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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Nov 05. 2024

무엇이 여자의 마음을 폐허로 만드는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아파트 1층에서 122걸음 가면 근린공원 산책길이 나온다. 가까워서 좋다. 거기에 있는 구름다리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가 달리기 하는 한강 변으로 곧장 건너갈 수 있다. 요즘은 무릎이 아파 달리기를 쉬고, 대신 걷기를 한다. 구청에서 근린공원에 맨발 걷기를 위한 황톳길을 조성하고 있다. 절반 정도 완성된 황톳길을 매일 맨발로 걷는다. 맨발 걷기의 이온 효과 등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이론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맨발이라는 그 자체가 좋다. 신기하고 즐겁다. 평생 양말과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는데, 맨땅 위를 맨발로 걷는 기분은, 뭐라고 할까, 원시적이거나 야성적인 기분, 뭐 그런 걸 쪼매나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좋다. 포인트는 ‘쪼매나마’에 있다. 너무 거창하면 거칠어서 힘들다. 무엇보다 땅이 황토라서 부드럽다. 아직 굳지 않아 말랑말랑한 구간을 걸을 때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빗물의 진흙탕을 달리던 시절 말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이나 예절에 물들지(?) 않았던 시절, 점잖지 못하게 막 뒹굴어도 좋았던 시절, 그 시절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야성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오늘의 주제는 야성적인 삶이다. 쪼매나마 야성적인.     



     

몇 년 전 우리 집은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관악구의 어느 동네에 있었다. 근처에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이 있었다. 걸어서 50분 거리였고 캠퍼스로 순환하는 버스를 타면 23분 만에 도착하는 거리였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굉장히 넓고 복잡한 곳이다. 책들이 여러 층에 배치되어 있고 한 층에도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책은 정말 많다. 내가 그곳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비용편익 분석 같은 경제학 논문을 찾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어느 용역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마침 근거리 장소에 거의 모든 자료가 다 갖춰져 있는 셈이었다. 도서관 일반회원으로 가입할 때 관악구민이라서 할인도 받았다. 연회비 8만 원 정도를 냈다. 그 뒤로는 책도 마음대로 대출하고 논문도 검색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절판된 책을 찾아 도서관에 자주 가곤 했다.      


이년 전 여름 어느 날 무더위를 피해 도서관 책꽂이 사이를 떠돌던 나는 누군가 고정식 반납 카트에 올려둔 책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책장 꽂이에 가지런히 정렬된 책 보다 다른 이들이 읽다가 카트에 비딱하게 올려둔 책에 더 관심이 갔다. 이유가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무슨 책을 읽는 것일까? 그런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호기심보다 질투심이 더 컸던 것도 같다. 그들의 지식 탐구도 부러웠고, 젊음도 마냥 부러웠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과연 무슨 책을 읽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는 것일까? 그래서 카트에 올려둔 책들에 눈길이 갔다.      


문득 두 권이 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대린 M. 맥마흔의 『천재에 대하여』이다. 원래 영어 제목은 Divine Fury: A History of Genius인데, 굳이 번역하자면, 『신성한 분노 : 천재의 역사』라고 하겠다. 국내 판 표지에는 번역 제목인 ‘천재에 대하여’보다 영어 제목인 ‘Divine Fury’가 더 큼직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도대체 신성한 분노가 뭐지? 궁금했다. 게다가 고대부터 현재까지 천재와 천재성에 관한 모든 것이라니. 다른 책 하나는 제목부터 너무 멋있었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었다. 영어 제목은 Women Who Run With the Wolves - Myth and Stories of the Wild Woman Archetype였다. 저자는 클라리사 에스테스, 처음 듣는 모르는 작가였다. 앞표지에 적힌 문구도 흥미를 끌었다.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길을 가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면 뒤를 돌아보라. 그러면 네 발로 서 있는 아름다운 야성의 그림자가 보일 것이다! 뒤표지도 읽었다. 전 세계 18개 언어로 출간된 여성 심리학의 고전이고, 역대 최고의 심리학 분야 베스트셀러라고 적혀 있었다.      


책 두 권을 모두 대출했다. 이 책 읽으면 나도 젊어질 수 있어, 하고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둘 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내게 새롭고 낯선 영역이었다. 철학과 심리학이니까 말이다. 그것도 고대 철학과 여성과 관련된 원형 심리학이니 말이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는 익숙한 것보다 새롭고 낯선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혀 모르는 언어를 공부한다든지. 일본어를 모르면 일본어 배우기에 도전한다.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면 그림 그리는 것에 도전한다. 춤을 춘 적이 없다면 재즈 댄스 학원 쉘 위 댄스에 등록한다. 화학에 문외한이라면 대학교 화학 교재를 (원서로) 읽는 것에 도전한다. 등등. 젊은 대학생들이 관심을 보인 책을 골라 읽는 것도 분명히 젊어지는 비결 중 하나라고 믿는다.       

