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교실 (4)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자 모든 아이의 눈이 문 쪽으로 쏠렸다. 침착하게 기다리던 나 역시 문 쪽을 보았다.
헉!
숨이 막혔다. 들어온 교사는 내가 기다리던 이상주 선생님이 아니었다. K 선생님이었다. 2학년 때에 기괴한 체벌을 당하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가 담임이라니! 충격을 받아 잠시 멍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K가 들어온 순간, 반 전체에서 크고 작은 한탄이 울렸다. 아… 에… 아흑! 에혀… 에이… 우… 씨… 윽 등등. 여러 신음이 한순간에 몰려 거대한 호흡처럼 터졌다가 사그라졌던 것이다. 매우 짧았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아이들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나는 한탄을 내쉬고 고개를 떨구는 것까지 세트로 다 했다. 3학년의 첫날,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런 학급 분위기는 K 선생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K의 성격도 알고 보면 상당히 내향적이었다. 평소 말이 없고 침울했다. 박달나무 지휘봉을 두드리며 걷는 것도 우울증세가 아니었나 싶다. 내향적이고 고집 센 사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학급에서 터져 나온 한탄을 모욕적으로 느낀 듯했다. 그는 교탁에 서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좌우로 잠깐 비틀더니 교실을 둘러보았다. 침묵. 착 가라앉은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K는 교탁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해해. 알아. 네가 인기가 없지. 자, 모두 눈 감아. 눈 감아.”
모두 당황했다. 눈을 감으라고? 눈 감으라는 건 학급에서 가끔 발생하는 도난 사고 같은 게 있을 때만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었다. 눈 감고 도둑질을 한 학생은 손을 들고 자수하라는 거였다. 그러면 모든 걸 용서한다고. 그런 경우에나 눈을 감으라는 건데, 왜 지금 눈을 감으라는 걸까?
“눈 감아. 자, 내가 담임이 되어서 불만인 사람들 손 들어 봐. 괜찮아. 절대 화를 내려는 게 아니야. 그냥, 알고 싶은 거야. 자, 손 들어 봐. 내가 담임이 되어서 싫은 사람들 눈감고 모두 손 들어.”
사춘기 아이들은 쉽게 반항심을 드러낼 때가 있다. 어른들은 흔히 ‘그 시절에는 다 그런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뭘 모르고 까분다거나 철이 없어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교사가 사소한 일에도 체벌할 때가 있다면, 아이들도 쉽게 흥분하고 짜증을 낼 때가 있다. 하지만 K가 그때 아이들에게 요구한 것에 대해, 내가 보인 반항심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 못 한 체벌을 당했고 존경심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담당하는 학급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당당하게 번쩍 든 것은 아니었다. 나도 눈치가 있으니까. 적당히 들었다. 물론 부실하게 손든 건 아니었다. 적당히 알아먹을 정도로 들었다. 사실 나는 속으로 계속 흥분하고 있었다. 이상주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이 아니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음침하고 우울한 K가 담임이라는 사실에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느꼈다. 눈을 감고 손들라니! 누가 못 들 줄 아는가. 그런 심보로 나는 손을 들었다.
손을 들고선 슬그머니 눈을 떴다. 교탁의 K의 얼굴이 보였다. K는 오른손으로 박달나무 지휘봉을 꾹 누르고 있었다. 교탁 한가운데를 꾹 누르고 있었다. 무표정했다. 그러다가 다시 턱을 내밀었다. K는 발언할 때, 턱을 약간 내밀다가 다시 잡아당기며 고개를 숙이는 동작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다. 흥미로운 건 K가 나를 바라본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학급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K는 턱을 내밀며 말했다. “모두 눈 떠. 눈 떠. 괜찮아. 솔직해야지.”
K는 턱을 당기며 말했다. “자, 조금 전에 손든 사람들, 모두 일어나. 전부 일어나.”
나는 쭈뼛쭈뼛 일어섰다.
나는 교실 교탁을 바라보며 맨 왼쪽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창가 자리였고 고개를 돌리면 온전하게 창밖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반대쪽으로 돌리면 온전하게 교실의 모든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깜짝 놀랐다. 나만 손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게 아니었다. 상당히 많은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K의 턱이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거의 절반 약 서른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손을 들었고 K의 지시에 따라 일어나 있었다. 놀라웠다. 반갑기도 하고. 동지들이여.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이었다.
