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 비움

먼지 비움

소중한 추억만 남기세요.

by 초등교사 윤수정

'언제 가는 저것을 해치우고야 말겠다.' 하고 벼르고만 있었던 그 일을 오늘 해냈습니다. 피아노 위를 한가득 장식한 아들 녀석의 방과 후 활동 전리품 비우기!


지난해 각종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하며 하나씩 하나씩 들고 오는 작품들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피아노 위에 전시한 것이 연말이 되니 한가득이 되었습니다. 빼곡히 꽉 차 있어서 들어내고 청소하기도 곤란하고 그냥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피아노 위, 아들의 작품들을 다 걷어 내었습니다. 식탁 한 켠으로 옮겨 놓으니 제법 많습니다. 오전 내 이렇게 작은 전시회를 하고 잠깐의 이별식을 치렀습니다.

"태우야, 이제 보내주자. 작별 인사해."

걱정과 달리 순순히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안녕, 잘 가!"


아들의 허락을 받은 작품들은 오늘 분리수거장에서 다시 한번 큰 이별을 치렀습니다. 막상 걷어내고 버릴려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까지 끌어안고 살 수 없기에 쿨하게 보내주었습니다.


제 눈에, 제 마음에 또 아들 녀석의 눈과 마음에 담아두었으니 영원한 이별은 아니겠죠? 작은 손으로 조물딱 조물딱 정성을 다해 만들었을 아들 녀석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교 후, 엄마! 하며 우렁차게 저를 부르며 자랑스럽게 예술품(?)을 내밀던 아들 녀석의 웃는 얼굴도 떠오릅니다. 물건보다 더 소중한 추억을 꼭꼭 눌러 담았습니다.


다시금 제 모습을 찾은 피아노입니다. 올해는 또 어떤 작품으로 하나씩 하나씩 채워갈까요? 아들 녀석의 창작활동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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