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일찍 일어났는데, 세상이 달라 보여요.”
“10분 먼저 나왔을 뿐인데, 아침 출근길이 여유로웠어요.”
“10분 명상이지만 온종일 마음이 편안했어요.”
나우학교에서 새벽 기상을 처음 시작한 선생님들의 소감이다. 도대체 10분은 어떤 마력이 있길래 세상이 달라져 보이고, 여유가 생기며, 마음이 편안해질까? 하루 24시간 중 10분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심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10분은커녕 1시간도 물 쓰듯 흘러간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흘려보내는 10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 10분, 인터넷 검색을 하는 10분.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10분은 여기저기 널려있다. 정작 시간의 주인은 그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고작 10분이기 때문이다. 내 하루 중 흩어져 있는 10분을 모아본다면 어떻게 될까?
선명하게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때 체육 시간이었다. 철봉 매달리기를 하는데 단 3초도 버티지 못하고 내려왔다. 단 1초도 얼마나 긴 시간으로 느껴졌는지. 1분 1초에 대한 소중함을 떠올릴 때면 그날의 체육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자기 전 매일 가벼운 운동으로 프랭크를 하고 있다. 단 10초 버티기를 시작으로 매일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1분은 힘들이지 않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1분은 마치 10분처럼 느껴진다. 1분이 이렇게 길었던가?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느끼곤 한다. 반면 주말이나 휴일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한 시간이 마치 10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시간은 그대로인데 왜 사람이 느끼는 시간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시간 개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인들은 두 가지 시간 개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고, 둘째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12신 중 막내로 어머니 가이아를 도와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가이아가 키클롭스, 헤카톤케이르를 비롯한 괴물들을 낳자, 우라노스는 이들을 타르타로스에 감금해 버린다. 크로노스는 가이아를 도와 왕위에 오르지만,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르를 구출하라는 가이아의 명령을 무시했고, 가이아는 크로노스에게 네가 낳은 아들이 너처럼 반란을 일으켜 너를 몰아내고 왕이 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다. 이에 크로노스는 저주를 피하려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집어삼켰다. 제우스가 태어나자, 그의 어머니 레아는 아기 대신 돌을 강보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삼키게 하여 제우스를 살려낸다.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장성한 제우스는 10년 동안 벌린 티탄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올림포스의 왕이 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 시간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크로노스는 미래에 자식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될까 봐 자식을 잡아먹는다. 그 결과 그는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과거로부터 흘러와서 현재를 삼키고, 또 미래도 집어삼켜 모든 것을 과거로 만들어 버린다.
카이로스(kairos)는 제우스의 막내아들이다. 그는 기회와 행운의 신인데 그 생김새가 독특했다. 앞머리는 덥수룩하고 뒤는 대머리이다. 어깨와 발꿈치에는 날개가 있고, 저울과 날카로운 칼을 들고 다닌다. 그가 앞에서 다가올 때는 누구나 쉽게 머리카락을 움켜잡을 수 있지만, 지나가 버리면 결코 잡을 수 없다. 카이로스를 잡기 위해서는 저울과 같은 분별력과 칼 같은 결단력이 필요하다. 카이로스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그를 알아차려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면 그의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그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또 그의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왼손에 저울이 있는 것은 일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라는 것이며, 오른손에 칼이 주어진 것은 칼날로 자르듯이 빠른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다. 카이로스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리적 시간으로 객관적·정량적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질적인 시간으로 주관적·정성적 시간이다. 인간에게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소 길거나 짧을 수 있지만 모두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그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일 수도 있고, 카이로스의 시간일 수도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보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은 더 질적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물리적으로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을 질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꿀 줄 안다는 것이다. 10분의 미학은 바로 여기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산다면 크로노스가 되어 시간을 먹어버리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 여기’, ‘오늘, 이 순간’을 떠올리며 짧은 10분에도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카이로스가 될 수 있다. 그는 시간을 만들어 자기 삶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현재를 살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아간다. 10분만 일찍 일어나도 아침이 여유롭다. 허둥대지 않고 여유가 있으니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웃음과 유머를 날릴 수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웃으면 나고 웃을 수 있다. 10분 독서를 했을 뿐인데 어느새 한 권의 책을 다 읽는 순간이 온다. 기쁨에 환호할 것이다. 고작 10분 운동이었는데 꾸준히 하다 보면 내 몸이 달라질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10분을 크로노스에게 맡길 것인가, 아니면 카이로스에게 줄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이유는 어제의 기억과 내일의 준비에 갇혀 오늘을 잃어버린 것을 아닐까?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면서 허둥지둥 시간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닌지 나의 하루를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끝도 없는 후회로 과거에 얽매이거나 엄습하는 두려움으로 미래에 사로잡혀 살 이유가 없다. 기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 오늘에 있다. 흘러가는 10분을 꽉 잡아보자.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크로노스인가? 카이로스인가?
#새벽기상
#미라클모닝
#새벽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