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교실 (2)
나는 사춘기 소년답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이웃집 할머니의 극성스러운 전도 때문에 마지못해 끌려갈 때만 해도 몇 번 나가다가 그만두려고 했다. 이웃집 할머니 가족은 동네의 작은 슈퍼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가끔 외상으로 먹거리를 가져올 때도 있었다. 을의 처지인 어머니는 내가 ‘예수쟁이’가 될까 봐 걱정했지만, 적극적으로 말릴 수는 없었다. 어머니에게 오늘은 교회에 끌려가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 비장하게 속삭인 날, 어머니 역시 암묵적인 눈짓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바로 그날, 하필 그날, 예배당 입구에서 눈부시게 예쁜 여학생이 활짝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름이 가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을날이었다. 그런 쓸쓸한 날씨에 화사한 봄날의 햇살을 만나는 경험, 그런 게 바로 사춘기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목사님 설교는 따분했지만 좀 더 열심히 다녀보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에만 교회에 가다가 사춘기 소년답게 토요일 오후의 청년 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다 같이 기도할 때, 앞쪽 멀리 앉아 있는 여학생의 교복 위로 살짝 드러난 하얀 목덜미를 훔쳐보곤 했다. 어느 날, 문득, 예배 준비를 위해 목요일 저녁에 모이는 성가대 무리 속에 내가 서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노래도 못하는 내가 왜 여기에? 찬송가 부를 때마다 입만 벙긋하거나 적당히 불렀다. 성가 연습이 끝나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목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이상하게도 집으로 갈 때마다, 항상 큰길 건널목에서 여학생 옆에 나란히 서 있게 되곤 했다. 순수한 우연의 일치였지만, 나는 초보 사춘기 소년답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 시절 대한민국에서의 중고등학교는 개발도상국 나라답게 남녀공학이 거의 없었다. 학급의 60~70여 명이 모두 남자아이들이었다. 1) 그러니, 어쩌다 여학생 옆에 서게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는 신호등 앞에서 대기하던 여학생이 내 손에 든 롯데 껌 쥬시후레쉬를 힐끗 보았다. 녹색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건널목 중간에서 여학생에게 껌을 내밀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여학생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껌을 받았다. 그러곤 별말 없이 그냥 걸어갔다. 건널목을 건너면, 여학생은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가야 했다. 짧은 만남과 이별의 아픔. 이 여학생은 훗날 내가 쓴 어느 단편소설에 각주로 처리되어 등장한다. 중년의 직장인 남자가 교회 십자가를 보고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여기에 옮겨 본다. 2)
십자가를 보니, 문득 중학생 시절 교회에서 알게 된 소희라는 여자애가 떠올랐다. 소희는 얼굴이 하얗고 목이 긴 동급생 소녀였다. 내게 첫사랑이 있다면 그건 아마 소희일 것이다. 나는 소희에게 말을 건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멀찍이 떨어져 바라만 보았다. 딱 한 번 소희가 내게 다가와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교회에서 개최한 청소년 여름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수련회가 열린 기도원은 강원도의 어느 산골이었다. 산골의 밤은 순식간에 내렸고 어둠은 도시보다 훨씬 짙었다. 기도원의 예배당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 유일한 빛이었다. 소희가 내게 부탁한 것은 기도원의 정원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소희가 내게 말을 건넸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만 붉히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바보처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소희에게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그저 우물에 바가지를 내린 뒤에 물을 퍼 올렸다. 그리고 소희가 가리킨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주었다. 소희는 내가 퍼준 물로 손과 얼굴을 씻었다. 물이 너무 차가웠던지 훗, 하며 웃었다. 나는 말없이 두 번째 물을 퍼 올려 소희 옆에서 기다렸다. 소희가 대야의 물을 버리면 얼른 다가가 물을 담아주었다. 소희는 이번에는 발을 씻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나에게 미소 지었다. 어둠 속의 그 미소는 내가 간직한 유일한 첫사랑의 추억이 되었다. 나는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매주 소희를 위해 기도를 올릴 때만큼은 아주 진지했었다. 소희가 부모님을 따라 외국으로 떠난 건 얼마 뒤였다. 소희가 떠난 뒤에 나는 점차 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하느님에게 진지하게 부탁할 만한 기도가 더는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뒤에 나는 해마다 어설픈 ‘올해의 첫사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둠이 내린 기도원의 정원, 그 우물가에서 본 소희의 미소만큼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순간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너 국어 선생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교회의 소희가 더 좋아?” 주인상이 말했다. 인상이는 소년 시절에 가장 친한 친구였다. H중학교 동급생인데 같은 반은 아니었다. 교회에서 만났다. 수상한 눈초리로 여학생을 매번 바라보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이상한 눈초리가 매번 있었다. 바로 인상이었다. 문득 눈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 말을 건네며 친해졌다.