     



두 권의 책 가운데 오늘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에 대한 감상을 쓰기로 한다. 우선 결론을 말하면, 독특하고 짜증 나며 동시에 매력적이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상징적인 이미지와 민화 같은 스토리를 통해 설명한다. 설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저자의 심리학 이론은 모호한 구석이 너무 많다. 어느 대목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심리적인 치료를 권유하는 일종의 자기 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계발서치곤 구체적인 실천 가이드나 실용적인 팁이 별로 없는 게 약점이다. 하지만 시적이고 야성적이다. 그 점에 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독특하고 짜증나며 동시에 시적이고 야성적인 책 - 여성 심리의 자기 계발서 



이 책의 저자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다. 1992년에 출간된 책은 3년 동안 무려 145주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당시 최고 기록이다. 알고 보니 에스테스는 라틴계 미국인이다. 구글 검색에 잡힌 작가의 외모는 어딘지 모르게 대륙의 인디언 풍모가 느껴졌다. 작가의 사진을 보고선, 책의 모호한 구석과 뜬구름 같은 설명방식이 이해되었다. 인디언식 사고방식이었던 것이다. 물론 저자는 미국 대학교에서 공부한 학자이다. 그러면서도 미국 서부극 영화 속에 가끔 등장하는 인디언 방식의 삶과 지혜를 지닌 치료사인 것이다.       


저자 클라리사 에스테스 -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며 라틴계 작가


이 책의 1장의 제목은 <여성의 잠재의식이 파괴되었다>이다. 저자는 자신이 사막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지혜를 잉태하고 돌아온 여신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방랑의 세월을 통해 특이한 장소나 비범한 사람들에게서 전수받은 지혜를 숨겨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본능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문명과 사회에 의해 본능적인 인격체가 멸종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이 책에서 ‘여걸’로 번역되고 영어로는 Wild Woman으로 표기되는, 야성적인 여성이 본래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아는’ 그 늙은 존재는 다름 아닌 우리 안에 있다. 그녀는 여성의 가장 깊은 영혼/심리에서 올라온, 태곳적 생명인 야성적 자아다. 그녀의 집은 여성의 영혼과 늑대의 영혼이 만나는 곳이다. 정신과 본능이 섞이고, 여성의 깊은 생명이 일상적인 삶을 만들어내는 곳이 그녀의 집이다. 그곳은 ‘나’와 ‘신’이 입 맞추는 장소이고, 여성이 온 마음으로 늑대와 함께 달리는 공간이다. 

(P47)     


여성의 본능 안에는 천적도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본능을 억압하고 규율과 제도를 강요하는 존재이다. 대표적인 천적이 바로 <푸른 수염>이다. 저자는 푸른 수염의 스토리를 자세히 적고 나서 원형 심리학이라는 분석 도구로 해설한다.      

   

푸른 수염은 아내에게 단 한 가지만 빼고 모든 것을 허용한다. 아내의 삶은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제한적이 된다. 푸른 수염 이야기 같은 삶을 사는 여성들은 아주 많다. 그들은 천적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자기의 삶을 파괴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사랑으로 치유하겠다는 소꿉놀이 같은 생각을 한다.

(P72)      


푸른 수염이라는 천적의 포식자는 여성의 생각, 감정, 행동으로부터 여성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빛을 갈망하지만, 빛을 차단하여 여성의 삶을 죽음과 다름없이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천적이나 푸름 수염이 여성을 지배하려는 일련의 남성 무리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알고 보니 그런 의미로 쓴 것은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천적, 푸른 수염은 남성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여성 심리 속에 내재하는 어두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쇠를 들고 그 어둠의 방,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상당히 모호하고 피곤했다. 읽다가 책을 내려두고 머리를 식혀야 했다.     


푸른 수염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에는 바바 야가와 바살리사 이야기가 등장한다. 옛날 옛날 젊은 엄마가 죽기 전에 어린 딸 바살리사에게 작은 인형을 유산으로 남긴다. 계모와 계모의 두 딸은 바살리사를 죽이기 위해 무서운 마녀 할멈인 바바 야가에게 보낸다. 바살리사는 엄마가 남긴 인형의 도움을 받아 마녀 바바 야가가 주는 어려운 과제를 모두 해결한다. 바바 야가는 어린 바살리사에게 해골과 막대기를 주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막대기에 꽂힌 해골은 계모와 두 딸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이야기가 끝난다.      


