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얼마 전 재의 수요일이었다.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주는 가톨릭 전례 중 하나이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 다음 금요일로 이제 곧 사순이 시작된다.
우리는 죽고 나면 한 줌의 재로,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린다. 불사신이 아닌 사람이면 그러하다.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평등하다. 한 줌의 재로 죽어 없어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생전 부귀영화를 꿈꾼다. 나도 그렇다. 백세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경제적인 부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의 동반 안락사 뉴스를 접했다. 부부는 93세 동갑내기로 대학시절부터 함께하여 아이 셋을 낳고 죽음까지 함께했다. 부부가 동시에 지병으로 고통스러워했고 한 사람을 두고 갈 수가 없어 내린 선택이라 한다. 가톨릭 교계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지만 그 부분은 차치하고 새로운 죽음의 방법에 대한 생경함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질문들을 떠올려 본다.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인가?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최근 논의되는 웰다잉에 대한 이슈가 불쑥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가장 첫 번째로 "무조건 건강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백세 시대를 말한다.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노년을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그 사실을 증명한 듯하다. 건강해야 한다.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 말해 무엇하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내 집에서 평화로이 맞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고 마침 작년 연말에 예약해 준 건강검진 하는 날이 다가왔다. 이번 건강 검진은 의례적으로 시시콜콜하게 넘어가는 통과의례가 아니었다. 건강해야겠다는 굳은 의지와 바람을 담아 검진 준비를 했다. 내가 예약한 검진 센터에 제출할 문진표와 체취해야 할 것들을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바로 오늘, 건강 검진 날이다. 다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다.
검진 센터에 들어서니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초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머리가 희끗하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부터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방 저 방을 오가며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2년 전보다 좋아진 것, 2년 전보다 나빠진 것, 문제가 될 것 같은 것. 몇 가지 검사는 결과지를 받아보기 전에 이미 알게 되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다. 다만 차후 예후를 살펴야 할 몇 가지 것이 드러나 3개월 후, 6개월 후 동네병원에 다시 가봐야 한다. 이 정도면 감사하다. 아픈 곳이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세상에, 또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검진센터를 나와 병원 입구를 찾아 나오는 길에 제법 많은 환자들을 눈으로 보았다. 유모차를 타고 링거를 탄 아이부터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알 수 없는 링거를 주렁주렁 찬 노인까지. 환우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속으로 화살기도를 날렸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안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고통스럽겠다.'라는 생각과 어서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검사 중 위내시경을 수면으로 했다가 오늘 당일 일반으로 전환했다. 수면 내시경은 보호자가 있어야 하고 시간이 더 걸리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동행하겠다고 했지만 회사일을 제쳐두고 병원에 다시 와야 하는 일도 번거롭고 그 무엇보다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반 내시경은 예전에도 해 본 경험이 있어 용기를 냈다.
그런데 막상 맨 정신에 기다란 호스가 내 입에 들어와 목구멍을 통과할 때는 무척이나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고통이라고까지는 감히 표현할 수 없지만(아픈 환우들을 생각하면) 힘들었다. '언제 끝나나.' 하는 마음으로 주모경을 바치고 예수님의 수난을 잠시 생각했다. 이 별것도 아닌 위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말이다.
병중에 있는 환우들의 고통과 시름을 모기 눈알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날이었다. 남의 고통과 불행을 보며 경각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미안하고 죄송한 일이건만 나는 그랬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흘려듣지 않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어떤 노년을 보낼지, 어떤 마지막 날을 보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대하는 나의 마음일 것이다. 먼지로 태어났으니 먼지가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살아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그 사람, 여한 없이 살다 죽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아내고 의연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내 집에서 평화롭게.
#네덜란드 총리부부, #안락사, #건강검진, #사람은 먼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