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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Sep 24. 2024

선생님은 우리 만의 선생님이다!

사랑방 손님이고 뭐고 선생님 좀 그만 좋아해라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고, 상반기에 가끔 발생하는 프리랜서 일거리도 더 이상 없기에, 요즘 집에서 주로 하는 일은 설거지와 청소이다. 그리고 데스크톱이 있는 책상에 앉아 커다란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이다. 요리와 빨래는 안 한다. 


컴퓨터, 설거지, 청소 그중의 으뜸은 청소이다. 


청소는 달리기처럼 중독성이 있다. 바쁘다고 대충 넘어가면 아쉽고 찝찝하다. 열심히 쓸고 닦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쫓겨날까 봐 하는 게 (진심) 아니다.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면 글쓰기 욕구가 샘솟는다. 작가들 가운데에는 글쓰기 벽을 극복하기 위해 맹렬히 청소하는 분도 많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에 나오는 작가 윤지호(정소민 역)가 청소하는 장면을 보라. 감동적이다. 나와 같은 부류가 저기 있구나, 정말 반가웠다. 


며칠 전, 청소를 무사히 마치자 아내가 외출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무릎이 아파 달리기를 쉬고 있고 청소할 때도 절룩거리니, 어서 병원에 가보자는 거였다. 


C재활의학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요괴인간 베라와 비슷한 이름과 같은 성별을 가진 김배나 원장 선생님이었다. 아내와 나란히 진료실에 들어서자 배나 선생님이 증세를 물었다. 증세를 설명했다.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 검사실에 누워 있는데 선생님과 간호사가 들어왔다. 검사 중이니, 아내는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베라, 아니 배나 선생님이, 엑스레이 판독 결과 인대가 심하게 늘어난 건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이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뭔가 열심히 설명했다. 무릎 주사를 두 대 맞자고 했다. 나는 끄덕였다. 문득, 황급히 덧붙였다.


 “저, 선생님. 저희 집의 모든 의사결정은 아내가 합니다.”


선생님과 간호사님이 소리를 내 웃었다. 선생님 지시로 간호사가 검사실 문을 열고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들어왔다. 선생님은 초음파 모니터를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아내에게 보여주며 설명하고선 무릎 주사 두 대를 맞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 보험 처리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이리저리 된다는 답변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검사실을 나갔다.


무릎 주사는 그 자리에서 두 대를 맞았는데, 심히 아팠다. 선생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처음부터 다시 아내에게 설명해 주셔서 너무 친절하다고 하고, 나 혼자 결정하면 아내에게 혼난다고 덧붙였다. 두 분이 다시 또 웃는데, 이번에는 간호사가 더 크게 웃었다. 


무릎 주사를 두 대 맞고, 그 뒤로 아침저녁 약을 먹고 있다. 신기하게 아픈 게 사라졌다. 그래도 1~2주는 달리기를 하면 안 된다고. ㅠㅠ     


우리 집의 대장은 나다. 아내는 의사결정권자일뿐… 




     


이제 이상주 선생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시절에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 그리고 일상다반사에 대한 개인적 의견 등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의 수업 내용도 딱히 제약받거나 항의받는 일도 거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과 억지스러운 도덕철학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선생님도 많았다. 동시에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지도력을 지닌 훌륭한 선생님들이 자신의 교육철학을 마음껏 펼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자유로운 소통이 지금 시대보다는 훨씬 수월했던 것 같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자세히 쓰려면 한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장의 슬프고 웃긴 에피소드에 앞서 선생님의 인품이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간추려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에 대한 경어체 표현은 가급적 하지 않기로 한다. 나의 선생님이지만, 이 글을 읽는 다른 독자 여러분의 선생님은 아니므로. 반드시 모두가 선생님을 존경해야 할 의무는 없기에, 이 글에서 존칭은 최대한 생략한다.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나오는데, 양해해 주길 바란다.)         


