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노니? 알비노? 백인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는 뭘까?
11월 막바지에 듣는 알비노니 아다지오 G단조
11월 막바지에 듣는 알비노니 아다지오 G단조
11월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틀만 있으면 12월. 겨울로 성큼 들어서게 되었어요.
찬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내쫓기듯 떨어져 나가는 나뭇잎과 옷을 잃어가며 떨리는 크고 작은 가지들.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도 옷깃을 세우고 종종걸음을 치게 됩니다. 그래도 때때로 내리쬐는 햇살에 따사로움을 느끼고 위로를 받곤 하죠.
이맘때면 즐겨 듣는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입니다. 그 음률에서 느껴지는 처절한 아름다움은 요즘 공기만큼이나 건조하게 지내던 제 마음을 적시듯 스며듭니다. 음악은 그런 기능이 있는 것 같아요. 가끔 그림을 그리거나 보곤 하지만, 제가 아직 그런 단계에 들어서지 않은지 음악만큼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감동은 아직 느끼지 못했거든요.
이 음악에서 처절한 아름다움, 절망 속의 희망을 향한 몸부림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처음 이 음악을 알게 되었을 때의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1980년대였을까요. 당시 비극적이고 감성적인 안무로 따라올 팀이 없었던 나탈리아와 안드레이 부킨으로 기억됩니다. 그들의 안무는 절망 가득한 현실에서 몸부림치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을 붙들려고 애쓰는 이의 처절함을 표현하는 듯 느껴졌더랬죠. 속도감 있는 움직임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옷자락은 인간의 연약함을 더욱 잘 느끼게 했고요.
그래서인지 분명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인 알비노니 작품이지만 제게는 이탈리아가 아닌 슬라브의 정서로 가득한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답니다. 오르간 소리마저 냉랭한 공기를 머금은 비통한 절규로 느껴지니 말이죠.
당시 곡 제목은 '백인(白人)'으로 소개되었는데, 아무리 뒤져도 그런 곡은 찾을 수 없었어요. 나중에 우연히 듣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라는 걸 알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곡이 백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될 수 있었던 걸까요?
곰곰 생각해 보니, Albinoni를 albino로 착각하고 백인이라고 자막을 단 건 아닐까 합니다. 원래 알비노는 백색증(albinism)이라는 선천적 유전 질환을 앓는 사람을 가리키죠. 어릴 적 친구 중에도 이런 병을 앓고 있는 자매가 있었는데, 마치 겨울 나라에서 온 공주처럼 예뻤습니다. 처음엔 외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이어서 놀랐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albinoni와 albino 모두 어원이 흰색을 가리키는 라틴어 albus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점입니다.
albinoni - 흰색, 창백한 사람
Albino - 백색증을 가진 사람
이 곡의 제목은 백인이 아니었고, 알비노니라는 말 자체도 백인(코카시언)이 아니라 창백한 사람, 알비노도 백색증을 가진 사람입니다. 게다가 뭐가 됐든 곡의 이름이 아니라 작곡가의 이름이었죠. 하지만 이렇게 어원을 보면 정말 이유 있는 실수와 착각이었고, 그랬기에 오히려 제게 운명처럼 다가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어떤 씨앗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 곡의 진짜 작곡가는 알비노니가 아니라는 사실!!! 알비노니를 연구했던 20세기 음악학자 레모 지아조토(Remo Giazotto)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니,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ㅎㅎㅎ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전에 하루페이퍼에 올린 바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그리고 뜻밖의 진짜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