“국어 선생님은 존경하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
“그런데 왜 국어 선생님이 근처에 오면 네 얼굴이 붉어져?”
“내 얼굴이 붉어져? 그냥… 존경심이 가득하면 그럴 수도 있어. 담임이잖아!”
선생님은 여러 문학과 영화 작품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정규수업 외에 특별활동으로 각자 좋아하는 활동반을 선택하는 제도가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주관하는 문학 관련한 특활반을 선택했다. 이 시간에 선생님은 단편소설을 읽어주거나 장편소설이나 영화를 축약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선생님은 약간 고전적인 로맨스를 좋아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게 로맨스 스토리가 아닐지!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절에 로맨스 소설이나 사랑 영화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숨을 내쉬며 욕하는 학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런 학부모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는 호기심이 생기면 부모가 아무리 막아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막으려 한다. 그게 뭐든 아이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소용없다. 아무리 막아도 아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지된 것에 접근하기 마련이다. 이때 꾀가 많이 늘어난다. 거짓말과 도둑질까지 하는 아이도 생겨난다. 공부 외에 무조건 다른 것을 막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선생님의 특활반 운영은 그런 면에서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철학적이거나 너무 사색적인 것보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적당한 선에서 자극하는 고전 로맨스 스토리가 딱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다는 사춘기 남자 중학생을 대상으로 선생님은 나름 주효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세련된 이야기 전달자였다. 이야기 방식에 연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었다. 주인공 남녀의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약간 강조하는 부분이 있긴 했다. 지나치지 않았다. 로맨스인데도 통속적인 울림이 크지 않고, 일상 대화처럼 평이하게 전달했다. 그런데도 극적인 장면의 전달력이 뛰어나서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이 특활반 시간에 해주신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제임스 힐턴 원작의 영화 『마음의 행로』(Random Havest)이다. 1941년에 출간된 소설을 1942년에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올드 드라마에서 무수히 차용된 ‘기억 상실에 걸린 연인’ 이야기의 원조에 해당한다.
이야기는 영국 미즈랜드의 외딴곳에 있는 멜버리지 카운티 정신병원에서 시작된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무렵. 전쟁터에서 기억력을 손상한 남자가 상실감에 젖어 있다. 갑자기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온 나라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남자는 이날 부모가 자신을 찾아온 줄 알고 정장 군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찾아온 이는 부모가 아니었다. 실망한 남자는 군복을 입은 채 종전으로 사람들이 환호하는 정신병원을 벗어나 정처 없이 걷는다.
어느 거리 모퉁이를 돌아 담배 가게에 들어간다. 담배가게 여주인이 정신병원에서 나온 환자임을 직감하고 신고하려고 한다. 우연히 가게에 들른 폴라라는 이름의 여자가 남자를 구해준다. 존 스미스라는 너무나 평범한 이름을 지닌 남자는 자신이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고, 진짜 이름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폴라는 스미스가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둘은 사람들을 피해 멀리 달아나기로 한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난다. 외지고 아름다운 시골에 정착한 두 남녀는 결혼하기로 한다.
행복한 신혼 생활과 함께 얼마 후 아기도 태어난다. 작가가 되길 희망하는 스미스에게 도회지 리버풀의 어느 신문사에서 채용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한다. 폴라와 아기를 두고 리버풀로 떠난 스미스는 면접하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스미스는 사고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의 과거 기억을 되찾는다. 동시에 폴라와의 행복했던 3년 동안의 기억을 잃는다. 그의 이름은 찰스 레이니어였고 영국 귀족 부호의 장남이었다.