K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내가 싫으면 나도 원하지 않아. 자, 이제 다른 반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말해. 어느 반으로 가고 싶은지 말해. 반을 바꿔줄게.”
K는 일어난 아이들 천천히 한번 둘러보았다. 이윽고 맨 앞의 나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거기, 너부터 말해 봐. 말해 봐. 몇 반으로 가고 싶어?”
바로 나였다. 아마 내가 K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큰 아이였을 것이다. 나는 반을 바꿔준다는 말에 다시 희망을 품었다. 바꿀 수 있다고? 그러면 당연히 바꿔야지. 그런데 이상주 선생님은 몇 반이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정보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내 친구 인상이가 5반에 있다는 것. 오직 그것만 내가 가진 정보였다. 5반 담임이 이상주 선생님이라면? 그러면 나는 절친과 함께 선생님의 학급 반 아이로 일 년을 보낼 수 있다!
“네, 5반으로 가겠습니다.”
이때 K의 얼굴은 굳어지는 걸 나는 분명히 보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반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너무 컸기에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했다.
K는 턱을 내밀며 나를 향해 지휘봉을 들었다. “뭐! 음… 그래, 너 5반. 알았어.”
다시 정적. K는 수첩에 뭔가 적는 척했다. “5반…”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 뒤에 서 있던 아이에게 말했다. “다음, 너, 너는 몇 반이야? 몇 반 가고 싶어?”
내 바로 뒤에서 서 있던 아이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3학년 첫날이고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무튼 그 친구는 눈치가 빨랐다. K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친구가 말했다.
“저, 저… 는 남겠습니다!”
“어, 그래? 음 그래 그러면 앉아. 자, 다음 너, 너는 몇 반 가고 싶어?”
다음 학생도 눈치가 있었다. “저도 남겠습니다.”
“그래? 앉아. 자, 다음 너, 너는 몇 반 가고 싶어?”
“그냥 남겠습니다.”
“그냥 남겠습니다.”
“그냥 남겠습니다.”
“그냥 남겠습니다.”
“그냥 남겠습니다.”
…
“다음 너, 너는 몇 반 가고 싶어?”
…
남겠다고 하고 착석.
남겠다고 하고 착석.
남겠다고 하고 착석.
남겠다고 하고 착석.
남겠다고 하고 착석.
…
배반의 교실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당당했다. 맨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었다. 바보 같은 자식들, 반을 바꿔준다잖아. 그런데 남겠다고? 사람이 손을 들고 한 번 일어났으면 당당하게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지. 배신을 때려. 배반자 녀석들!
그때 마지막 학생이 대답했다. “저, 저… 저… 저는 8반입니다.”
헉, 나는 동지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알고 보니 해영이었다. 그날 혜영이와 나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교실 왼쪽 맨 앞에 있었고 해영이는 교실 오른쪽 맨 뒤쪽에 있었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해영이만 내 편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전부 배신자 새끼들만…!!!
사실 해영이가 교실 맨 오른쪽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교실 뒷문 자리였기에 살짝 문을 열어두면 복도를 살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해영이는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이상주 선생님이 우리 반을 지나 바로 옆 반인 8반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 내게는 그런 정보가 없었다. 그 사실을 내가 알았다면 나 역시 당연히 5반이 아니라 8반으로 가겠다고 선언했을 거였다.
K는 막판에 다시 마른침을 울컥 삼켰다. “야, 너, 그리고 너 이리 나와. 다른 반 가고 싶다니까 이리 와”
내가 먼저 교탁 앞으로 나가고 해영이가 내 옆에 와서 섰다. K는 다시 한번 수첩에다 뭔가 적는 척하더니 말했다. “너, 넌 5반? 이름이 팽… 이언. 넌 뭐야? 8반? 이름이…김해영. 그래 두 사람은 이제 5반과 8반으로 가라. 거기 가서 우리 반과 바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고 바꿀 사람이 있다면 바꿔달라고 해. 자, 가, 어서 가. 넌 5반으로 가. 넌 8반으로 가. 가서 물어봐.”
등 떠밀려 나가야 했다.
