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소년이 온다 05.18

May 18, 2017, 10:36 AM

by 원일


소년이 온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우리의 아픔은 너무나도 쉽게 회복된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도 우리는 평온하게 사회를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폭력의 시간들은 우리의 연한 부분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폭력으로 잠식시켜 버린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 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광주는 우리 주변의 상처 받는 모든 것이다. 사람들이 용산 건물 꼭대기에서 불에 타 죽어갈 때, 수많은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감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경찰이 쓰러져 있는 70대 노인의 머리에 물대포를 조준할 때, 20대 그녀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칼에 찔려 죽어갈 때, 광주는 다시 살아났다.

우리의 연한 모습, 즉 소년은 우리와 함께 사회를 살아간다. 과거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다시 살아난 광주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앞으로도 소년은 온다. 또 조용히, 무기력하게 죽어가지 않기 위해 광주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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