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하나 차이뿐인데...

by 초등교사 윤수정

어제는 반가운 분을 뵈러 명동에 나갔습니다. 아이 셋을 거느리고 전철을 타고 명동 일대를 누볐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가보는 명동이었습니다. 전철역에 내려서 먼저 목적지, 명동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찾아 헤매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도 많았을뿐더러 지도에 약한 제 탓도 있었습니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 저를 보는 것이 답답했는지 아들 녀석이 앞장을 섰습니다. 곧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성당 앞에서 반가운 분을 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마주하고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일 년 만에 찾아뵈었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릇의 음식들이 하나둘씩 비워집니다.


가만히 못 있는 막둥이 녀석이 밖으로 나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가게 문을 열고 명동 거리 한 복판에 나왔습니다. 예상은 했습니다만 대낮처럼 밝은 거리 모습에 조금은 놀랬습니다. 환한 가로등, 상가의 화려한 네온사인, 끝없이 이어지는 포장마차의 행렬, 쏟아지는 사람들.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한가로운 주택가에 사는 저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절로 흥이 났습니다. 무엇보다 먹을 것들로 넘쳐가는 거리가 재미있었습니다.


요즘 핫한 간식으로 떠오르는 탕후루, 만인의 사랑을 받는 호떡,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 떡볶이와 어묵, 썰어 놓은 과일, 과일 찹쌀떡, 새우튀김, 즉석 석류 주스, 심지어 랍스터까지. 무척이나 다양했습니다. 이미 밥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탕후루, 호떡을 사 먹었습니다. 평소라면 사 먹지 않았을 비싼 석류주스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진하고 깊은 석류 주스 맛에 한 번 더 놀랬습니다.


휘황찬란한 거리를 잠시 걸었습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중국어, 영어, 눈에 보이는 다양한 외국인들의 모습 또한 또 다른 볼거리였습니다. 걷고 구경하기를 한 참 하다 명동성당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밤에 보는 명동성당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고즈넉한 성당 안 뜰을 걷노라니 이곳이 방금 전 보았던 명동이 맞나 싶었습니다. 불과 담벼락 하나 차이인데 신기했습니다. 신과 인간의 영역을 넘나드는 느낌이랄까요? 떠들썩하던 공간을 벗어나 고요함 속으로 잠시 저를 내 맡기었습니다. 편안해집니다. 성당의 불빛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담장 하나 차이뿐일 텐데 전혀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을 한듯합니다.


담벼락 하나 차이로 이렇게 다른 모습이 펼쳐집니다. 불과 몇 발자국 떼지 않았건만 전혀 새로운 세상에 놓였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다가도 잠시 한 발 떼어 빗겨 나 보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불과 담장 하나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슬프고 힘들어질 때, 오롯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짊어지고 웅크린 채, 한 걸음도 걸어갈 수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걸어 나와 보면 다른 공간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겨우 담벼락 하나 건넜을 뿐인데요. 힘들다고 주저앉기보다는 힘들수록 걸어 나와야 합니다. 자리에서 주저앉아 낙담하고 눈물짓기보다는 제 발로 걸어 나와보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새로운 풍경도 들어오고 새로운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간혹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힘듦과 살아냄의 경계가 불과 담벼락 하나 차이 일수도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명동의 밤거리, #명동성당, #겨우 담벼락 하나, #신과 인간의 영역, #스스로 걸어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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