배반의 교실을 나오자, 복도에서 해영이가 내 팔을 잡았다. “야, 이언아. 어떡하냐?”
나는 어서 빨리 5반으로 가서 담임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다. “뭘 어떡하냐. 당장 가서 반 바꿔 달라고 해야지. 난 5반 갈게. 너도 가.”
“가서, 뭐라고 해?”
“뭐라고 하긴. 반 옮기고 싶다고 하면 되지. 그냥 가서 말해. 나는 갈 거야. 나는 저 선생 정말 싫어.”
해영이가 이상주 선생님이 8반으로 들어간 사실을 내게 말해 주었다면 내가 해영이 손을 잡고 8반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해영이는 치사하게 입을 꾹 다물었다. 다음날 해영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알고선 무척 서운했다. 이 자식이 그런 중요한 정보를 내게 숨기다니!
훗날, 가족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와 딸은 나를 비웃었다. 에혀, 바보가 따로 없었네. 그런 말을 믿다니!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가 한 짓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었고, 그저 절망 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을 뿐이다. 너무나 큰 희망을 품는 사람은 가끔 상황을 오판하기도 한다. 나는 그날 무조건 9반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썼던 것이다. 마음 약한 해영이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지만 나는 전혀 몰랐다. 아니 모른 게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했다. 솔직히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되든 안 되든 뭔가 행동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H중학교는 7층 건물인데 교무실은 4층이었다. 3학년은 6층과 7층을 사용한다. 내가 속한 9반은 7층이었고 내가 옮겨가고 싶었던 5반은 6층에 있었다. 복도에서 망설이며 서 있던 해영이를 두고 나는 6층으로 내려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을 옮길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서.
5반 교실에 접근했다. 발을 들고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살폈다. 아, 여자 선생님이 있었다. 이상주 선생님은 아니었고, 처음 보는 선생님이었다. 키가 커 보였다. 이상주 선생님이 아니어서 실망했지만, 다시 눈을 들고 친구 인상이를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70여 명의 아이들이 자리 배치를 하고 있었기에 그 가운데에 있겠지 했다. 어쨌든 내가 교실에 들어가면 인상이가 반가워하겠지. 큰 희망은 버리고 작은 희망이라도 챙겨야 할 시간.
드르륵.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여자 선생님은 생물을 가르치는 배순자 선생님이었다. 그때는 선생님 성함도 몰랐다. 배순자 선생님은 갑자기 교실에 들어온 나를 바라보았다.
“응? 뭐니? 누구야?”
나는 교탁 옆으로 다가갔다. 5반 아이들은 전부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나는 교탁 앞으로 가서 섰다. 배순자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아직 성장판이 열리지 않아 보통 키였는데, 선생님은 키가 참 컸다. 배순자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는 9반에서 왔어요. 저, 5반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이 반에서 반을 옮기고 싶은 학생이 있을까요?”
“뭐??? 그게 뭔 말이니?”
“9반 K 선생님이 반을 바꿀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어요.”
잠깐 침묵. 배순자 선생님은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와락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 하하하! 얘, 어서 가서 너희 선생님에게 잘못했다고 해. 너희 담임이 장난치신 거야. 하하하!”
배순자 선생님의 웃음과 함께 절망감이 다시 나를 감쌌다. 내 등 뒤에서는 5반 학생들이 다 같이 웃고 있었다.
아, 뭐 이런 경우가! 나는 결국 현실을 깨달았다. 악마 같은 K가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속았다. 하지만 나는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실망했지만 적어도 K에게 나도 한 방 먹인 셈 아닌가. 끝까지 다른 반으로 가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나는 헤밍웨이식 걸음걸이로 7층으로 다시 돌아갔다. 헤밍웨이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비정한 문체, 즉 하드보일드 문체로 유명한 작가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썼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 문장이 정말 냉정하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불을 꺼 보았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건 마치 조상(彫像)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잠시 후에 나는 밖으로 나와서 병원을 뒤로하고 비를 맞으면서 호텔로 걸어 돌아왔다.
5반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잠시 그대로 서 있었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건 마치 세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배순자 선생님의 명랑함을 뒤로하고 나는 거기서 나와야 했다. 잠시 후에 나는 밖으로 나와서 5반을 뒤로하고 마음속의 비를 맞으면서 9반으로 걸어 돌아갔다.
