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주점으로 업종은 정했지만 어떤 술을 주력으로 다룰지에 대해서는 와이프와 계속 의견이 갈렸다. 나는 봉리단길 분위기에 맞게 칵테일을 주력으로 취급하고 싶었지만 와이프는 현재 유행에 맞춰 하이볼을 주력으로 하자고 했다. (하이볼도 칵테일이긴 하나 와이프는 하이볼만 메뉴에 올려 주력으로 팔자고 했다)
처음엔 서로 말이 맞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칵테일'바는 주변에서 그래도 찾아볼 수 있지만 '하이볼'만 주력으로 취급하는 매장은 아직까지 없는 듯 해서 좀 더 특별하고 유니크한 입장을 취하는 게 고객들에게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하이볼을 주력으로 판매하기로 한 대신, 모히또나 마가리타와 같이 칵테일을 어느 정도 추가해 구색을 갖추는 방향으로 의견을 좁혔나갔다.
(좌) 체리콕하이볼 (우) 문경바람 전통주하이볼 '춘몽'
'하이볼바'라는 초기 컨셉을 잡은만큼 하이볼 종류를 여러가지 갖춰야 구색이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칵테일 바에서 일할 당시 접했던 각종 리큐르와 소다들을 조합해 14가지에 달하는 하이볼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클래식 칵테일들을 변형하거나 클래식 칵테일에 어울리는 소다를 첨가해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향을 살리는 방향으로 리큐르나 향을 첨가해 수십번 시음을 해서 레시피를 잡았다. 이때는 술에 거하게 취해 항상 차를 두고 집에 가거나 와이프가 운전해 집에 가곤 했다.
초기에 잡은 레시피. 현재는 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최대한 목넘김이 편하게, 거북한 맛이 들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일부는 위스키 향이 약해지고 달달함만 앞서는 경우가 생기긴 했다. 보통은 과일향이 들어가는 리큐르의 경우 자체도수가 위스키보다 낮아 희석이 되다보니 전체적인 향이 약해졌는데, 이에 맞는 시럽을 추가하거나 리큐르와 위스키 비율을 조절해 향을 최대한 강화시켰다.
이후 가게를 운영하다보니 고객들 입장에선 메뉴판에 기재된 하이볼 중 어떤 하이볼의 향이 강하고 약한지 구분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어떤 하이볼이 술향이 강하고 약한지를 기재해 달달한 걸 좋아하는 고객은 달달한 하이볼 위주로 주문하고, 술향이 살아있는 하이볼을 선호하는 분들은 이에 맞는 하이볼을 주문하게끔 메뉴를 구성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와서는 이를 더 보완하고 각각 하이볼 이름에 맞는 향을 더욱 강화하는 데 집중했고, 메뉴에도 어떤 하이볼의 향이 강하고 어떤 하이볼이 술맛이 안나는지를 기재해 고객들이 쉽게 주문할 수 있도록 메뉴판을 변경하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위스키보다는 전통주를 바틀 형식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전통주를 활용한 칵테일과 하이볼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특히 김해라는 지역 특성상 주변에 수로왕릉이나 고분, 역사박물관 등 옛 가야의 유물이나 역사가 깃든 장소가 많은데, 이러한 지역색을 메뉴에 적극 반영하고 싶어 전통주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개발한 하이볼이 '문경바람'을 활용한 전통주 하이볼.
일출 - 소풍 - 산등 - 춘몽
문경바람은 사과를 증류해 만들 술이지만 제조과정 마지막에 오크통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도수가 올라가고 독특한 풍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가장 하이볼과 잘 어울리는 전통주 중 하나라고 생각해 어울리는 하이볼을 개발했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매우 좋아서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전통주로 하이볼을 다양하게 개발하려 하다보니, 한가지 아쉬운 점이 생겼다. 대부분의 전통주가 오랜 기간 숙성을 통해 만들기보다는 증류식 소주에 향을 첨가하거나 오크통을 잠깐 거쳐 향만 입히거나해서 생각보다 독특한 풍미를 가진 전통주가 많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위스키 제조장만큼 대규모 디스틸러리가 우리나라에는 없기도 하거니와 (김창수 위스키와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있긴 하지만 아직 역사가 짧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주가 너무나도 사람들이게 익숙하기 때문에 전통주를 친숙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전통주 제조장들은 꾸준히 새로운 전통주들을 개발 & 런칭하고 있고 이에 어울리는 향과 색을 입혀 고객들에게 소개해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그래서 다양한 전통주 소비도 늘고, 더욱 뛰어난 증류소와 전통주가 개발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