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교실 (3)
2학년이 되었다. 선생님은 1학년 때 담임이었다. 2학년 때에는 우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해영이와 흥렬이는 선생님의 수업이 그립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학년의 내가 속한 반의 담임 선생님은 체육 선생님이었다. 성인 만화 사건은 모두에게 잊혔고 담임 선생님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딱히 잘못한 게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니었다. ㅎㅎ 어쨌든 나는 그렇게 마음 편히 생각하고 2학년을 출발했다.
하루는 방과 후에 인상이가 분통을 터트렸다. 사회 과목 중 하나를 가르치는 K 선생님 때문이었다. K 선생님은 성격이 정말 이상하다고 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학생을 교단 앞으로 불러 세우고 험하게 체벌한다며 화를 냈다. 자신이 본 가장 짜증 나는 체벌이라고 했다. 음악 선생님도 아닌 분이 왜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사용하는 박달나무 지휘봉을 들고 다니는 것인지?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걸핏하면 그걸 강력한 체벌 도구로 휘두른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중에 우리 반에서 내가 직접 목격한 K 선생님의 체벌 방식은 정말 기괴했다.
우선, 처벌 대상 학생에게 칠판을 향해 똑바로 서라고 명령한다.
학생의 옆에 서서 등 뒤를 바라보고 선다. 정확히 목 아랫부분에 박달나무 지휘봉을 가져다 댄다. 학생의 목덜미 아래 등짝부터 탁탁, 가볍게 치기 시작한다.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위에서 아래로, 일정한 간격으로.
탁탁…
탁탁…
강도가 조금 더 세진다.
탁탁탁!
탁탁탁!
박달나무 지휘봉은 등짝을 타고 내려가다가 허리를 지나 엉덩이를 가격하기 시작한다.
탁탁탁!
탁탁탁!
탁탁탁!
때리는 강도가 빠르게 높아진다.
매 맞는 학생은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앞으로 비틀거린다.
똑바로 서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가격이 시작된다.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면서 종아리에 이른다.
탁탁
탁탁
탁탁
잠시 쉬어가는 듯 강도가 다소 약해진다.
거의 발목 부분에 이른다.
이윽고
다시 종아리를 때리면서 점차 올라오기 시작한다.
허벅지에서 강도가 높아진다.
탁탁탁!
탁탁탁!
엉덩이를 타고 올라와 허리 부문에서 잠시 강약이 조절되다가 등짝에서 맹렬해진다.
탁탁탁!
탁탁탁!
탁탁탁!
그리고
등짝에서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종아리에 이르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체벌을 가할 때 K 선생님의 무표정하던 얼굴은 점차 붉어진다.
울그락 불그락.
체벌이 절정에 이르면 씩씩거린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얼굴을 좌우로 내렸다 올렸다 목을 약간 삐끗 돌리기도 한다.
목 운동이라도 하듯이.
한마디로 기괴하고 끔찍한 체벌이었다.
그런 체벌을 목격한 뒤로부터 나는 K 선생님에게 큰 반감을 품었다.
하루는 K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교과서를 읽고 노트에다 정리하라고 했다. 그러곤 무슨 개인적인 볼 일이 있다며 교실을 나갔다. 어이가 없었다. 학생들에게 알아서 정리하라고 하다니! 나는 투덜거렸지만, 과제를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대충 했다. 적당히 했다. 적당히… 맹세코 매를 맞을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는 결코 <부실하게>가 아니다. 수업 종이 울리기 전에 교실로 돌아온 K 선생님은 부실한 정리를 적발하겠다며 노트 검사를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 노트는 대충 흩어보면서 빠르게 지나쳤다. 내 앞에 와서는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좌우로 갸웃했다. 박달나무 지휘봉을 내 노트에 적힌 것들 위에서 빙빙 돌렸다.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교실이 그토록 조용한 적은 처음이었다.
너 이게 뭐야?
노트를 톡톡 두드리는 박달나무 위에서 K 선생님 특유의 비꼬는 말투가 들렸다. 이게 뭐라니? 필기한 것인데 뭐라니?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평소 반감이 있었기에 그냥 아무 말 없이 입을 닥친 채 묵묵하게 내가 필기한 것을 노려보았다. 교과서에 있는 것을 그대로 쓴 것뿐이다. 글씨가 좀 정갈하지 못하지만.
너 이리 나와.
나는 교단 옆으로 나갔다. 칠판을 바라보았다. 등짝에서 종아리까지 내려가고 올라오는 매를 맞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처럼 화끈하게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창피했다. 맞을 짓을 한 것도 없다고 믿었기에 분노가 치밀었다. 솔직히 세월이 흐르고 흐르고 흐르고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 내가 왜 맞아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노트 정리 대충 했다고 그런 식으로 때리다니?
등짝에서 종아리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체벌은 잠깐이긴 해도 아팠다. 하지만 신체적인 고통보다 심리적인 고통이 더 컸다. 짜증 나고 혐오스러웠다. 나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생님을 욕했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K 선생님은 체벌을 끝내고 교실을 나가 복도를 지나 갈 때에도 주변을 가볍게 때린다.
박달나무 지휘봉으로 벽이나 창틀 같은 곳을 톡톡 치면서 느리게 걷는다.
