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놀았더니 글쓰기가 힘들다. 이래서 매일 쓰는 게 중요하다. 날마다 일정한 루틴으로 움직이고 일정한 의식(rituals)으로 글쓰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괜히 쉰다면서 술도 마시는 바람에 리듬이 깨진 것 같다. 후회스럽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똑같은 일과의 반복은 일종의 최면이라고. 그래서 그의 자기중심적인 시간표는 사교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오늘은 그냥 두서없이 쓰기로 한다. 리듬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써야만 하니까. 그래서 정말 맥락 없는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끝까지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는 한때 글을 쓰기 전에 모닝커피를 꼭 마셨다. 여기서 글이란, 꼭 소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직장에서 하는 기안, 기획서, 조사, 연구 보고서 같은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직장에서 벗어난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직장에서 업무 하듯이 소설을 쓴다면? 자료조사를 하고, 잘 모르는 문제는 전문가에게 문의하고, 전체적인 구조와 목차를 만들고,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 어려우면 일단 쓰면서 고민하고. 그런 식으로 업무처럼 매일 일정 시간을 투입해서 재료를 만지작만지작한다면, 쓰기 어려운 소설도 못 쓸 것은 없을 듯하다. 물론 내 견해에 불과하다. 어쨌든 커피를 마시며 일상적인 직장 업무처럼 그냥 무조건 시작하면 어떨까. 벽에다 아래 문장을 붙여놓고서.
작가는 커피를 문장으로 전환하는 장치이다.
물론 어떤 작가는 커피 대신 담배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의 경우에는,
작가는 담배를 문장으로 전환하는 기계이다.
윽, 개인적으로 담배는 싫다. 냄새나고 지저분하다. 연기와 재떨이와 담배 재. 그리고 옷과 주변에 스며든 담배 냄새는, 정말 싫다.
직장에서 보고서를 쓸 때는 마감을 대체로 지켜야 한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할 수 없이 밤을 새우면서 보고서를 쓴 적도 많지만, 어쨌든 마감 날짜가 되면 허접쓰레기라도 손에 쥐게 된다. 재미있는 건, 바로 이 허접쓰레기 같은 초고이다. 후배가 초고를 써서 가져오면 선배가 읽는다. 이때 선배는 두 종류로 나뉜다.
A타입 선배 : 아, 정말. 넌 머리가 없냐? 이건 이렇게 고치고, 이 부분은 뒤로 돌리고, 여기 있는 이 부분을 앞으로 올려. 자, 내 말대로 하니까 보고서가 깔끔해지지. 아, 힘들다. 결국 이 보고서는 내가 다 고쳐준 것이니까 내가 쓴 거나 다름없네.
B타입 선배 : 자네가 초고를 가져오니까, 고쳐야 할 부분이 내 눈에는 쉽게 보인다. 원래 그런 법이야. 백지 위에 초고를 쓰는 게 가장 어렵지. 머리를 짜내고 써야 하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쓴 거라서 오타도 제대로 못 잡고, 비문도 있고 그런 법이지. 하지만 자네가 이렇게 초고를 써온 덕분에 내가 쉽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거지. 이것저것 내가 수정하라고 권고하지만, 결국 이 글은 자네가 쓴 거야. 내 수정 권고를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어. 이 글은 자네 것이니까 자네가 나의 코멘트를 잘 검토해 보고 반영할 것은 반영하도록 하게.
A타입 선배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일지라도 밥맛이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선배일지라도 초고를 맡게 되면 후배가 쓴 허접쓰레기 초고와 비슷한 수준의 것을 가져온다. 원래 초고는 그런 것이다. A타입 선배가 초고를 쓴 뒤에 후배에게 보여주면, 오류가 많고 글의 구조도 이상한 걸 후배가 예리하게 지적할 수 있다. 그의 코멘트 중 쓸만한 게 있으면 반영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면 된다.