희망이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저 종은 울리나. ㅠㅠ
9반으로 돌아가자, 아이들 자리 배치가 이미 다 끝난 상태였다. 해영이는 나보다 먼저 돌아와 있었다. K는 내게 물었다. “왜? 아무도 없어? 바꿀 사람이 없다고 해?”
누가 그대를 선택하겠어. 제정신 가진 아이라면 9반에 오고 싶지 않지. “네, 한 명도 없다네요.”
그래서 해영이와 나는 맨 끝자리에 앉게 되었다. 학급에서 학생 번호는 보통 키 순서로 결정되고 했다. 우리 반의 모든 아이는 복도에 나가서 키 순서로 정렬한 뒤에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키가 보통인 해영이와 나만 마지막 번호를 받았다. 해영이는 67번이 되고 나는 끝 번호 68번 학생이 되었다.
그날 교무실은 한바탕 웃음바다였다고 전한다. 학생 2명이 남자 선생님을 기피하고 여자 선생님 반으로 가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모든 선생님에게 크나큰 웃음을 선사했다고 한다.
- 아이고, 요즘 애들이 좀 뻔뻔해요. 노골적으로 여자 선생님 있는 다른 반으로 가겠다고 하다니!
- 아니, 다 큰 놈들이 생각이 없는 짓을 벌이네. 하하.
- 이 선생님과 배 선생님은 좋겠어요. 인기가 많으셔서. 으하하.
더 웃긴 건 인상이었다. 그 자식은 5반에 없었다. 알고 보니 7반이었다. “내가 언제 5반이라고 했냐? 나, 어어어, 칠반! 그랬다고. 도대체 왜 5반으로 간다고 한 거냐?”
“시끄럽다.”
“야, 배순자 선생님이 어디가 좋아? 키만 멀대처럼 크고 말괄량이 스타일이라서 좋아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다더라. 애들이 네가 팽하고 돌았다고 하더라. ”
“시끄럽다.”
“해영이는 이상주 선생님을 선택했는데, 왜 넌 갑자기 배순자 선생님을 선택한 거야? 크크”
“시끄럽다.”
“야, 해영이는 이상주 선생님 반으로 가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하더라.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던데.”
다음날, 다음날의 태양이 떠올랐다. 나는 별로 우울하지 않았다. 내가 한 짓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했다고 여겼다.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처럼 우수 어린 눈빛으로 먼 곳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덤덤하게 복도를 걸어갔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이상주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사실 나도 선생님 반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냥 선생님이 부르시길래 선생님에게로 갔다. 선생님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혹시 내가 전날 저지른 일 때문에 선생님이 무슨 할 말씀이 있으신가?
이상주 선생님은 학생에게 면담할 때도 무척 신중하셨다. 너 어제 왜 그랬니?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놀랍게도 선생님을 이렇게 말씀했다.
“이언아, 네가 친구 해영을 위해서 나선 거라며?”
그럴 리가. “아, 아녀요. 선생님.”
“해영이 말로는 네가 먼저 손들고 다른 반으로 간다고 해서, 자기도 용기를 냈다고 하던데.”
나는 선생님에게 갑자기 칭찬받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그냥 친한 친구가 5반이라고 해서 그리 가겠다고 했어요.”
선생님이 다시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교사가 학생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 교사가 학생 앞에서 다른 교사를 흉보거나 욕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낮게 조용히 말했다.
“이언아. 잘 들어. 너네 담임 선생님에게 한 번 눈 밖에 나면 일 년 내내 힘들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잘해야 한다. 알았지?”
감동. “네, 알겠습니다.”
사실 5반으로 옮겨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국어 시간 담당이 이상주 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3학년 국어는 1~5반 학생의 경우 다른 국어 선생님이 맡았다. 이상주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절대 5반으로 옮겨가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교탁 바로 앞에 앉는 아이에게 찾아가서 협상했다. 국어 시간에 자리 좀 바꾸자고 했다. 그 친구는 크게 기뻐하면서 당장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국어 시간이 오면 항상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바꾸지 않으면 맨 뒷자리에 앉아야 해서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할 게 걱정이 되었다.