1. 선생님은 자신이 개인주의자라고 했다. 자신이 맡은 반, 자신이 가르치는 수업, 그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 영역을 넘어서는 일에는 간여할 능력도 없고 관심을 나눌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그릇이 작은 인간이라고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이기주의가 아니라면, 나는 내 일을 가장 먼저 챙깁니다. 나는 내가 맡은 반, 우리 반, 여러분이 가장 소중해요. 나는 넓은 마음이 부족해서 너무 많은 것을 다 챙길 수가 없어요. 여러분만 신경 쓰기에도 너무 바빠요. 내가 자기 일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하는 다른 선생님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기적이라는 말의 뜻을 잘 생각해 보세요.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그걸 개인주의라고 해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기 욕심을 차리는 이기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물론 이타심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턱대고 내게 이타심을 요구할 수는 없어요. 나는 여러분이 소중하고 여러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이런 말씀에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 감동했다. 선생님은 우리만의 선생님이다! 우리는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 선생님 애정을 독차지하는 아이들이다! 그런 확신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진하게 스며들었다.      


사실, 선생님은 나중에 묘사하겠지만, 이타심이 매우 많은 분이었다.



2. 선생님은 체벌을 싫어했다. 체벌은 교육자가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학생들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과 면담하거나 대화하는 노력은 매우 힘들고 피곤한 과정인데, 그에 비해 체벌은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수단이라고 했다. 즉각적이지만 일시적이고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믿었다. 요즘은 많은 선생님이 학업 준비 외에 너무 많은 과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과 깊은 대화를 나눌 틈도 없고 여력도 없다고 한다. 훗날 내가 체벌 무용론을 이야기하면 즉각 이런 식으로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과거 학생들과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버릇없고 다루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다시 세월이 좀 더 흘러,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체벌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제도를 역이용하고 선생님을 고소하는 사례가 엄청 많다고 한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나는 자세한 내막을 몰라, 무엇이 옳고 맞는 의견인지 솔직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선생님은 확고하게 체벌을 멀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실천한 분이었다. 문제 학생들 때문에 고뇌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내게도 여러분 나이의 딸이 있어요. 여러분은 모두 누군가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식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여러분을 때려야 하나요?      


우리는 선생님에게 혼날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의 매를 마구 휘두르는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반항심과 적개심을 드러낼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에게는 정말 한 톨의 걱정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 반 모두가 그랬다. 해영이도… 흥렬이도… 맹구도… 땡이도… 구영탄도 모두.      



3. 선생님은 우리에게 솔직했다. 우리 학생들을 어엿한 인격체, 마치 어른처럼 대접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고민이 있으면 솔직하게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교육제도와 학교의 규칙에 대해서도 험한 말로 비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 당신의 고민인지 우리에게 알기 쉽게 일러주었다. 우리는 어린 나이였지만 선생님의 고민을 듣고 같이 걱정하고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은 첫날, 조용하고 별로 웃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잘 웃으시는 분이었다. 크게 웃기보다는, 피식, 웃으실 때가 많았다. 가끔 어떤 아이는 선생님에게 불만을 품었다. 자신보다 다른 아이를 더 편애한다며, 울상을 짓거나 짜증을 냈다. 선생님은 그럴 리가 있니, 피식 웃었다.      


복도를 지나가다 선생님을 만나면, 슬쩍 한마디 하시곤, 싱긋 웃으셨다. “이언아, 이번 국어 시험에서 너 한 문제 틀렸던데. 저번에는 만점이었는데, 아쉽다.” 이내 지나가셨다.      


4. 국어 선생님은 두 유형이 있다. 첫째는 문학이 아니라 어학에 지식이 많은 분이다. 둘째는 어학은 잘 모르고 오직 문학을 칭송하는 분이다. 유상주 선생님은 어학 쪽이었다. 문법과 어법이 설명이 명확하고 교과서의 문장과 시를 분석하여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셨다. 고문도 논리적으로 가르치셨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삼 학년 학생들은 이상주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에 배정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문학을 숭배하는 연령이 약간 있으신 남자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그 선생님은 문학과 시에 대한 감상에 매우 치우쳤다. 수업 시간 내내 교과서의 문장이나 시구를 칭송하며 한 손을 높이 쳐들곤 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상주 선생님 수업 때는 교과서에 필기를 많이 했고, 칠판에 적힌 설명도 바쁘게 적어야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을까? 아이고, 내가 오늘날 독서에 빠진 건 순전히 선생님 탓이다. 특별활동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해 준 우리나라 근대문학 작품과 영미 고전 소설 때문에 나는 평생 문학 애호가가 되어버렸다는…ㅎ


선생님은 낭독을 아주 잘하셨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모두 눈을 감고 책상에 엎드리라고 하곤 읽어주신 단편소설이 있었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였다. 선생님이 교실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낭독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여섯 살 옥희를 생생하게 전하던 선생님 목소리도. 