남이 쓴 초고를 무자비하게 지적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소설 공부할 때 모여서 합평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냉혹하게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우끼리는 꼭 필요한 조언을 건네는 식으로 합평하는 게 도움이 된다. 자신도 제대로 못 쓰면서 합평 시간만 되면 엉뚱한 지적을 모욕적으로 건네는 사람은 그냥 무시하는 게 제일 좋다.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Still Writing)는 글쓰기에 관한 짧고 훌륭한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대부분 재미있고 유익하다. 그중의 하나 <짧고 나쁜 책>이란 제목의 글을 읽으면, 용기를 얻고 격려를 받는 기분이 든다.
가장 아끼는 친구 중 하나는 짧고 나쁜 책을 쓰겠다고 되뇌면서 지난 소설을 시작했다. (그 작품은 상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는 짧고 나쁜 책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근사한 전략이다. 누구라도 짧고 나쁜 책은 쓸 수 있으니까. 그렇지?
얼마 전 나는 에세이며 소설 초고, 책 리뷰 등을 모아둔 컴퓨터에서 파일을 뒤적거리다 이 수십 편의 작업들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문장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밑져야 본전이다. 짧고 나쁜 책을 쓰겠다는 말을 내 식대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밑져야 본전이다. 성패에 좌지우지될수록 글쓰기에 뛰어들기가 어려워진다. 누가 이 책을 읽을지,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몇 부나 찍을지, 어떤 잡지가 발표해 줄지 생각할수록 원고가 살아나기 어려워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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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글쓰기 방법도 알려준다. 짧고 유익한 글쓰기 관련 에세이 모음집
고등학교 동창 다섯 명을 만난 자리에서 술을 마셨는데 뭔가 잔뜩 여러 가지 대화를 했지만, 막상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동창생은 그래서 좋다. 편한 이야기를 했으니 기억이 안 나는 거겠지. 숙취에서 벗어나도 피곤했다. 넷플릭스에서 미국 드라마와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미스 슬로운 (영화) :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 후, 상대보다 한 발자국 앞서서 회심의 한방을 먼저 날려야 한다. 회심의 한방이란 게 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 신념을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도 좋은 것일까? 미스 슬로운이 준비한 한방은 땅이 꺼질 정도의 충격적인 일격이었는데, 감동을 넘어 잠시 경악스러웠다. 오래 여운이 남는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드라마): 이번 시즌3도 무척 재미있다. 미스터리 탐정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법정 드라마이다.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원작 소설도 좋지만, 드라마를 정성껏 잘 만들었다. 언젠가는 나도 링컨 차를 타는 작가가 되고 싶다.
댐즐 (영화) : 영화 에놀라 홈즈에 나왔던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 주연의 통쾌한 판타지 영화. 동화스럽게 시작하지만 앤절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보다 더 통쾌한 결말을 선사한다.
영화 <댐즐> 피로 물든 동굴! 동화 + 판타지 + 공주의 게임 + 복수 + 탈출, 악의 세력에게 불로 화답한다!
초토화 (드라마) : 1편은 뭐 그냥저냥 시시한 폭력적인 액션물처럼 시작한다. 그런데 참고 보면, 2편부터는 대박! 29금 장면이 양념으로 등장하면서 우왕좌왕 골 때리게 웃기는 코미디 액션 드라마이다. 드라마에서 남자 나체 전신이 가리는 것 없이 완전하게 공개되는 장면은 평생 처음 본다.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팀장과 팀원들이 모두 독특하게 원초적이고 상스럽고 능력있고 개그맨을 능가한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큰 폭소를 선사해 준 기술담당 마야 러너가 곱절로 마음에 든다. 드라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홍보도 열심히 한다. 동시에 X등급 유머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만들고 마약과 배꼽 상실을 경험하게 해준다. 결국 몸과 마음과 서재가 초토화된다. 29세 아래 사람들과 함께 시청하거나, 주변에 함부로 시청을 권장하면, 욕을 대박으로 먹게된다.