나는 다시 일 년 동안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되어서 행복했다.
문제는 …
문제는 … 배순자 선생님이었다.
생물 시간에 수업에 들어오신 배순자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야, 이언아!” 와락 껴안는 줄 알았다. 배순자 선생님은 교탁 맨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국어 시간이 끝나고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가야 했는데 깜박했다.
배순자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수업을 시작해야 함에도 마냥 웃으셨다. 그리고 학생들이 다 듣고 있는데, 나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었다. 원한 게 아니었지만.
배순자 선생님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괜찮아… 그래서, 너희가 사춘기인 거야. 괜찮아.”
윽. 여기에서 왜 사춘기가 나오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배순자 선생님이 훨씬 더 사춘기 소녀처럼 보였다. 명랑하게 평소에도 자주 웃었지만 나만 보면 괜히 훨씬 더 명랑하게 웃었다.
하루는 학교를 끝나고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배순자 선생님을 만났다. “이언아, 이리 와. 이리 와.” 나를 반갑게 부르더니, 양산을 씌워주었다. 나는 머쓱하게 선생님과 나란히 걸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또 그 말씀을 하셨다. “괜찮아… 그래서, 너희가 사춘기인 거야.”싱글벙글.
나는 배순자 선생임이 실망할 게 걱정되어 진실을 말하진 못했다. 할 수 없이 국어 시간 말고도 생물 시간에도 매번 앞자리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기특하다는 눈짓을 한껏 받으면서. 덕분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생물 시험 성적도 부쩍 올랐다.
어머니의 통신망에 내가 일으킨 사건이 잡혔다. 어머니가 나를 불러 앉혔다. 외사촌 누나인 숙이 누나, 옥이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 빙 둘러앉았다. 빨리 모든 걸 불엇! 할 수 없이 나는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불어야 했다.
어머니 : 그러니까, 해영이는 이번에도 단순 가담자이고 주동자는 또 너라 이거지.
아 들 : 그렇지 뭐… 해영이가 가담할 줄은 몰랐어.
숙누나 : 넌 왜 맨날 주동자가 되냐?
어머니 : 그러니까, 이상주 선생님은, 친구 해영이를 위해 네가 나서준 거라 여기신다 그거지? 우리 어른들 잘못이라는 그런 말씀은 따로 없었냐?
아 들 : 예. 내가 잘하면 내 탓이고, 내가 잘못하면 어른들 탓인 것은 변함이 없어.
어머니 : 이 자식이 이게 지금 보통 사태냐? 넌 담임에게 눈 밖에 난 거잖아.
아 들 : 상관없어요.
어머니 : 곧 학부모 면담인데, 이건 촌지 정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네. 너희 담임이 뭐 좋아하시냐?
아 들 : 애들 때리는 거 좋아해. 그런데 담임이 위장병이 있다고 해. 점심시간마다 선생님 사모님이 따뜻한 도시락을 가지고 와. 후문 철책 담 너머에서 도시락을 전달해. 인상이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나도 봤어. 아침에 만든 도시락은 식어 버리잖아. 그래서 사모님이 매일 점심마다 따뜻한 도시락 직접 가져와.
어머니 : 그니까 위가 안 좋다고? (옥이 누나를 보며) 옥아, 너 위장병 약 좀 구해 와라.
옥누나 : 그럴게요. 미국에서 들어온 암포젤 엠 큰 병을 하나 얻어 올게요. 직원은 원가에 가져올 수 있어요.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옥이 누나는 어느 기관의 양호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일동제약에서 암포젤 엠을 판매한 적이 있지만, 누나는 미국 상표가 붙은 것을 가져오곤 했다.)
아 들 : 왜 그런 걸 가져다줘요? 매일 점심에 따뜻한 국물 있는 밥 먹는 분한테.
어머니 : 시끄러워! 네가 저지른 짓을 엄마가 다 메꿔야 해.
아 들 : 얻은 것도 많아요. 이상주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배순자 선생님은 날 무척 좋아해.
어머니 : 아이고, 철없는 놈. 속 터져.
옥누나 : 철없어도, 귀엽네. 크크크.
여동생 : 오빠, 말썽 피우지 마.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보니, 아직도 덜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