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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찬 바람이 불어야 먹을 수 있는

by 이안

붕어빵, 찬 바람이 불어야 먹을 수 있는

추운 겨울날 먹는 오뎅 맛은 기가 막히다. 뜨끈한 국물이며 대파 숭숭 썰어 넣은 짭조름한 간장은 왜 그렇게 맛있는지. 하지만 오뎅이 겨울과 찰떡이라 해도 여름에 못 먹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뎅은 여름에도 있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어야 등장하고, 그때가 되어서야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있다. 바로 붕어빵이다. 날이 더우면 아니, 추워지지 않으면 붕어빵 장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입동이 지나야 나오니, 거의 자연의 섭리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팥붕과 슈붕

원래 붕어빵의 속은 팥이 기본이다. 풀빵, 국화빵에서 시작했기에 그렇다. 수십 년 전. 외투 속 아버지 품에서 나온 풀빵은 그 껍데기가 너무 얇아 한데 붙기 일쑤였다. 터질세라 조심조심 뜯어먹던 풀빵은 여러 차례 모양이 바뀌더니 물고기 모양으로 바뀌었고, 종잇장처럼 얄따랬던 껍데기도 점점 살이 붙어 더 이상 터질 걱정은 없게 되었다.


모양도 이름도 다양해져서 붕어보다 커진 놈은 잉어빵, 깜찍하게 작아진 것은 금붕어빵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뿐인가. 붕어빵을 채운 속도 다양해졌다. 슈크림이 들어간 슈붕이 나왔는가 하면, 피자, 치즈, 초코, 블루베리 크림치즈... 게다가 민트 초코까지 있다니 붕어빵 안에 뭘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실험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그렇게 다양해도 내 취향은 역시 근본이랄 수 있는 팥붕이다.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팥을 아끼지 않고 만든 통통한 붕어빵이 최고다. 단 걸 먹으면서도 '달지 않아 맛있다'는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너무 달아도 안 되고 너무 안 달아도 안 되는 그 절묘한 포인트를 잡아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붕어빵 지도

예전에는 요지마다 없는 곳이 없었건만, 요즘은 찾기 쉽지 않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 오죽하면 인터넷에는 '붕어빵 지도'까지 있을 정도다.


스마트폰 앱스토어에 들어가 보면 붕어빵 지도가 셋이나 있다. 가슴속 3천 원, 붕어빵 지도, 붕세권 세 가지인데, 가슴속 3천 원은 붕어빵을 파는 사장님용 푸드트럭 지도도 있다.

앱을 새로 설치하기 싫으면 당근 동네지도에서 붕어빵을 검색하면 된다.


붕어빵과 함께 서촌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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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찾은 붕어빵집이 어느새 단골이 되었다. 온 세상이 은행잎으로 노랗게 되어버린 어느 날. 그 절정의 날에 붕어빵을 사들고 서촌 경복궁 돌담길을 걸었다.


새파란 하늘에 샛노란 은행잎. 궁궐 추녀 아래 아직 따뜻한 붕어빵. 환상의 조합이 아닐까. 이날 무슨 일인지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사람의 물결에 휩쓸릴 것만 같긴 했지만. 걷다가 한 입씩 베어문 팥붕은 그 한 입 한 입이 모두 추억이 되었다.


붕어빵의 몸값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서너 마리 충분히 사 먹을 수 있었는데, 두 마리로 줄더니, 이제는 한 마리밖에 살 수 없게 되었다. 붕어빵은 이상하게 한 번에 최소 세 마리는 사게 된다. 한 마리 만 달라기엔 뻘쭘하고, 두 마리는 모자란 듯하다. 둘이 나눠 먹어도 한 마리씩 나눠 먹고 남은 하나는 반씩 나눠 먹어야 기분 좋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속 3천 원'이란 이름의 붕어빵 지도 앱도 있나 보다.


그런데 천원도 모자라 이제 하나에 무려 3천5백 원이나 하는 붕어빵도 있더라. 그날 경복궁역 지하에서 그런 붕어빵을 봤는데, 그렇게 특별할 건 없어 보였다. 게다가 그때그때 새로 만들어 주는 것 같지도 않던데. 주문받고 즉석에서 만들어주던 천 원짜리 붕어빵이 더 따끈하고 맛있지 않을까.


무엇이 특별하길래 몸값이 다른 녀석보다 세 배도 넘는 것일까? 빵이 특별한가? 팥이 국산인가? 설탕대신 꿀을 넣었나? 씹을 때 어떤 느낌인지, 팥소가 얼마나 달달한지 체험해 봐야 했는데. 놀래기만 하고 먹어보지 않은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다음에 또 만나게 되면 꼭 먹어보고 몸값이 맛을 보장하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나본 추억의 붕어빵을 소환해, 그 가운데 어떤 것이 최고였는지 순위도 매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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