원래의 기억을 되찾은 찰스는 원래의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은 찰스의 부친이 사망한 날이고, 유산 분배를 위해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찰스는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대기업을 경영하게 되고 정계 진출까지도 눈앞에 두게 된다. 조카뻘인 젊은 여자 키티가 찰스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찰스도 키티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찰스에게는 뭔가 텅 빈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머지 스토리는 여기에서 생략한다.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쓰다 보니 엄청 길게 썼다. 이만 쓰기로 한다.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마음의 행로>로 검색하면 자막 있는 흑백 영화로 전부를 시청할 수 있다. 저작권 유효 기간이 소멸하였기에 마음 편하게 시청할 수 있다. 옛날 영화라서 약간 신파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전반부를 그럭저럭 너그럽게 보면 후반부에서는 흥미로운 전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후반부의 전개 방식이다. 소설에서 가끔 등장하는 서술 트릭의 기법이 영화에서 구현되는 방식을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3년 동안 사랑했던 남편을 잃어버린 폴라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은 심금을 울린다. 신파라고 하기에는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 배워야 할 기법이 제법 많은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다. 애절하게 가슴 아프다가 행복한 결말의 끝장판을 보여준다. 공휴일인 어제 나는 이 영화를 다시 시청했는데, 교실에서 선생님이 전달해 준 마지막 장면 묘사가 자꾸 겹쳐 떠올랐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학창 시절의 추억을 거닐다가 돌아온 기분이다.
영화 <마음의 행로> 1부
출처 : 유튜브 <무비콘 영화>
영화 <마음의 행로> 2부
출처 : 유튜브 <무비콘 영화>
영국 출신 작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은 1930~50년대에 주로 작품활동을 했다. 이 시대에는 『노인과 바다』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위대한 개츠비』의 F. 스콧 피츠제럴드가 크게 주목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제임스 힐턴도 나름 유명했지만, 양대 세계대전을 겪은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두 거장 작가에게 밀려난 느낌도 없지는 않다. 3)
1933년에 더블린의 신문사에서 일하며 탈고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도 상당히 유명하다. 히말라야 산속의 신비한 이상향의 낙원인 <샹그리라>를 무대로 한 소설이다. 영국의 권위 있는 호손덴 문학상을 받았다. 1934년에 발표한 노교사의 반생을 그린 『굿바이 미스터 칩스』도 대단한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 힐턴의 위의 소설 두 편을 읽었다. 어느 추리 문고에 처음 소개된 『잃어버린 지평선』은 사실 추리 소설보다는 낭만적인 모험담에 더 가깝다. 제임스 힐턴의 소설은 감상적이면서도 낭만과 휴머니즘이라는 고전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샹그리라는 시간이 응축되고 공간이 확장된 이상향이다.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제임스 힐턴의 소설에서는 전쟁과 물욕에서 해방된 신비로운 지상 낙원으로 그려진다. 나는 샹그리라를 차용하여 <샹그리라는 없다>라는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현대사회의 물욕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렸다. 문우들의 평가는‘독특하지만 어렵다’였고,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시사점이 하나 있다. 우리가 소설이나 에세이를 쓸 때, 과거에 읽었던 작품에게 크거나 작거나 어떤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영향은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이고 간접적인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애정을 가지고 독서를 하자. 그런 독서는 나중에 글쓰기를 할 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행복한 중학교 1학년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1) ‘한 반에 몰려있는 떼거리들은 몽땅 여드름투성이 남자 아 새끼들이었다’의 순화된 표현.
2) 출처 <중국상자 이야기>, 계간지 《자음과 모음》(2013년 겨울호). 당시 내 필명은 이수오였다. 동명의 다른 문학인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서 지금은 이 필명을 쓰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니컬슨 베이커의 『구두끈은, 왜?』라는 소설에서 각주를 재미있게 활용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그래서 나도 각주를 마구 동원해서 소설을 썼는데 그게 바로 이 작품이다.
3) 한 번은 선생님이 물었다. "여러분 지금 세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가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선생님의 국어 수업시간 때마다 맨 앞자리 친구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내가 중얼거리면 선생님이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오 헨리 아닌가... 요? 오헨리..." 나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너무 대중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힐끗 보더니 웃었다. "선생님 생각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이어요.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는 대중적인 작품이어요. 전쟁 속에서 꽃 피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때 헤밍웨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세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평가했던 선생님의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중에 헤밍웨이의 두 작품을 모두 읽고 나서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왜 선생님이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 깨달았다. 선생님은 헤밍웨이를 정말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마지막 장면이 너무 강렬했다. 통속적이진 않았지만 감상적이었다.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잡아내는 작가가 진정 위대한 작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