    달빛을 함빡 받는 내 어머니 얼굴은 몹시도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천사 같다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 …

    “어머니, 왜 울어?”

    하고 나도 훌쩍거리면서 물었습니다.

    “옥희야.”

    “응?”

    한참 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옥희야, 난 너 하나문 그뿐이다.”

    “엄마.” 1)    


해영이는 책상 엎어져 듣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뭐 이해하고 운 건지, 모르겠으나 암튼. 믿거나 말거나. 

흥렬이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이야기 속의 옥희가,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선생님일 거라고 주장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도저히 그런 감정 이입이 나올 수 없는 거라며 우겼다. 웃자고 한 소리치곤 나름 진지했다. 



5. 우리는 선생님에게 승부욕을 배웠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뭐 뭐를 하지 마!” 이런 말씀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대신 뭔가를 하라고 자꾸 부추겼다. 그냥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기라고 했다. 이겨야지! 기왕 하는 것 이겨야 해! 1학년 첫 학기 때에 봄날 체육대회가 있었다. 각반별로 소프트볼 시합이 열렸다. 한 학년에 10개 반이 있었다. 


얘들아, 스포츠는 그냥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단다.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전혀 안 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이기는 걸 꼭 보고 싶어. 연습 열심히 해. 이겨야 해. 이길 수 있어! 알았지! 


나가서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라며 승부욕을 가득 부추기는 열정적인 그런 선생님을 그 뒤로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소프트볼을 할 줄 몰라 선수로 뛰지 못했다. 선수로 뽑힌 아이들이 땀이 흥건할 정도로 연습하고 시합에서는 볼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가 아닌 아이들도 응원에 열중했다. 선생님은 과격한 선동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뭔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학교 규칙을 강조하고 금기사항을 권장하는 것보다, 다른 목표를 제시하고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정말 좋은 교육이 아닐지 생각한다. 우리 반은 연승을 달리다가 결승전에서 패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공 하나하나와 안타 하나하나에 흥분하며 손을 꽉 잡던 그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준우승에 그쳤지만 우리는 모두 손뼉을 쳤다. 우리 반 선수들은 울었고 선생님은 그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최선을 다한 모습에 만족하신 듯 피식, 웃기도 하셨다. 체육대회 말고 2학기에 열린 합창대회에서는 우리 반이 전교에서 최우수 합창반으로 우승했다. 1학년에서 3학년까지 모두 30개 정도의 학급이 경합했는데 우리가 일등이라니. 선생님과 함께 합창 연습을 열심히 했지만 설마 우승할 줄은 몰랐다. 그때 정말 뭔가 배운 느낌이었다. 승부욕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뭐, 선생님이 이겨야 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이긴 것이긴 하지만. 선생님의 지휘에 우리가 부른 곡은 <아멘>이라는 성악이었다. 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멘"이었다. 미션 스쿨이었으니 그런 선곡이었겠지만 종교를 떠난 지금 다시 들어도 아름다운 음악이다. 


내가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어머니가 질투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머니도 선생님을 존경했고 가끔 나를 놀릴 뿐이었다.      


니 도시락 누가 싸주냐? 선생님이 아니고 이 엄마다, 엄마, 니 엄마! 

사랑방 손님이고 뭐고 선생님 좀 그만 좋아해라. 니 도시락에서 소시지랑 달걀 확, 빼 버린다. 




1)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중에서 발췌. 




https://youtu.be/63kCMsuIAsQ

헨델의 메시아 중 <아멘> 파트. 우리가 부른 것과 약간 다른 느낌이다. 내가 베이스라서 그런지 아니면 쉽게 편곡한 것이었을까? 아무튼 ...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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