯤이면 이 작가님처럼 술술 읽어 내려지는 글을 써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또 학교에서는 여럿 아이들을 키웠고 키우고 있습니다. 집과 학교라는 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어쩜 가르치고 키우는 일은 제 평생의 과업인듯 합니다. 세 아이들이 점점 커가고 특히 위의 두 아이들, 고3, 고1 딸과 아들 녀석이 제 손 안에서 벗어날 즈음, 세상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 육아이고 내 자식을 잘 키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통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춘기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아들 녀석과 입씨름을 하고 삽니다. 부모 효능감이 바닥을 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아들 녀석의 반항은 저의 존재 모든 것을 뒤흔드는 것 마냥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심윤경 작가님도 당신의 전투적인 육아기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사춘기 딸과의 여러 에피소드와 그와 함께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 할머니와의 따뜻한 추억을 되짚어 보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란 무엇이며 오늘날 육아에 있어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줍니다.


할머니의 다섯 단어


작가님의 할머니는 말이 없으시고 손녀 사랑 표현이 유난스럽지도 않으시나 그 속에 한없는 여유와 다정함이 배어있는 분이십니다. 작가님은 이것을 관용이라 표현했습니다.  할머니는 관용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좀 더 너그럽게 여유 있게 그들을 품어주지 못하는지 깨닫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손녀의 잘못에도 지나친 놀림 섞인 예의 없음에도 그저 다섯 단어 속에 품어 주십니다.





1. 그래
2.  안 돼
3. 됐어
4. 몰라
5. 어떡해



작가는 화려하고 풍성한 자신의 언어가 오히려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데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하며 당신의 할머니의 짧고도 때로는 부드럽고 단호한 언어를 이야기합니다.



언어를 아끼자.
할머니처럼 말하자.




할머니의 초특급 공감어


화가 난 아이도 떼쓰는 아이도 이 한 마디로 버틸 수 있는 할머니의 공감어는 바로 "저런"이었습니다. 짧고도 강렬한 공감의 언어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줍니다. 이렇게 한 단어를 내뱉고 해야 할 일은 버티기입니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생채기가 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연고와 같고 따스한 할머니의 손과 같습니다.


이 짧은 한 단어 만으로도 아이는 지지와 공감을 얻어 스스로 회복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저런!



작가의 자신의 어릴 적을 회상하며 수없이 들었던 할머니의 공감의 언어를 비로소 자신의 아이에게 전합니다. 당신의 할머니는 언어의 미니멀리스트였으며 가장 간결하고 효과적인 공감과 버티기를 자신에게 공급했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꽉 찬 말과 논리와 이성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닌 부모의 빈틈으로 키워내는 것임을 말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믿을 수 없음과 앞뒤가 다른 부조리를 빈틈으로 허용하는 것입니다. 허술하고 허점 투성이인이 부모가 되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도 허술하고, 둘째도 허술하게.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 필요한 것은 부모의 완벽함이 아닌 허술하다 할 만큼의 관용으로 바라보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빈틈에서 자라기 때문에


할머니의 허술한 칭찬 "장혀!"



할머니의 짧고도 허술한 칭찬 "장혀"는 결코 짧지 않습니다. 이 말은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기쁨으로 채워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책상에만 앉아도 장하다는 말로 칭찬을 했습니다. 공부하는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딸에 한없이 엄격하고 꽉 막힌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할머니를 기억해 냈습니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쥐고'공부했는지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자신을 봅니다.


비로소 작가는 자신의 딸에게는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 준 할머니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자신의 할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 딸에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나는 꿀짱아의 엄마지만, 절반은 할머니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의 소통방식에는
최소한의 표현으로
상대방에게 최적의 편안함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맵시가 있다.
p. 190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


부모가 아이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것 중 훌륭하고 귀한 것을 해주는 것을 물질적 응원이라면 부담 없이 편안함을 주는 것은 내면적 지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내 아이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은 어떤 한 지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져서 제 기량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할머니처럼 짧은 단어로 화려하지 않은 몇 마디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아이는 그 속에서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작가는 할머니의 양육에는 무언가 특별하고 마법적인 것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결같이 따사로웠던 함박웃음입니다.



사람이 늙어감이 추하지도 슬프지도 않고 그저 조촐해져 가는 것임을 나는 안다. 가진 것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오로지 소리 없는 함박웃음만으로 나의 남은 존재를 채워가는 것, 그건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p. 220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또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말을 줄이고 빈틈을 허하려 합니다. 그리고 웃겠습니다. 할머니처럼 소리 없는 함박웃음을요.



#나우학교, #교사성장학교, #한평책방,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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