외교관 (드라마) : 정치가와 외교관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복잡한 국제 정세를 조율하는 외교관은 지나치게 섬세하고 (내가 보기에는 사소한 것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문제를 굉장히 신중하게 고려한다. 자신의 신념과 원칙, 욕망과 갈등, 결혼 생활의 난해함까지. 아내를 위해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며 여러 공작을 펼치는 남편 때문에 열을 받게 된다. 하지만 막판에는 남편이 나름 귀엽다. 스릴 있지만, 복잡해서 이해력 딸리는 나는 드라마의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2의 마지막 장면에서 엄청난 반전을 선사한다. 결국 시즌 1이 끝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멘붕에 빠져 버렸다. 아아아, 다음 시즌 언제 나오냐? 끝나는 순간, 학수고대하게 만든다. 제발 좀 빨리빨리 만들자!
돈 무브 (영화) : 숲 속에서 연쇄 살인마 남자에게 납치당한 여자는, 주사 약물을 맞고 몸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완전히 마비되기 전에 필사적으로 한발한발 도망치지만, 약물 때문에 결국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경직되고 쓰러진다. 하지만 살기 위해 필사적인 투지와 정신력으로 살인마와 대결한다. 눈 깜박이는 것 이외는 꼼짝도 못 하면서 저항한다. 최근 시청한 스릴러 가운데 가장 독특한 영화
드라마와 영화는 소설과 무엇이 다를까? 드라마와 영화는 외적인 장면을 주로 보여주고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심리적 묘사에는 무척 약하다. 소설은 심리 묘사가 장점이다. 그래서 내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 재미있다는 독자도 꽤 많다. 어떤 현대 소설은 서사는 거의 없고 심리 묘사만 잔뜩 길게 나오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이런 소설도 있어야 하고 저런 소설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사 중심의 장르 소설도 있어야 하고 심리 묘사 중심의 소설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뭐 다 맞는 말 같다. 끄덕.
소설은 작가가 혼자 쓰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작가가 여러 명인 경우가 흔하다. 특히 드라마 작가는 다수가 집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타이틀에 메인 작가 이름만 등장하지만, 알고 보면 보조 작가가 여러 명 투입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 대본을 작가가 혼자서 썼다고 하더라도, 제작 과정에서는 감독과 배우, 촬영감독과 무대연출가, 의상연출가 등 수많은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 사실 제작진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작가 비스름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면 소설에서는? 뭐 소설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작가가 혼자 연출한다. 독무대이다. 출판사 편집자가 소설 내용과 형식과 문장 등에 적극적으로 간여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분위기에서는 좀 드문 편인 듯하다. 아주 오래전에 어느 편집자가 내가 쓴 어떤 글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한 경우가 있었다. 소라 껍질이라는 표현보다는 소라 껍데기가 더 좋을 것 같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고마운 의견인데도 너무나 조심스럽게 물어봐서…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점이 제법 많다.
1. 작가들이 협업을 잘하면 재미있다. 협업을 잘못하면 영화나 드라마가 폭삭 망한다. 미국 드라마는 자세히 보면 1~3회는 P라는 작가가 대본을 쓴다. 4~5회는 J라는 작가가 대본을 쓴다. 6회에서는 다시 P가 쓰고. 그런데도 흐름이 자연스럽다. 공동작업 하는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인 듯하다.
2. 드라마와 영화 쪽 작가들 솜씨가 무섭다. 드라마 공식 같은 제약조건을 지키면서도 한계를 뛰어넘는다. 새롭기와 낯설게 하는 장면이 반드시 있다. 상투적인 것을 피할 줄 안다. 서사를 끌고 가는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는 것일까?
3. 혼자 고독하게 글을 써야 한다면 부지런해야 한다. 자료조사도 해야 하고 배경 무대도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의상연출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지런해야 한다. 이것저것 많이 보고 배워야 한다. 단,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는 건 피하자. 배우려다가 즐기면서 시간 다 간다.
4. 서사 중심의 장르적인 스토리를 글로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영상 시대에 영화와 드라마를 능가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써야 재미있고 시선을 잡아둘 수 있을까?