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는 계단 난간을 때린다. 가볍게… 톡톡 톡톡
… 톡톡 톡톡
… 톡톡 톡톡
반질반질한 박달나무 지휘봉을 볼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그 타격 소리가 귓가에 울리곤 한다.
이 사건 말고는 2학년 시절은 대체로 평범했다.
기괴한 악몽의 체벌, 그 또한 지나갔다.
3학년에 올라가는 첫날.
대강당에서 전교생 예배가 끝나고 각자 배정받은 학급으로 이동했다. 우르르 빠져나가는 인파 속에서 나는 인상이를 찾았다. 인상이가 손을 흔들며 내게 다가왔다. 너, 몇 반이냐? 우리는 동시에 물었다. 나는 9반이었다. 인상이는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자기는 다른 반이라고 했다. 몇 반인데? 인상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난, 5반! 5반이다. 이따 끝나고 매점에서 보자!
5반이라고 그렇게 외치는 인상이와 헤어지고 나는 9반으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친하게 지냈던 해영이와 흥렬이가 보였다. 반가웠다. 우리는 다시 한 반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었고 둘 다 1학년 때 이상주 선생님의 담임 아래 행복한 일 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었다. 흥렬이는 공부를 아주 잘했고, 해영이도 반에서 상위권에 들어가는 성적이었다. 둘 다 성격도 차분하고 조용한 모범생들이었다. 해영이는 노래도 잘했다. 대학가요제에서 인기를 끌던 <젊은 연인들>이라는 노래를 멋지게 불렀다. 두 친구를 보는 순간, 내가 품은 희망이 굉장히 커졌다.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 이상주 선생님이 우리 반의 담임으로 오시면 되는 거였다!
나는 교실 맨 앞에 있는 교탁을 지나서 안쪽 창가의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해영이는 뒷문 쪽으로 가서 맨 뒤쪽 자리에 앉았다. 복도 바로 옆이었다. 나와 해영이는, 수학적으로 말하면, 그 교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학생이었다. 학급 내의 모든 아이를 각각 하나의 점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임의 두 점(학생)을 직선으로 연결할 때, 가장 길이가 긴 두 점은 바로 나와 해영이를 잇는 점이었다. 이 두 점 사이에 66명의 아이가 있었다. 직사각형의 교실에서 대각선을 이루는 꼭짓점을 차지하고 앉았다.
교실로 들어오는 문이 오른 쪽에 있었다. 나는 왼쪽 창가의 맨 앞자리에 가서 앉았고, 해영이는 복도에 접한 오른쪽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나와 해영이 사이에는 66여 명이 아이들이 있었다. 그날은 학급의 첫날이었지만, 나는 다른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의 성 씨가 희귀한 팽 씨인 것도 이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누가 놀려도 그런 것에 상처받을 꼬맹이가 아니었다. 나의 걱정과 기대는 담임 선생님이 누구일지, 오직 그것이었다. 신경이 곤두섰다. 이상주 선생님이 들어오기만 간절히 기도했다. 해영이와 흥렬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배반의 교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래는 편집 과정에서 삭제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본문에 수록하기 어렵고 그냥 부록으로 공개한다.)
일 학년 때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은 이상주 선생님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그냥 웃으셨다. 선생님은 첫사랑 이야기 대신에 첫사랑 이야기의 유사품을 꺼내어 들려주었다. 첫사랑 하면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면서.
선생님은 여고 시절에 (불국사인지 어딘지) 어느 유명한 사찰로 수학여행을 갔다. 그런데 그 절에는 너무너무 잘생긴 (오늘날 원빈 정도의) 젊은 스님이 한 분 있었다. 당당한 풍채, 짙은 눈썹, 우수 어린 눈, 오뚝한 콧날, 사색(?)적으로 파리한 입술, 사연을 간직한 듯한 희미한 미소. 여학생들이 모두 심쿵했는데, 선생님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여고 반 친구들은 맑고 청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눈을 지닌 그 원빈 스님에게 반해서 어쩔 줄 몰랐다. 선생님 친구들이 한숨을 내쉬며 눈물지으며 (왜 그대는 하필 속세를 떠난 스님이 되었단 말인가!) 다 같이 청승맞게 들었던 유행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꿈속의 사랑>이었다고 한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한 죄이라서
소리없이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아- 사랑 애달픈 내 사랑아 어이 맺은 하룻밤의 꿈
다시 못 올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말 것을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아- 사랑 애달픈 내 사랑아 어이 맺은 하룻밤의 꿈
다시 못 올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말 것을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선생님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여고 시절 친구들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고요하고 경건한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애절한 짝사랑의 노래. 그런데 나는, 세월이 지나, 가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선생님이 떠오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며 피식, 웃으시던 모습이.
노래는 탕웨이 버전이 좋다.
탕웨이가 부르는 <꿈속의 사랑> 모음
출처 : 유튜브 <예쁜유라화이팅> 탕웨이 Tang Wei_ 꿈속의 사랑
* 탕웨이가 스튜디오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다. 다만 유튜브에서 시청해야 한다.
출처 : 유튜브 <피케이> 탕웨이( Tang Wei) ㅡ 꿈속의 사랑 (Love In A Dream)
출처 : 유튜브 <MUSIC PMG> 영화음악[OST] 탕웨이 - 꿈속의 사랑(영화 그녀의 전설 삽입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