저자는 이 설화를 통해,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주는 여성의 힘을 말한다. 또한 어린 딸은 엄마의 품을 떠나 홀로 서야 함을 강조한다. 지나치게 친절한 어머니는 따뜻함으로 여성의 마음속에 남아 있겠지만, 과잉보호 측면도 있다고 해석한다. 친절한 엄마는 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한계를 뛰어넘어서지도 못한다고. 하지만 작은 인형 같은 선물을 통해 어린 딸의 성장을 돕는다는 해석이다. 역시 모호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이 어느 책에서, 아들은 신적인 아버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저자는 다양하게 수집한 민화와 설화를 동원하고, 그 이야기를 원형 심리학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해석한다. 억울하게 죽은 해골여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선, 여성들이 해골여인을 직시하고 그 엉킨 뼈를 풀어줘야 한다는 식이다. 사랑은 죽음으로의 하강이고, 죽음의 뼈를 풀어야 사랑이 온다고! 이런 식의 상징과 심리학적인 해설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여성이 본능의 힘을 되살려 늑대와 함께 달리는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치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골여인의 뼈를 풀어줌으로써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게 된다. 만물의 심리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아는 것이다. 또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명확한 지식을 얻게 되고, 가능한 한 조용하고 우아하게 사물의 탄생과 변용의 단계를 거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P169)          


모호한 구석도 많았지만, 매력적인 상상력과 강렬한 이미지는 마음에 들었다. 이성적인 해석 보다 감각적인 감성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책을 읽은 뒤 짜증과 함께 감동과 치유 비스름한 느낌을 동시에 받는 건 처음이었다. 여자의 마음에 관해 쓰고 있지만, 남자의 마음에도 자극적인 내용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무엇이 여자의 마음을 폐허로 만드는가 -  내 안에서 파괴를 일삼는 심리의 천적

   우리의 마음속에는 나름의 가치 체계와 동기 및 수단을 지닌 여러 존재들이 공존하고 있다. 한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존재들을 포착해 몇이나 되는지 세어본 다음 이름을 붙이고 이들이 참패한 노예처럼 물러갈 때까지 꽁꽁 묶어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여성의 눈 속에서 춤추는 야성적 불을 꺼뜨리고 말 것이다. 그녀의 뜨거운 불길과 모든 불꽃도 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여성 본래의 아름다움을 타락시켜서는 안 된다. 대신 이 모든 존재들을 위해 야성의 지대를 마련한 뒤 예술이 필요하다면 예술을, 사랑이 필요하다면 사랑을, 치유가 필요하다면 치유를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      

   내면의 존재들이 이성을 잃고 생각 없이 파괴를 일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존재들도 거처를 주어 한 곳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특히 심리에서 가장 기만적이고 가장 강력한 도주자 그룹은 우리의 의식을 자극하고 봉쇄하기를 원하는데, 이것은 바로 본능의 천적이다. 

   인간의 불행은 대체로 부주의한 양육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심리 안에도 본래부터 본능을 거스르는 힘이 존재한다. 본능에 반하는 그 힘은 긍정적인 것과 대립하고 발달, 조화, 야성에 반대한다. 그 내면의 힘이 우리를 비웃고 억누른다. 아무리 최고의 양육으로 보살핀다 해도 소용없다. 그 침입자의 유일한 목적은 모든 교차로를 막다른 길로 바꿔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약탈자는 여성의 꿈에 자주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장 정성을 기울이고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그들의 직관을 흐려놓으며 끝내는 기운을 잃어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의 생각과 꿈을 구기고 발치에 던져버린다. 다음의 <푸른 수염> 이야기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북미에는 프랑스와 독일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나는 프랑스와 슬라브 이야기가 뒤섞인 다음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이야기는 푸른 수염의 끔찍한 범죄 행각을 목격한 사람들의 일화에서 시작된다. 

(P60)          


불행이 부주의한 양육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선, 곧바로 아무리 최고의 양육으로 보살핀다 해도 불행을 막기에는 소용없는 일이라고 뒤집는 게 인상 깊다. 


무엇이 여자의 마음을 폐허로 만드는가? 본성을 잃은 마음은 폐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창의력을 잃을 마음은 폐허가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여자의 마음을 폐허로 만드는가? 


생명의 강이 다시 맑아져야 창의력이 되돌아온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창조하는 작품의 질이 아니라 창조적인 생활 그 자체다. 글쓰기, 회화, 사고, 치유, 행동, 요리, 대화, 미소 뒤에는 항상 이 창의력의 강이 흐르고 있고, 이 강 밑의 강이 있어야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다. 

(P287)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돈 못 버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폐허로 만든다고 자주 생각하곤 했다. 알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니, 직장에서 은퇴한 남자 입장에선 무척 다행인 셈이다. 여성이 본성을 잃은 것은 전혀 내 탓이 아니고, 푸른 수염 탓이며, 뭐 나를 만나기 전에 주어진 어떤 환경적인 요소 탓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견해에 깊이 수긍한다. 하하. 


어쨌든 작가 에스테스의 주장을 요약하면, 건강한 여성은 늑대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늑대는 야생성을 의미한다. 늑대는 짝짓기와 공동체에 대해 진지한 동물이며, 우아하고 헌신적인 동물이며,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한 동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솔직히, 남자든 여자이든,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친절함과 예의범절, 규칙과 규율 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본능적인 직관과 솔직함과 담대함이 점점 사라지는 세상이 우리가 걷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하여, 쪼매나마 맨발 걷기가 중요하다. 

쪼매나마 야성적인 힘을 회복하는 길이다.

첫 걸음은 무엇이든 쪼매나마였을 것이다. 

물론 내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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